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전히, 不明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수취인, 불명 (작가: 양윤영,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4월 2일, 조회 56

가능성의 우주라고도 말할 수 있는 평행 우주는 사랑을 말하기에 얼마나 적합한 이론인가. 당신이 얼마나 사소한 확률로 나와 맺어졌는지, 내가 얼마나 미미한 가능성에 기대어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는지 설명하는 데는 두어 줄이면 충분하다. 이 우주에서는 내가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지만, 저 우주에서는 나와 당신 중 하나가 없을 수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나와 당신이 모두 없을 수도 있다. 이 지구라는 곳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꿈틀거리는데 하물며 나와 당신이 만날 확률은 천지의 운을 다하여야 계산이 가능하지 않을까. 스치듯 지나는 것도 인연이라지만, 마음과 마음이 맺어지는 데에는 우연보다 깊은 필연이 조금이라도 개입되어야 한다는 당신에게. 그리고 손에 쥔 그 짧은 서신의 기원과 행방을 궁금해하는 당신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 안에 쓰인 건 완전한 우연의 중첩으로 맺어진 깊고도 슬픈 사랑-이야기다. 사랑 이야기라고 가볍게 읽지 말고 사랑-이야기라고 발음해 보는 건 어떨까. 그래. 사랑을 장음(長音)으로 발음하는 거다. 이야기 앞에 사랑을 가볍게 붙이지 말자. 바람 불면 날아갈 감정으로 여기지 말자. 한때 이 지구에 범람했던 가벼운 위로라든지 짧은 단어들로 치환하지 말자. 왜냐하면 이 사랑-을 담은 편지는 불명의 수취인을 향해 우주에서 배달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를 떠난 지 십 년도 더 지난, 유효기간 없는 사랑-이 동봉된 이 편지를 당신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한다. 이 편지는 수취인 불명이다. 당신은, 안타깝게도 복잡다단한 평행우주 속에서 단 한 곳의 지구에 잘 도착했지만, 어딘지 잘못 착륙한 편지를 주운 것뿐이다. 당신에게는 어쩌면 이 편지를 누군가에게 전해줄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행성에 살아남은 마지막 지구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세기의 마지막 우편배달부인 당신이 이 편지를 전달할 ‘가능성’을 매겨보도록 하자.

 

불명(不明), 분명(分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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