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아간다. 가깝게는 같이 사는 가족들부터 멀게는 출퇴근 이동길에 보는 생면부지의 타인들까지. 깊은 산 속에서 지내는 자연인들도, 속세와의 연을 끊고 사는 스님들도 어쨌든 병원이라도 갈 때 사람을 만나고 불공을 드리러 오는 신자들과도 만난다. 심지어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하는 봉쇄수도원에서조차도 혼자 있지는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지수는 상황이 좀 다르다. 분명 세상은 돌아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보이지를 않는다. 처음 이런 현상을 겪었을 때는 무척이나 당황했지만, 곧 지수는 사람 없는 세상에 적응한다. 사실은 사람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같았으면 당장 병원을 가느니 마느니 하면서 난리를 쳤을 텐데, 지수는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를 보인다.
지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한 일상을 즐기기 시작한다. 특히 회사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무기한 무급휴가에 들어간 지수로서는 오랜만에 맛보는 휴식 아닌 휴식이었을 것이다.
지수는 권고사직을 거부했다. 그 뒤로 지수의 자리는 탕비실 바로 앞자리로 옮겨졌다. 지수의 인사를 사람들이 받지 않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지수는 사무실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있었다. 언젠가는 지수는 문득 이 사무실에서 자신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사무실 사람들이 사라져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어졌다.
마지막 문장이 이 작품의 독특함을 한 마디로 요약해준다고 할 수 있겠다. 사무실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겪었을 상처가 지수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 지수의 세상에서 사람들을 없앤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서두에서 묘사된 텅 빈 세상은 지수가 사무실에서 느꼈던 고통이 그대로 형상화된 것이리라 짐작만 해볼 뿐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데, 이 말인즉슨 누군가와는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일종의 관계 형성이다. 나는 당신을 적대할 생각이 없다는 아주 기초적인 관계의 시작이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사무실 직원들에게 거부당한 지수는 관계를 맺을 사람이 없다. 홀로 배타적인 곳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 아니었을까.
타인에게서 배제된 지수는 본인의 세계에서 똑같이 타인을 배제하고 오롯이 본인만 남긴다. 그리고 본인만의 세상으로 잠겨든다. 상처받은 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홀로 삭이면서 지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 지수의 시야와 ‘현’에 관한 생각, 그리고 뉴스 보도가 씨실과 날실처럼 엉키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숨은 이야기가 드러난다. 이야기의 결말에서는 반전이라면 반전이 드러나는데,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지수가 겪었을 심적 고통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왜 세상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는지 그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된 지수가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