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연패하는 글쟁이인 주제에 자기 글에 대해서는 팔불출인 관계로, 저는 다른 분의 작품을 통해 저의 작품을 반성하곤 합니다. 따라서 이 리뷰는 작가님이 애써 쓰신 작품에 대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에 대한 것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점 양해바라겠습니다.
저는 작품을 볼 때 다음과 같은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1.어떤 기대감을 형성하는가? : 작품에서 뭔가를 기대하게 되고, 그 “뭔가”가 나의 취향과 맞을 때 독서가 시작된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또 기대감은 페이지를 넘어가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기대할 만한 것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작가님들의 골머리가 썩는 일일 터이죠.
2.그 기대감을 어떻게 다루느냐? : 제가 여기서 말하는 기대감은 “예측”이라는 부분에 강세를 두고 있습니다. 작품의 향후 전개를 예측하면 그 다음 전개가 어떻게 될지 두근두근 기대감을 품을 수 있지 않겠어요? 이런 “기대감”을 작가님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서스펜스가 만들어지기도, “반전”이 성립되기도 하겠습니다. 작가가 어떤 기대감을 형성하고 나면 그것을 정직하게 충족시킬 수도 있고, 충족시키기는 충족시키지만 꽤 길게 지연시킬 수도 있고, 아예 배신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경우든 재밌으면 장땡입니다. 요컨대 기대감을 형성한 후, 그 기대감을 어떻게 요리하느냐 하는 점이 작가의 역량이자 개성이지 않을까 합니다.
3.충분한가? : 정보 제공의 충실함, 적절함에 관한 부분입니다. 간단히 말해, 작가가 자기 작품에서 (혹은 오늘 연재분에서) 어떤 정보가 전달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것을 좋은 타이밍에 충분히 짚어주고 있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충분히 짚어주기”는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어서 어떤 예측을 하게끔 유도하므로, 기대감을 형성해주는 역할도 한다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억울하고 독자들도 이 억울함에 공감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왜 억울해 하는지 설득력있게 충분히 설명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악역이 억울해하는데 독자들은 이 억울함이 어처구니없었으면 좋겠다. 역시 마찬가지로 충분히 짚어주어야겠죠.
왜 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보느냐… 작가로서 저에게 결핍된다고 느끼는 부분 (응? 그럼 그냥 작가 못해먹을 놈인 거 아니냐…) 이기 때문이죠.
이게 잘 되면 SNS에서 유행하던 밈이 성립될 것 같습니다
– 작가 : 기뻐하세요
– 독자 : 와아 너무 좋아 ^ㅂ^ /
– 작가 : 우세요.
– 독자 : 꺼허윽으엉엉 작가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ㅜㅜ
저에겐 정말 꿈만 같은 일이군요…
연전연패중인 글쟁이인지라 당연히 다른 작가님 작품에서 뭔가 배워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들을 둘러보니까 말인데요 생각 밖으로… 작품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분명 성과가 좋은 작품들이었던데다 댓글에서는 독자님들이 캐릭터의 매력에 환호하고, 걱정하고, “기대”하는데, 저는 “도대체 이 녀석의 어디가 매력적이란 말이야…” 하고 느끼기가 일쑤. 작품에서 별다른 기대감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 독자님들의 반응과 작품의 성과를 보면 제가 이렇게 무감증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취향의 문제라는 것이 있으니 작품과 인물에 가슴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머리로는 매력포인트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큰일입니다. 이렇게 독자들과 인식이 괴리되어서야 저는 영영 가망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저를 구원할 작품, 그러니까, 제가 일단 가슴의 떨림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아 지친 모습으로 끝없는 방황길을 떠났고…
어디보자…. 암살자의 삶을 강요받는…꿈꾸던 행복을….작품분류 판타지 로맨스?
어….?
가슴이…뛰어…?
닌자를 좋아하는 저입니다. 주인공이 정정당당하게 싸우기보다는 여기저기 트랩 깔아놓고 생쥐처럼 피해다니며 이상한 폭탄을 던지면서 싸울 때 환호하는 저입니다. 아울러서.. 닌자보다 쿠노이치를 좋아하는 저입니다.
블랙블랙하게 차려입고 별명이 까마귀인 여성 암살자…가 사랑을 한다고…? 좋습니다. 저에게 기대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음흉하게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처음이 꽤 놀랐습니다.
