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브릿G에서 단 하나의 작품만 읽을 수 있다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잊힌 신이 내리는 계절 (작가: 목영, 작품정보)
리뷰어: 이연인, 4월 13일, 조회 115

시기가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때 매체에서 다뤄지는 혁명에 관한 담론이 SNS를 휩쓸고 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분이 한국 사람들은 혁명과 역성(易姓)을 도통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신 기억도 납니다. 처음에는 정말 그렇다고 웃었지만 생각해 보니 저조차도 마음 속에서는 둘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에 관해 깊이 있는 지식은 없어도 그냥저냥 아는 바는 좀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냥 막연한 개념 말고 진정한 의미에서 혁명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애쓰게 된 계기는 『잊힌 신이 내리는 계절』을 읽기 시작하고도 상당한 시일이 흘러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잊힌 신이 내리는 계절은 혁명이 가장 중요한 소재이며, 주인공 이벨린 에레드를 포함한 주요 인물들의 행보가 전부 혁명과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 요소와 약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한 개인이 부딪치기에는 너무나 공고해 보이는 구 체제를 어떻게 전복시킬 것인가,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게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무슨 엄청난 대의를 전면에 내세워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촌스러운 기법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작가님이 섬세하게 배치하시는 여러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이 세계는 반드시 혁명이 필요하다고 저도 모르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가상 배경에 모티브로 삼은 시대상도 많은 차이가 나지만 여러모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연상케 하는, 그래서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도 많습니다.

 

또한 잊힌 신이 내리는 계절은 페미니즘 소설로서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읽는 사람들이 오독하지 않도록 작가님이 대놓고 떠먹여 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그조차도 전혀 부자연스럽거나 튀지 않고 작품 내용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한편으로는 작가님이 모티브로 삼으신 혁명을 비롯해 여러 정치적인 변혁이 일어난 후에 여성들의 지위가 어떻게 변했는지(혹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는지)를 떠올리자면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정말 큰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양보와 희생이 필수불가결한 걸까요? 작가님은 그렇지 않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계십니다.

 

사실 그냥 일단 읽어 보시라는 말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지만 분량이 부족해서 조금 잡설을 늘어놓습니다. 저는 감히 독서가라고 명함을 파서 뿌릴 정도는 못 되지만 그래도 책, 특히 소설은 제법 읽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읽어온 소설 가운데 어떤 작품은 과정은 지루해 죽을 지경이지만 일단 시작한 이상 결말을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속 읽어나가게 되는 것들도 있었고, 어떤 작품은 전개 자체는 엄청나게 흥미진진하고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데 정작 결말은 어딘가 허무하고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전개도 결말도 전부 만족스러운 작품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앞의 두 경우에 비하면 극히 드물었습니다.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백 권에 한 권 남짓 될까 말까 할 정도입니다. 운 좋게 그런 작품들을 읽게 된다면 말 그대로 인생 소설, 평생을 살아도 만나기 어려운 진정한 친구에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잊힌 신이 내리는 계절』은 읽는 동안 줄곧 두 가지 욕구가 격렬한 충돌을 일으킵니다.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는 전개를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마음,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주인공들이 맞이할 결말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심지어 한 편을 읽는 동안에도 무수하게 엇갈립니다. 뒤로 가면 갈수록 그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이 하나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고, 주인공들 각자의 운명이 어떻게 되건 큰 결말이 어떻게 날지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작가님께서 꾸준히 대놓고 알려주고 계시기 때문에 딱히 짐작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322화까지 쫓아온 지금, 저는 주인공들의 행보를 언제까지나 쭉 지켜보고 싶은 갈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500회 혹은 1,000회를 넘을 때까지 계속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독자로서 큰 괴로움을 느낍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리뷰를 쓰려고 마음 먹은 후로 세 번째로 정주행하면서 한 가지 새삼스럽게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물론 글을 너무 빨리 읽어서 섬세한 복선을 놓치기 쉬운 제 성향 탓이 더 크겠지만, 작가님이 쓰신 방대한 분량의 글 가운데 그냥 무관심하게 넘겨서는 될 문장이나 단어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1회독할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부분들이 2회독에서는 새롭게 다가오고 지금 3회독을 하면서 또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전에 제가 달아 놓은 멍청한 댓글들을 확인하고 부끄러워서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내용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고 불쾌감과 수치심을 일으키는 대목들은 그냥 실눈 뜨고 건너뛰기도 했습니다만 아무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고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만약 브릿G의 무수한 작품들 가운데 딱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잊힌 신이 내리는 계절』을 택하겠습니다. 이 작품이 대중적으로 흥행하기 어려운 이유를 작가님도 알고 저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하지 않을 수가 없는 명작입니다. 『잊힌 신이 내리는 계절』을 제대로 즐기고 싶으신 분이라면 정말 천천히, 느긋하게, 그리고 가능하면 두 번 이상 읽으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300회가 훌쩍 넘었으니 양이 많아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음 회 버튼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때가 온다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실 수 있을 겁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