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미리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1. 하늘을 향한 열망
얼마 전 브릿G 자유게시판에 일월명 님께서 재밌는 질문을 올려주셨습니다.
상류층이 고층빌딩이나 하늘, 지구 궤도에서 생활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기원했을까요?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는데요, 읽다 보니 ‘상류층이나 신은 감히 아무나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산다’는 개념이 굉장히 여러 신화나 작품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저는 참으로 단순하게도 그간 그런 개념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리뷰를 쓰다 보니 갑자기 배명훈 작가님의 연작소설집 ‘타워’가 떠오르네요. 딴소리지만… 강력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일월명 님이 말씀하신 이러한 개념은 일종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거기서 파생된 클리셰가 있다면 그러한 ‘높은 곳’을 정복하려는 행위는 종종 실패하고 행위자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거겠지요.
그러한 스토리 중에 유명한 걸 하나 꼽자면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등장하는 디달로스(보통 다이달로스라고 쓰던데 작품에는 디달로스라서 돼 있어서 이 리뷰에는 디달로스라고 쓰겠습니다.)와 이카로스의 미궁 탈출 스토리를 꼽을 수 있겠죠.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리뷰에 쓰자니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마침 본 작품의 소재와 주제와도 연관이 있는 국립항공박물관 블로그에 게재된 글의 링크를 걸도록 하겠습니다.
이카로스의 신화를 통해 알아보는 하늘에 대한 인간의 염원
이카로스의 날개는 블로그에도 나와 있듯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헛된 욕망과, 현실적인 한계를 비유하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 작품은 이 이야기를 SF적으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한 스토리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결말은 원전과 다르게 희망적입니다.
2. 구세대와 신세대의 충돌,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충돌, 인간과 자연법칙의 충돌, 그 결과는?
작품 속의 인물들은 한쪽은 영원히 불타고 한쪽은 영원히 밤인 반쪽자리 지구의 영원히 밤인 영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류는 중력 엔진을 단 성간 우주선(디달로스 제로)을 개발했고, 태양계 바깥으로 가려다가) 사고가 일어났고 우주선은 지구로 추락했어. 중력 엔진은 폭주하면서 주변 공간을 찢어버렸고 지구를 태양계 바깥으로 던져버렸다지. 중력 엔진이 폭발하는 순간, 지구의 절반은 지각이 녹아내릴 만큼 불타올랐어. 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은 중력 엔진에서 쏟아진 뜨거운 유해 물질로 뒤덮여 있을 거야. 우리가 있는 지구 반대편은 그 충격파로 지형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고.
이후 지구와 인류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에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어. 항성간 우주선의 승무원 일부만이 살아남아 지상으로 내려왔고, 인류는 다시 한 번 심판을 받은 거야. 생존자들은 지구 반대편의 지옥을 뒤로 하고 얼어붙은 땅을 가로질러 이동했고 그나마 살만한 곳을 찾아 헤맸어. 따뜻한 공기를 품은 거대한 분화구를 발견하고는 그곳에 살 곳을 만들고 속죄를 시작했어. 지구는 신이 우리에게 안겨준 두 번째 낙원이었는데 우리는 거길 떠나려고 했기에 이렇게 된 거라면서. 그리고 여기까지 온 거지.
지구는 태양(말 그대로의 태양이면서 동시에 빛과 낮을 상징)을 잃어버렸고, 생존한 인류는 영원히 밤이 지속되는 암흑의 공간에서 살아갑니다. 또한 분화구 안에다 층층이 건물을 짓고 사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역시 이곳에서도 높은 곳과 낮은 곳 사이의 차이가 극명합니다. 이곳 주민들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지열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곳은 일이 고돼서 분화구 주민들이 기피하는 직장인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러한 지열 발전소는 분화구 아래에 있고, 그 위의 지상층에 지열 발전소 직원과 가족들이 살고 있으며, 지위가 높을수록 상층으로 올라가고, 최상층은 별을 관측하는 성직자만이 갈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주인공 ‘시아’는 지열 발전소 직원의 딸로서 7층에서 태어났고, 본인의 노력으로 인해 97층까지 올라온 인물입니다.(작품에서는 계단을 하나씩 올라왔다고 표현돼 있습니다.) 시아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 하고 아예 분화구를 떠나 하늘을 날고자 합니다.(마지막 계단을 밟는다고 표현됨) 그러한 시도는 (어떤 종교인지는 언급되지 않지만) 장로들과 교사라는 지도층 인사들의 분노와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위의 두 번째 인용문에 나왔듯이, 과거 조상들이 지구(신이 주신 낙원)를 감히 떠나려고 해서 지구가 망가졌고 그에 대한 속죄로 인류는 분화구 속에 안주하고 살아야 하는데 시아는 자꾸만 그것을 거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시아는 단순한 거부를 넘어서 다소 반항적이기까지 합니다. 마침내는 장로들과 교사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 시아는 처벌을 받게 될 지경에 이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떠한 상징 구도를 볼 수 있는데요.