주인공의 이력이 상당히 건조하게 요약되어 설명되고 있었거든요. 불우한 탄생과 불우한 유년기 시절은 “~그랬다…”로 넘어간 데다, 특히, 주인공의 인생이 기구하게 비틀린 계기인 암살자를 색출하고 공격을 막아낸 사건은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 라는 간단한 요약 설명으로 넘어간 데서 엄청 놀랐습니다. 오! 소설을 이렇게 써도 되는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주인공의 매력 포인트”를 충분히 짚지 않은 거 아니냐? 라고 생각되기도 해서, 어어,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고민을 해봤습니다.
일단 전후사정으로 보자면 주인공은 체념적인 태도로 타성에 젖은 삶을 살고 있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자기 양심의 외침을 외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겉보기엔 냉혹한 무표정한 암살자 모습이나, 애써 외면하고 있기는 해도 양심은 살아있어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고, 그 죄의 핑계를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암살당한 이의 주검을 목격하지 않기를 소망하는 선한 마음씨도 품고 있습니다. 그런 외면과 내면의 괴리가 고뇌하는 주인공을 형성하네요. 여기까지가 주인공의 핵심 설정으로 보이며, 작가는 이를 충분히 짚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선한 마음씨를 지닌 검은 머리의 쿠노이치…아니, 암살자…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이 캐릭터 요소만 나오면 너무 좋아서 망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아마 제가 이 작품의 카피작품을 쓰게 된다면 이런 것들을 고민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 주인공이 신체적으로는 암살자 적성이 있지만, 영혼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순진한 유년기를 묘사하자.
– 허지만 그 순진한 어린이가 못된 어른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으며 고생하는 걸 묘사해야혀 ;ㅂ;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동정심을 품도록 하기!
– 주인공이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이라는 걸 충분히 짚으려면 역시 유년기 에피소드를 하나 넣어주는 게 좋겠어. 어떤 인물과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의 본성이 상냥하다는 걸 드러내자.
– 주인공 유년기에서 역시 제일 중요한 건, 암살자를 방어해내며 암살자의 적성을 드러내는 장면이야. 여기서는 주인공의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 선천적인 몸놀림 재능이 드러나게 해야겠지? 그러려면 기깔나는 액션신이 필요해… 어떻게 하지? 주인공에게 재능이 있긴 하지만 훈련을 받지는 못했으니 암살자에게 핀치에 몰리게 해 긴장감을 조성하자. 아참참. 주인공의 유년기 파트 전반부와 암살자 장면이 시너지를 이루려면, 역시 암살자는 주인공이 우정을 나누었던 등장인물인 것이 좋겠어. 주인공과 함께 지내면서 수상한 분위기를 풍겼을 거고, 그래서 주인공은 그 친구가 암살자인 걸 알게 되었던 거지. 그런데 그 놈은 암살자의 본색을 드러내자마자 주인공에게도 냉혹하게 구는 것 같지만 은근슬쩍 머뭇거리고 말았지. 그 틈에 경비병들이 오고, 주인공의 눈 앞에서 암살자이자 친구였던 인물을 어육으로 만들어 버린다.. 크크 왠지 이거 감동 좀 뽑아낼 수 있을 거 같고 말이지?
유년기 이야기만 쓰느라고 연재분 3, 4회는 잡아먹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렇게 해야 주인공의 매력을 “충분히 짚을 수 있다”라고 판단했겠죠. 반면 작가님은 “주인공은~해서 태어났는데 ~하고 지내다가 ~ 하여 암살자가 되었다.” 라고 간략히 적는 방법으로, 주인공의 상황설정을 1화 연재분의 6분의 1 지점에서 싹 털어버립니다. 이….이래도 괜찮은 거야?
괜찮을까요? 다들 어떤 의견이실지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저는 몇 단락 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아, 선한 마음씨를 지닌 검은 머리의 쿠노이치…아니, 암살자…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이 캐릭터 요소만 나오면 너무 좋아서 망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그러네요. 저는… 3화에 걸친 유년기 파트가 없더라도 이미 주인공에 대해서 꽤나 파악하고 있었군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작가님의 간략한 설명엔 오히려 경파한 박력마저 느껴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짧게 짚고 넘어갔다 하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작가님이 짠 전략이 뭐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바로 “이 작품을 읽기로 한 독자들이 가장 먼저 품은 기대감은 무엇인가?” 라는 것 (기대감이 형성되어 독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초반부에서 가장 긴요하게 짚어주어야 할 정보는 무엇인가(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적합하게 짚어주기의 문제).
이 작품이 주는 결정적인 기대감, 즉, 다른 작품이 아니라 이 작품을 클릭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양심을 속이며 살아온 암살자가 소속을 바꾸는 것을 계기로 자기 삶의 태도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삶을 바꾸기로 결심하여 어떤 일이 일어날까? 라는 기대감이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데에 생각이 도달했습니다.
