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끌리는 소재. 푹 빠지거나 아쉽거나의 갈림길에서.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종말황녀 (작가: 샤유, 작품정보)
리뷰어: 대혐수, 22년 7월, 조회 75

지난번에 쓴 리뷰(장아미 작가님의 “꽃불”)는 제게 정말 소중한…. 입에 쓴 약이 되었습니다. 그 글을 쓰고 몇 시간 후 오메르타님의 리뷰가 올라왔고, 읽어본 뒤 저는 ‘졌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졌다 이겼다 개념을 가져오는 것도 실은 부적절한 것이긴 하겠지만, 곧바로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문제의 리뷰를 쓸 당시 저는 꽤나 절박했는데, 애써서 쓴 작품이 성과가 없는 데에 더하여, 리뷰를 쓰려고 해도 얄팍한 글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끝장이라며 궁지에 몰렸던 저는, 제 밑바닥을 긁어 퍼올려서라도 돌파구를 찾아야겠다 결심하고 문제의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메르타님 리뷰를 보고 나니, 작품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만 읽을 만한 리뷰가 되겠구나..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단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 다음에야, 내가 이걸 왜 좋아할까? 하며 나의 내면을 탐사해보게 됩니다. 비판 가득한 리뷰를 쓰게 된다 해도 출발점은 그 작품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작품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한 다음에야, 그 사랑스러움을 잘 살려 쓰지 못한 작가에게 불평을 토로할 수 있으니까요. 좋아하는 것이 시작입니다(대부분의 경우는요).

그동안 제가 얄팍한 리뷰글밖에는 쓸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을 사랑스러워하지 못하는 저의 편협함과 졸렬함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비록 지난번 리뷰는 저의 흑역사로 당당히 자리잡겠습니다만, 저의 밑바닥을 파낸 글 덕분에 제 문제를 파악할 수 있었으니 목적을 달성했다, 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형편없는 글을 받아보시게 된 장아미 작가님과 브릿G  이용자 여러분께는 죄송스럽지만요…

 

그럼 또 다시 고민이 생깁니다. “꽃불”리뷰에서도 토로했지만 저는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라는 병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문제 상황이라고만 생각했지, 문제의 원인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작품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작품을 좋아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 작품을 좋아할 수 없는데, 무슨 수로 작품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저도 한 때는 눈을 빛내며 누군가의 작품을 좋아할 줄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다가 저는 좋아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걸까요?

 

이번 리뷰도 작품보다는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꾸려질 예정입니다…

 

 

1.소재의 파워

얼마 전 넷플릭스의 모 작품을 도입부만 보고 그만둔 경험을 되새겨보다가, 작품이 처음에 들이대는 소재는 사람을 밀어내기도 하고 잡아들이기도 한다는 걸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소재의 첫 임무는 역시 “어 이거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이겠죠?

두 번째 임무는 “기대하던 바를 잘 충족시켜서 사람을 잘 붙잡을 수 있느냐”가 있는 듯 합니다,

이게 제 고질적인 문제가 아닌가 싶은데, “조별과제수업 수브니에”도 그렇습니다. 글을 쓰기 전 친구들에게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주었을 때만 해도 “와 재밌겠다!” 라는 반응이었거든요. “천사들의 시체”시리즈도 일전에 리뷰공모를 했을 때, 응모해주신 두 분 모두 소재의 즐거움을 칭찬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걸 이용해서 이야기빨을 잘 세우지 못하는가봐요(리뷰에서 이 부분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현재 연재중인 “여신님3×3왕자님”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습니다(피드백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소재 자체는 어차피 취향의 문제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도입부만 보고 그만둔 넷플릭스 작품도, 누군가는 “그래 이런 걸 찾아다녔지”하고 시청을 이어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재의 두 가지 임무 중에서는 두 번째 것이 더 더 중요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물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고르는 건 수익을 올리려는 작가님께 꽤 중요한 문제겠습니다만 ㅋㅋ)

 

이번 리뷰는 여기에 방점을 두고 쓰게 될 것 같습니다.

 

 

2.종말황녀에서 오옹? 했던 포인트 두 가지.

 

종말황녀를 읽으며 이 작품을 좋아해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기대감이 생긴 지점은 작품의 주 배경인 학교가 등장했을 때입니다. 3개국의 국경에 세워져, 각국의 유력가 자제들이 입학하는 학교!

