담백하게 묘사된 비일상의 매력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청천여고 이야기 (작가: LLR, 작품정보)
리뷰어: 홍윤표, 8월 27일, 조회 25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괴담은 보통 짧고 단편적인 이야기였다. 주로 매우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장소에서 갑자기 출몰하는 비일상적인 사건이나 현상들. 괴담의 가장 큰 매력은 짧은 호흡 안에서 최대치의 호기심과 재미를 유발하는 점이다.하지만 이 작품은 짧은 괴담들을 큰 서사의 흐름 안에 배치하여 장편으로 구성한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자고로 학교란 동서고금 막론하고 전설과 괴담이 꿈틀대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다. 거의 모든 사람이 거쳐온 학교라는 장소는 일상적이지만 종종 비일상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다. 아직 한창 성장 중인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친분과는 별개로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해야 하는 공간. 마치 군대와도 비슷한 이 학교라는 장소의 특수성이 괴담의 최대 배출지라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과학실, 음악실, 체육관, 도서관, 화장실, 창고 등 역할에 따라 다양하게 분포된 장소들은 호기심 왕성하고 감수성이 민감한 이들이 이야깃거리를 찾기에 매우 적합하다. 학교는 괴담의 성지나 다름없다.

이 작품은 청천여고라는 마치, 호그와트의 괴담 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학교에 주인공이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기괴한 일들이 매우 일상적으로 일어나는데도, 학교 선배나 선생님들은 그것이 매우 당연한 일들인 것처럼 행동한다. 커다란 비밀을 품고 있지만 왠지 모두 쉬쉬하는 것 같은 분위기.

초반에는 이야기가 조금 산만하게 전개되는데, 그래도 끝까지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유머러스하고 담백한 문체 덕분이다. 이해 불가하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화자는 끝내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기괴한 상황을 묘사할 때도 이 작품은 그 상황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들이니만큼, 그에 대한 묘사도 당연한 풍경을 묘사하듯 담백하게 표현하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L, X, J와 같이 묘사한 점이 처음에는 집중을 방해했지만, 작품을 읽을수록 오히려 괴담이라는 장르에 꽤 적절한 선택이었음을 느꼈다. 사실 괴담은 주인공이 없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인물보다는 상황과 설정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의 무기명 등장인물들은 괴담이라는 매력을 더 돋보이게 하는 기능을 한다.

그동안 괴담이라는 장르를 장편으로는 생각을 못 해왔는데, 이 작품으로 그런 선입견을 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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