요컨대, 유년기 파트로 3화를 소모하는 대신, 주인공이 잽싸게 화양국으로 건너가는 게 좋지 않겠는가, 라고 말이죠.
마침 주인공은 “여성 암살자”라는 요소가 설정되어 있어, 이 요소를 통해 그 자체로 독자에게 기대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독자가 이 이야기의 기본 전제 몇가지를 파악해두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마당에 연재분 3, 4화를 소모해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구구절절 구구절절… 쓸 필요가 있을까요? 게다가 제가 구상한 초반부 전개 말인데요, 그 내용이 사실 대단히… 색다르거나 하진 않잖아요. 어차피 어디서 몇 번은 봤을 법한 전개… 제가 엄청난 필력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주인공의 구구절절한 유년기를 다룬다는 것은 조회수의 죽음을 향한 행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작품의 이런 면모는, 작가님이 “이 작품에서 가장 주요한 기대감은 무엇인가” 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하고 저는 보았습니다.
더구나 작가님은 주인공의 배경설정을 하는 데 있어 요소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 암살자”라는 요소만으로는 불충분한 주인공만의 중요 정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정보들은 필요한 지점마다 필요한 부분들이 짚어지고 있다, 라고 저는 보았습니다. 제가 주인공에 대해 기대와 망상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으로, 순전히 “요소”만으로 저 망상을 해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짚어주고 있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지적해볼까요? 우선 초반부 주인공이 소개되는 부분입니다.
– 주인공은 불우한 과거로 인해 체념적인 태도를 체화함.
– 주인공은 억압받고 있고, 이는 부도덕한 제국의 정치와 황제 개인의 성격과도 연관됨.
– 하지만 주인공에겐 양심이 있음. 제국의 부도덕함을 비판할 수 있고, 암살당한 자의 시신에 트라우마가 생길 어린이를 걱정함.
이와 같은 정보제공을 통해 이미 저는 주인공에 대해 필요한 요소들을 전부 짚었으며, 이를 “여성 암살자”라는 요소와 조합하여 망상까지 알아서 잘 했습니다.
정리하여, 저는 초반 3~4화를 주인공의 유년기로 풀어써서 주인공에 관한 정보를 처음부터 우루룩 다 풀어내려고 하는 반면, 작가님은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짚어주되, 어차피 너도 알고 나도 알 법한 부분은 “요소”를 통해 업데이트를 간략화하고 있습니다.1
물론 작가님이 사용하신 “경파한 설정설명”은 작가님이 사용한 전략일 뿐, 꼭 이것이 정답이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 읽는 분에 따라서는 레이븐만의 캐릭터가 설명되는 초반부에 좀 더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투입해서, 캐릭터의 사랑스러움을 좀 더 강화해야 하지 않았겠냐고 지적하실지도 모릅니다(있으시려나?).
하지만 일단 저는 작가님이 택하신 전략에 한 표를 던지는 바입니다. 설령 초반의 경파한 설명 때문에 레이븐의 매력 어필이 부족했다 하더라도, 이는 이후 전개를 통해 보충하는 수도 있겠죠. 주요 인물들(특히 로맨스 상대가 되는 남주인공)과의 상호작용으로 매력을 드러내는 방법도 있고, 과거회상이라는 좋은 수단도 있으니까 말이죠. 실제 작품에서도 “참새”라는 주인공의 애마가 등장하면서 주인공의 사랑스러움이 한 층 강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꼭 유년기 에피소드로 도입부 연재분 3화를 소모해야 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작가님은 이야기 전개에서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이야기 구간마다 제때제때 잘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은 작가님이 각 단계에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해두고 있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암살자의 인생을 살던 주인공에게 극적인 삶의 변화가 찾아오는 2화. 작가님은 2화에서 화양국을 언급했고, 화양국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주인공이 “자기 의지와 양심은 묻어두고 명령에만 따르는 무기력한 인생”을 살고 있음을 재차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화양국으로 건너가기 전 짚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작가님이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생겨나는 기대감(=이후 전개에 대한 예측)은, 화양국의 자유 독립을 위한 투쟁에 주인공이 참여하겠구나, 그리고 저 체념적 태도가 다른 어떤 것으로 바뀌겠구나.. 라는 기대감이겠지요, 물론.