두 번째는 옛날식 라이트노벨스러운 주인공과 라이트노벨적 분위기입니다. 작가님도 작가의 말에서 언급해주시더군요. “하아?” 라는 감탄사도 나오고, 학교를 학원이라고 하거나, 막강한 권력을 쥔 학생회 설정,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식사메뉴 묘사가 철저한 일상 파트. 거기다 —————— 이런 긴 실선이 등장하는 등, 왠지 어린시절에 불었던 열풍을 회상하게 하는 것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당시에도 지금도 이쪽 장르의 팬은 아닙니다만, 이쪽 장르 공모전에도 몇 차례 도전해보려고 공부삼아 읽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팬도 아닌데 라노벨 공모전에 도전한다는 것이 어째 이상합니다만, 당시 떠오른 글감이 이쪽 장르로 풀어볼만 했더랬지요). 공모전을 위한 공부로 당대의 클래식 작품들을 읽었는데 꽤나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배운 것도 많았고요. 정리해 말하자면, 이쪽 장르의 빅 팬은 아니지만 우호적인 감정 정도는 있달까요.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라이트유저로서의 소양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저 우호적인 감정이 있는 정도입니다만, 지금 보기엔 다소 유행이 지나간 스타일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기획과 포부가 흥미로웠습니다. 이것 자체가 작가님이 어떻게 해 나가실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상의 두 가지 소재를 화두로 떠올렸던 것들을 풀어보겠습니다.

 

 

3.국경의 학원과 스케일놀이

국경의 거대 학원도시와 라이트노벨풍 장치들. 이 둘 중에서, “이 작품을 좋아해도 될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 소재는 학원도시 쪽입니다.

 

제가… ‘스케일 놀이’를 좋아합니다. 일테면 마법사와 소환물의 2인 1조 팀으로 싸움을 벌이고, 참전한 팀이 10팀이 채 안되는 싸움을 “전쟁”이라고 부르거나…. 로컬스케일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수준인데 그걸 두고 “인류의 위기”라고 하거나, 로컬 스케일 연쇄살인마를 “세계의 적”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죠. 이런 뻥튀기에서 오는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쾌감의 정체가 무엇일까, 를 이 기회에 생각해봤는데요. 저란 인간은 로컬 스케일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죽는다면 가족들이야 슬퍼하겠지만 냉정하게 말해… 인류 문명은 변함없이 돌아가겠죠. 천체는 변함없이 돌고요. 제가 일하다 조금 실수하더라도 어찌어찌 수습되거나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저는 별로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큰 의미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조차도 난처한 상황에 처하면 핵폭탄 해제하러 뛰는 에단 헌트처럼 다급해지고, 연애 실패라도 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스케일 놀이는, 로컬스케일의 인간인 제가 겪는 로컬스케일 사건과 감정을 가장 직관적인 축적으로 표현해주는 것 같습니다. 지역에서 활개치는 연쇄살인마 때문에 밤길이 두려운데, 그것을 “인류의 위기”로 느끼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나요? 짝사랑하던 사람과 인연이 끊어졌는데, 마음이 우주멸망 스케일로 아픈 것이 이상한가요? 제 생각에 이런 점 때문에 스케일 놀이가 영리하게 느껴지고, 즐겁고 공감되는 것 같습니다. 사소한 내가 겪는 중대한 일이 주관적인 무게감을 획득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스케일놀이는 작은 규모의 것을 큰 규모의 사건으로 부풀려 제공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거대한 것을 작은 규모로 줄여서 제공하는 스케일놀이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국제학원도시”아이디어를 보고 떠올린 기대감이었습니다.

요컨대 서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 놓인 국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로 치환해본다는 것입니다. 국가간에 벌어지는 [전쟁, 경제 문제, 합종연횡과 배신, 천연자원문제, 혁명과 망명]등의 일들을, [성적 경쟁, 일진들의 다툼, 왕따 문제, 교권과 학생권의 갈등, 연애문제, 소소한 도난문제] 등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큰 스케일의 사안을 지역적, 혹은 개인적 스케일로 줄여버린 것이지만, 때문에 역설적으로 “작은 것을 큰 것으로 서술하는”스케일놀이의 성격도 띄게 됩니다. 청소당번 문제와 연애문제, 성적문제, 동아리 창설 등의 문제가 국가간의 전쟁, 연합, 첩보전으로 뻥튀기되어버리는 것입니다.