분화구는 이카로스의 이야기에서 이카로스의 아버지인 디달로스가 만든 미궁을 상징합니다. 이 미궁은 일종의 감옥이죠. 현대적인 개념으로 보자면 공학기술자라고 할 수 있는 디달로스는 미노스 왕가의 끊임없는 기술적 요구들(왕비가 황소와 간음할 수 있도록 암소 모형을 만든 것, 왕비와 황소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우를 가두기 위해 미노스 왕의 명으로 미궁을 만든 것, 그 반인반우를 처단하러 온 테세우스와 사랑에 빠진 아리아드네에게 미궁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준 것)을 들어주다 결국 미노스 왕의 미움을 사서 아들과 함께 미궁에 갇힙니다. 디달로스와 이카로스도, 분화구 주민들도 그곳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감옥에 갇힌 죄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는데요. 디달로스 본인은 자신이 정말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미노스 왕가의 요구에 휘둘렸을 뿐이니까요. 왕가의 이런 저런 요구들을 거부할 선택권이 없었을 테니까요. 아마도 디달로스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죄는, 아무 죄 없는 아들까지 갇히게 만든 거겠죠. 더한 죄는 아들을 죽게 만든 것이고요. 미궁 안에 가만히 있었다면 아들이 추락해 죽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본 작품에서 디달로스는 이 분화구 주민의 조상이 타고 온 성간우주선의 이름인데요(정확히는 디달로스 제로), 그 성간우주선의 승무원들이 디달로스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신들이 탑승했던 우주선의 폭주로 지구가 망가지고 태양을 잃고 자신들을 제외한 인류가 죽게 되어 죄를 짓게 된 인물들이죠. 하지만 우주선이 일으킨 사고가 정말 그들의 죄일까요? 어떤 문제로 인해 그런 사고가 일어났는지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정말로 죄를 지은 게 있다면, 바로 자기 자손들에게 지은 죄입니다. 디달로스 제로의 승무원들은 자기 자손들이 영원한 밤 속에서 살아갈 것을 알고도 분화구에 정착해 자손을 낳았고 그리하여 그들을 인류의 진짜 고향이자 요람인 지구로 데려가 줄 수가 없었으니까요.
시아는 이카로스를 상징하죠. 승무원의 자손들 중 한 명이고, 기성세대와 지도층이 주입하는 관념을 거부하고 하늘을 날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과 꿈을 품은 인물입니다. 그 하늘은 분화구의 지도층들마저 감히 도전하려는 꿈조차 꾸지 않는 곳, 인간의 영역을 까마득히 넘어선 곳이죠. 디달로스의 이야기에서도 디달로스는 ‘미노스가 땅과 바다는 막았지만 하늘은 못 막겠지.’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왕도 어차피 인간이기에 하늘은 지배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한낱 인간인, 그것도 분화구에서 피지배층에 속하는 시아는 그러한 하늘을 정복하려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아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초월한 어떤 존재가 되려고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왜냐면 시아의 시도는 단순히 지배층의 핍박을 벗어난다거나 하늘을 한 번 날아보고 싶다거나 하는 개인적인 소망을 떠나, 인간의 몸으로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는 진리, 그러니까, 인간에게 어떠한 한계를 규정짓는 물리 법칙을 정복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이거든요.