“확실하게 짚어야 할 것을 충분히 짚어줄 것” 이라는 명제를 저 스스로가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만, 그동안의 글쓰기에서는 우선순위나 서술 전략 같은 걸 간과하고 있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또 “요소”라는 걸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하고 있었다는 반성입니다. 그 때문에 그동안의 저는 3~4화에 걸쳐 풀어낼 생각만 하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판단은 잘 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만신창이가 되어 화양국으로의 도망을 결심하는 대목은 어떤가요? 이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강렬한 생의 의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나면서, 주인공이 다음 행동을 하게 되는 근거가 무엇인지 짚어주고 있는 거죠. 이래저래 아주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경파한 설명 작전”의 약점이 드러나기도 하지 않았나,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죽음에 몰리자 갑자기 생존욕구에 불타면서 이전까지의 행동패턴과 전혀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데, 약간 설명이 부족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물론 리얼리티를 따지는 것은 아닙니다. 생존본능이란 말 그대로 본능이라, 좀 전 까지만 해도 삶의 의욕이 없던 사람도 랩터가 쫓아오면 생각이 바뀔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레이븐이 갑자기 생존본능에 사로잡히는 것을 두고 “에이 개연성이 없다…” 라고 비아냥거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작가님이 이 장면을 부실하게 다루고 있다는 소리도 아닙니다. 어쨌든 작가님이 이 장면에서 “레이븐은 살고 싶어 한다”라는 정보를 충분히, 강렬하게 짚어주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역시 필요한 정보를 제 때 짚어주는 업데이트 능력이 발휘되고 있다, 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장면이 굉장히 극적이고 강렬한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갑작스런 생존 본능의 체험은 레이븐의 삶의 태도를 바꿀 정도로 강렬한 경험일 터이고, 실제로 작품에서도 그렇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드라마틱함이라는 측면에서, 이 장면을 더 격렬하게 만들기 위한 사전 빌드업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뿐입니다.
일단 저는 몇 가지 방법이 떠오르는군요.. 그걸 여기서 밝히는 것은 작가님에 대한 선 넘는 참견이자 잘난 척일 뿐이겠죠. 그러니 이 아이디어는 제 머릿속에 쟁여두고 있다가 나중에 필요하면 제가 써먹도록 하겠습니다. 허헣. 사실 연전연패의 작가인 저 따위의 아이디어가 어디 정답이기나 하겠습니까….
저란 놈은 주인공의 일상 모습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머지, 이야기 전체의 전략을 놓치는 실수를 자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결론
어쨋든 저는 여성 암살자가 좋습니다!!!! 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겠습니다.
다른 좋은 작품들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 제가 이 작품에 매력을 느끼게끔 한 것은, 역시 여성 암살자라는 “요소” 때문일까요? 확실히 이 부분은 그럴지도 모릅니다. 제가 레이븐의 행적에 기대감을 품고 6화까지 곧장 직행하는 데 성공한 것은, 레이븐이 “여성 암살자”라는 “요소”를 가진 캐릭터였다는 점이 크다…라는 점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함정에 빠져 만신창이가 되는 주인공 장면을 보세요…! 음… 암살자 주인공은 역시 몸 여기저기가 아작나야…. 그리고 그 통증을 참아가며 도망다녀야 한단 말이죠. 보다시피 작가님은 닌자 캐릭터의 필수요소를 잘 짚어주고 있습니다. 닌자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는 배트맨이 매 에피소드마다 만신창이가 되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 닌자 캐릭터의 필수 요소라니, 그것은 물론 제 마음대로의 필수 요소이긴 합니다. 아니 그래도! 날고 기는 암살자라고 해봤자 요상한 잔재주나 피우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이 지적될 때가 저는 너무도 좋습니다! 레이븐이 너무 아파서 눈물철철하는 것도 좋았다죠… 전 “굳은 표정의 최강자”도 싫진 않지만 엄청나게 좋아하기는 어려워서요.
흠흠. “여성 암살자 요소” 라는 것을 활용해 작가님은 독자 한 명을 더 낚았지만, 한 술 더 떠 배경설명을 호쾌하게 단축시키기도 했습니다.
호쾌하게 단축한 배경설명은, 작가님이 초반 전개에서 가장 긴급하게 충족시켜줘야 하는 기대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여기에 집중하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었다고 저는 파악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에 필요한 정보들을 제 때 업데이트함으로써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를 마련하고, 이야기 전개가 허술하지 않도록 하는 포석을 깔아두고 있습니다. 이 역시 이야기의 “전략적 구간”을 파악하고 제때제때 정보를 공개하는 솜씨가 발휘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런 점들은 제가 앞으로 참고하기 좋은 재주일 것 같습니다.
저도 “어떤 기대감을 우선적으로 제공, 충족시킬 것인가” “그것을 위해 어떤 정보를 언제 어떻게 짚어줄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기획할 수 있었음 하는군요. 여기에 “요소”라는 것의 전술적 활용을 좀 더 공부하고 고민해보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