3개 국가의 국경에 설치된 거대규모의 학원(그야 학생경찰 같은 조직도 있다고 하니까요..)이라는 세팅 덕분에 위와 같은 스케일 놀이가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이와 같은 전개는 딱히 나오고 있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가이드에서는 학원 내부와 외부의 권력관계를 흐트리고 싶어서 다국적학원 설정을 쓰셨다는데, 이 “흐트리다”가 정확히 어떤 말뜻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작중 등장하는 3개국간의 국제문제가 등장인물의 관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겠다…라는 뜻이었다면, 개인 취향에서는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그저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분해 재결합하고 튜닝해서 내가 써먹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조금 하고는 있습니다(그야 훔쳐가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아이디어니..). 어쨌든 제가 이 다국적 학원에 기대를 품은 바가 있고, 그 힘으로 작품을 읽어나가기는 했으니, 소재가 맡아야 할 임무를 해내기는 해냈다고 봐야겠죠.

 

 

4.라이트노벨식 기행어필 주인공

일본식 캐릭터소설 작법에서 눈에 띄는 요령 중 하나는 독자들에게서 “이거 특이한 녀석이네…”라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평범한 인간은 관심 없다!”라고 외친 그 유명한 캐릭터를 생각해 보더라도요. 그러니까 기행을 벌여 깊은 인상을 받게 하는 것인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즐거워해주는 기행과 기행꾼을 제시해주는 건 굉장히 부러운 능력이지 않은가 해요. 주로 일본소설들에서 보이는 몇몇 실패사례들을 보노라면, 좋게 어필되는 기행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구나 생각하곤 합니다.

저의  “조별과제수업 수브니에”에서도 승희라는 캐릭터와 맥스라는 캐릭터가 기행을 벌여 즐거움을 주는 역할로 기획되었습니다만… 여러분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실패사례만 달성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봐도 기행이 재미가 없음… 기행으로 재미를 주는 데 실패하면 , 독자 입장에선 작가가 캐릭터 어필을 강요하는 것 같은지라 으윽…하는 기분만 들게 됩니다.

 

카린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멸망할 것이고 내가 너흴 구해주마”라니, 1호선 광인이 할 것 같은 소리입니다. 허나 이건 판타지장르 픽션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카린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죠. 주인공의 기행을 어필하면서도 이후 전개의 예측도 하게 해주는 아주 좋은 대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카린이 교내에서 기피대상이 되는 이유도 성립시켜주고요.

앞서 승희와 맥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기행 캐릭터를 시도했다 별 소득이 없었던 저로서는, 카린이 벌였던 1타2득의 기행에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카린의 저 대사가 갖는 더 대단한 장점은, 이 컨셉으로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하루히는 “일상이 너무 시시해서 비일상의 존재를 갈망한다”라는 철없는 태도를 시리즈 내내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부기팝은 “나는 세계의 적을 물리쳐야 한다”라는, 평범한 사람은 잘 납득하지 못할 책무를 반복 어필하며 캐릭터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승희와 맥스는 매 장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기행을 떠올려야 했으니 힘들고 괴로웠죠(그 결과 나온 것도 좋다고는 못 하겠으니.)

카린도 “나는 멸망을 예언했고 이것을 막기 위해 행동한다”라는 기행 컨셉을 쭉 밀고 나갈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에스텔을 향한 감정을 제외하면 냉정한 외골수 캐릭터이고, 행동은 때로 종잡을 수 없는데, 실은 이 알쏭달쏭한 행보는 세계멸망 방지라는 목적을 위해 실행되고 있죠.

 

그런데 카린의 “특이한 구석”이… 좀 소극적으로 어필되는 것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주변 인물들이 “그 미친 황녀”라고 수군거리는 걸 빼면, 카린 스스로가 “나는 멸망을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어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차피 작품 도입부터 괴상한 발언으로 “얘는 어딘가 좀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독자와 작중 인물들에게 어필된 카린입니다. 카린 스스로도 자신을 향한 선입견을 개선할 마음은 별로 없어 보이고요(그러거나 말거나라는 태도죠, 카린은).