이러한 정복은 빛의 직진성을 극복하려는 것과도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빛은 (블랙홀과 같은 천체 주변을 지나거나 두 물질 사이의 계면을 통과할 때는 예외이긴 하지만) 언제나 직진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따라서 빛이 나에게 오지 못 하는 상황에서 빛을 보기 위해서는 내가 빛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밤이 지속되는 땅에 발이 묶여 있으면 그건 불가능하죠. 우리 인간은 빛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그에 맞춰서 진화가 이뤄졌습니다. 빛을 향한 열망은 인간에게 내재된 원초적인 본능과도 같을 것이고, 여기서 시아는 (그러한 인류를 대표하여) 빛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고 볼 수 있겠죠. 태양을 열망하여 더욱 더 높이 날다 날개의 밀랍이 녹아버린 이카로스처럼요.
시아는 과연 이카로스처럼 추락하게 될까요? 아니면 이카로스의 어리석음과 순진함을 극복하고 태양에 향한 열망을 치밀한 실험 정신으로 승화해 비행에 성공할까요?
이 작품에서는 시아가, 계단을 하나씩 오르듯, 이 과정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지치거나 실망하는 일 없이 밟아나가며 결국은 성공해 꿈을 이루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독자는 그 과정을 보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아를 응원하게 되고 마침내 시아가 행성의 궤도에 안착하는 순간 감동과 경이를 느끼게 되죠. 그리고 마침내, 시아가 분화구 주민들을 구조하는(지구에 구조 요청한 것이 성공)하는 순간, 시아가 죄인에서 영웅으로 승격되는 그 순간, 물밀 듯이 밀려오는 감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지구에서 구조대가 오면 장로들과 교사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보고 싶네요. 이후에 분화구 주민들과 지구인들과의 사이에 벌어지는 일도 후속편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요. 저렇게 앞뒤가 꽉 막힌 장로들이라면 분명 지구인들이 구조하러 와도 썩 반가워할 것 같지가 않거든요.
3. 매력적인 반전 포인트와 몇 가지 보완했으면 하는 점
이 작품에서는 단계적으로 반전이 존재하는데요, 하나는 분화구 주민들이 살고 있는 행성이, 두둥! 지구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시아가 분화구를 벗어나 옛 착륙선에 올라탄 뒤 착륙선의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되죠. 이건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내가 사는 곳이 현실인 줄 알았는데 가상현실이었다거나 영화 혹성탈출에서처럼 내가 도착한 곳이 외계행성인 줄 알았는데 지구였다거나 하는 것과 맞먹는 충격이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아쉬운 점이 생겨서 말씀드리자면, 왜 분화구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행성을 지구이고 조상들이 그 지구를 망가뜨렸다고 알고 있었는지, 그리하여 왜 실제로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에 대해 속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시아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기에 궁금증이 해소되지가 않습니다.
한 가지 드는 추측은, 승무원들이 지구를 너무나도 그리워한 나머지 자신들이 착륙한 행성을 지구로 여기기로 했는데 하필 그 행성이 동주기 자전을 하는 행성이라 영원한 밤이 지속되는 반구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지어낼 필요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품만 봐서는 확실치가 않습니다.
또 하나 드는 추측은 이겁니다. 성간 디달로스 제로는 지구를 떠나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목적, 아마도 궁극적으로는 외계 행성으로 이주하거나 테라포밍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겠지요. 하지만 막상 지구를 떠나 보니 지구보다 훨씬 못 한 환경의 행성만 맞닥뜨렸을 뿐이어서 애초에 인류의 요람인 지구를 떠나려고 한 것이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후회가 들어서 그러한 이야기를 꾸미고 속죄를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드는 추측은 시아를 나무라는 교사의 말에서 끌어낼 수 있습니다.
알아요. 바깥세상으로 나가려고 하는 욕망은 우리, 특히 당신의 본능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는 거. 그래서 유혹을 견디기도 힘들다는 거. 하지만 우리가 신께서 주신 낙원을 벗어나려고 하다가 낙원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잘 알잖아요? 우리는 스스로 지구의 절반을 완전히 불태워 버렸고 태양을 잃었어요. 이게 우리의 마지막 기회에요. 그동안 고난을 견디며 속죄한다면 신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태양을 돌려주실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영원히 텅 빈 우주를 떠돌며 살아야 하겠죠.
아마도 승무원들은 자손들이 자신들과 같은 도전을 할까 봐 두려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주라는 혹독한 환경에서 도전은 높은 확률로 실패를 낳고 실패는 아주 높은 확률로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이카로스의 경우처럼요. 승무원들은 자손들이 이카로스처럼 무모하게 우주로 진출하려다 자신들 같은 참사를 당할까 두려워 사전에 그러한 희망을(날개를) 꺾어버리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반전은 이처럼 의문점을 남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추측을 해 보는 재미가 있었고 따라서 꽤나 매력적인 포인트였다고 생각됩니다.
또 하나의 반전은, 시아가 지구로 구조 요청을 보내고 동면에 들었는데 알고 보니 지구에서는 그 동안 기술이 발전해 초광속 통신과 항성 간 탐사가 가능해져 불과 2시간 만에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강경옥 작가님의 순정만화 ‘별빛 속에’를 아주 감명 깊게 본 기억이 있는데요, 구체적인 줄거리는 기억이 안 나지만 결말이 너무나 슬프고 아련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제 기억이 맞다면 주인공이 동면(?) 캡슐(?) 같은 곳에 들어가서 영원히 우주를 떠돌게(? 아니면 아주 먼 곳으로 이동?)하게 됐던 것 같아요. 어린 마음에 그런 상황이 너무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우주라는 시공간이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저는 이 작품에서도 시아가 비슷한 운명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살아생전에 확인할 수 있고, 그간의 노력에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점에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이카로스의 이야기와 다르게, 그리고 시아 개인의 성공을 떠나 인류에게 어떤 희망을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또, 여기서 아쉬운 점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시아가 왜 그토록 비행을 열망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심리 묘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시아는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타인의 평가에 크게 휩쓸리지 않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 지도층의 미움을 사고 건물을 망가뜨리고 친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그러한 도전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묘사가 조금 불충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로서는 역시 추측만 가능할 뿐이어서 약간의 심리 묘사가 더 보완이 되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시아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고 뚝심 있게 도전을 해나가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부분은, 이 분화구 주민들이 사는 ‘영원한 밤’이 계속되는 공간에 대한 묘사입니다. 작품을 읽어보면 그러한 상황이 인물간의 대사나 설명문 몇 줄로만 제시돼 있어서 생생한 느낌이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지구와 달리 이곳은 24시간 내내 밤이므로 그러한 곳에서 살게 될 때만 나타날 수 있는 생활 습관이나 신체 변화나 사회 문화 같은 게 분명히 있을 거거든요. 그런 부분을 조금만 더 묘사를 해 주시면 마침내 이들이 분화구(영원한 밤이 지속되는 공간)를 벗어나 태양을 보게 되는, 그러니까 ‘밤의 끝’을 보게 되는 그 상황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게 될 것 같습니다.
4. 다층적인 관점과 맥락들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시아 개인의 감동적인 도전 스토리로 봤습니다. 이때의 관점은 분화구 안에서 살아가는 폐쇄적인 사회 구조 쪽에 다소 맞춰져 있었죠. 그러다 리뷰 의뢰를 받고 다시 읽었을 때에는 이 이야기가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인류의 자연법칙에 대한 투쟁이었던 거죠. 이때 제 관점은 우주와 우주에 관한 역사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리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읽었을 때에는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 쓰인 ‘도전했지만 실패한 사람들’ 에 관한 이야기들에 대한 도전으로 보였습니다. 이때 제 관점은 이야기들에 대한 역사로 방향을 바꿨죠. 이처럼 이 작품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여러 가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제가 좋아하는 단락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굵은 글씨체로 처리한 부분에서 경외감을 느껴 보세요. SF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아는 눈을 감았다. 바깥세상은 생각보다 더 거대하고 웅장했다. 잠시 스스로가 너무 작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흥분되었다. 비록 마지막에 사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시아는 수백 광년의 공간을 가로지른 사람들의 숨결 속에 있었다. 시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 작고 연약한 내가 항성과 항성을 가로지르는 역사 속에 서 있다. 시아는 더 이상 작아지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