카린이 다소 과묵한 캐릭터임을 감안해도 자기 어필을 좀 더 해도 되잖을까, 생각했습니다. 카린이라면 “왜 그러는데?”하고 묻는 사람에게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서다.” 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이 녀석 또 헛소리하네…”하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을 눈 앞에 두고서도 부끄러워하거나 동요하거나 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니까요.

구체적인 대목을 들어서 의견을 밝히는 건 작가님께 너무 참견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니 생략합니다만, 카린이 이해하기 힘든 일을 할 때마다 에스텔이 “이것도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서인가요?” 라고 어리둥절 물어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는, 카린이 자신의 노력을 어필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학교 옥상에서 주변을 감시하는 부기팝에게 “뭐 하냐 너?” 물었을 때 “인류의 위기가 오고 있다. 나는 세계의 적을 감시하고 있다.” 라고 대답해야 부기팝이 부기팝으로 성립하는 것이지, “음, 그런 것이 있다.” 라고 넘기면, 부기팝이 되기에는 조금 애매해지는 것 아닐까, 하는 고민입니다.

 

 

5.소재로 재미를 어필해나가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면

늘 떠올리는 작품이 있는데, 이젠 벌써 오래 전 작품인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입니다. 이 작품은 초기에 초딩 시절로 회귀한 주인공의 얼렁뚱땅 개그일상물로 어필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전개되자 “사람들이 과거로 회귀하게 된 이유”를 밝혀내는 초능력+스릴러 장르로 노선이 변경됩니다.

이거 자체가 뭐 어떻다는 건 아니고.. 작가 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작가는 자기 작품이 어떤 이유로 인기를 끄는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중후반부 스릴러노선을 관둘까 고민했다고 밝힙니다. 즉, 애초 구상은 스릴러였지만, 작품 초반의 일상개그 전개에서 독자 반응이 좋으니 그 쪽으로 눌러 앉을까…고민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후기가 던지는 고민거리를 틈만 나면 곱씹어보고는 합니다. “종말황녀”에서도 다시 곱씹게 됩니다. 샤르노스 학원에서 꼭 국제관계를 교내 해프닝과 연관시키는 스케일놀이가 일어나야 할까? 카린은 행동을 할 때마다 이것이 멸망을 막기 위한 행동이라고 매번 어필해야 할까?

제가 위의 내용을 가지고 이것저것 지적하는 것 처럼 말했으나, 사실 순전히 제 취향을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무슨 권위가 있어서 “그러지 않았으니 이 작품은 잘못 썼다”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저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꽤 많다면, 그것 때문에 작품의 기획이 바뀌어야 하나..?

 

저도 제 작품을 연재하면서 어떤 요소로 어필하면 좋을지 구상을 합니다. 그리고 그 구상은 어차피 제 취향대로일 수밖에 없습니다. 글쓰기 동료가 있으신 분은 대화하며 좀 더 위험부담을 줄이고 공격력을 높이는 기획수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글쓰기 동료가 없고… 제 취향대로 구상해놓은 것을 여러분이 좋아하길 기대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결과가 기대에 늘 못 미쳤죠.

저는 피드백을 많이 못 받는 관계로, 제가 어필하려던 요소 자체가 매력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요소가 매력을 어필하긴 했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떠 먹여드리지 못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소재는 독자를 끌어들였으나 이후의 어필이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면, 저는 우째야 할까요? 작가는 소재만 구상하는 것은 아니고 전개라든가 소소한 대사 분위기도 구상하죠. 그런데 소재 어필을 잘 못 하고 있으니 고쳐 쓰라고 했을 때, 처음에 애정을 갖고 구상했던 것들이 통째로 뒤흔들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가령 제가 작가님께 “카린이 시도 때도 없이 멸망 타령을 하고, 샤르노스 학원에서는 국제관계 스케일 놀이를 벌이란 말이야!” 라고 윽박을 지른다고 해보면, 작가님은 꽤 괴로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사 몇 줄 고치는 정도로 이게 해결되면 몰라도, 그보다는 작품을 뒤집어 엎어야 할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 저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저는 순순히 고쳐 놓을 수 있을까. 고치면 더 많은 조회수와 출판 계약이 확정적으로 뒤따른다고 해도? 그거야 “나는 글을 왜 쓰는가?” 라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관계가 있겠지요.

 

그러니 제가 뭐라 썼건 간에 작가님은 흔들리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건 서두에 밝혔듯 저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 쓴 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