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작지만은 않은 – 두 번째 속삭임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두 번째 속삭임 (작가: 마녀왕, 작품정보)
리뷰어: dorothy, 17년 6월, 조회 52

.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20화까지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드디어 이 작품의 리뷰를 쓸 수 있게 되었군요. 20화가 올라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전까지는 우리의 마녀왕 자까님께서 리뷰란을 막아두셨거든요. 자, 잡설은 이만 하고 두 번째 속삭임, 리뷰 시작합니다.

 

  터널 같은 복도는 구불구불 이어지면서, 자로 잰 듯 곧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언덕(이 근처 수킬로미터 내에 사는 사람들은 ‘언덕’이라고 불렀다.) 비탈로 곧게 이어졌는데, 복도 양옆으로 조그맣고 둥근 문들이 번갈아 가며 하나씩 나 있었다. 호빗들에겐 위층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다. 침실, 욕실, 술 저장실, 식품 저장실, 의상실, 부엌, 식당이 모두 같은 층에 있고, 사실상 하나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은 마치 개미굴 같았다.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방과 통로들이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 폐가들 밑에 지어져 있었다. 그 모습들도 제각각이었다. 수십 또는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방이 있는가 하면 오직 한 사람만 쉴 수 있을 크기의 방도 있었다. 이렇듯 그곳은 누가 봐도 개미굴처럼 보였지만 암살자들은 ‘땅굴’이라는 단순한 표현을 더 즐겨 썼다.

 

첫 번째 인용문은 톨킨의 「호빗」, 두 번째 인용문은 마녀왕의 「두 번째 속삭임」의 프롤로그에서 발췌하였다. 작가 스스로가 밝혔듯 이 작가는 톨킨의 열렬한 팬이다. 반지의제왕과 호빗을 재미있게 본 독자라면, 작품 내에 이따금 등장하는 오마주를 발견하고 피식거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 작품이 정통 판타지의 전철을 밟느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용을 무찌르러 떠나는 기사와 마법사 -혹은 호빗-는 온데간데 없고, 근세의 외로운 여왕과 버려진 자식들, 그리고 암살단이 그 주인공인 것이다.

프롤로그에는 후에 암살단 단장이 되는 에오를이 초짜 암살자로 정식 입단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에게 처음으로 내려진 명령은 바로 단장인 자신을 죽여보라는 것. 그는 망설이다 얼떨결에 일격을 당하게 되고, 결국 검을 놓쳐 패하게 된다. “명령을 수행할 것, 그리고 명령을 무조건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 이라는 명언 명령을 듣고 벙찐 에오를에게 단장은 손을 내민다.

혹독한 훈련을 거친 초보 암살자, 그리고 훈훈하게 손을 내미는 단장.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주인공 에오를의 성장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초반 회차에서 에오를은 벌써 단장이 되어있다! 그리고 자연스레 밝혀지는 버려진 자식들의 존재, 섀틀러의 능력, 암살단의 목표. 그리고 어이없을만치 입꼬리를 올라가게 하는 유머러스한 장면까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다음 화를 클릭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장면을 보여주는 데 급급해 묘사에 신경쓰고있지 않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문장들에서 드러난다.

  에오를은 믿음직한 표정과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린아이티를 완전히 벗은 그에게선 남자다운 기백이 느껴졌다. 하지만 코우린의 명령은 그를 단번에 멍청이로 만들었다.

믿음직한 표정과 강한 목소리라. 사실 이런건 묘사로 하여금 독자가 갖게 해야 하는 느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 문장이다. 작가의 과한 친절은 때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상한 불편함-혹은 어색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작품전반에 흐르는 번역체 느낌과 약간은 부족한 문장이 눈에 종종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될수록,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한 문단들과 흥미로운 내용이 돌아서려는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렇다. 사실 이건 에오를의 성장기가 아니라 작가의 성장기였던 것이다.

(초반 회차와 -2017.6.12 기준. 현재 20화까지 연재– 후반 회차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확연히 드러났었지만, 현재는 초반 회차들이 수정되어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확실히, 작품을 진행하며 성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사실 아직까지도 초반부라 내용이라 이야기할 만한 게 적다는 게 흠이지만, 의외로 착실히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중이다.

먼저 에오를이 수장으로 있는, 암살단이 존재한다. 그들은 여왕의 명으로 버려진 자식들을 쫓는다. 혹독한 훈련을 거친 체계적인 집단. 전적으로 여왕을 지지하며 그의 통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후견인 같은 존재들이다.

다음은 여왕 마릴. 모종의 음모로 보여지는 사고로 양친을 모두 잃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신분을 숨기고 암살단에서 훈련받은 경험이 있다. 때문에 암살단을 가족으로 여기며, 암살단의 수장인 에오를과 함께 훈련을 받아 막역한 사이다. 의회의 견제를 받으며 힘겹게 여왕으로서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자로서는 특이하게도, 진보적 정치 성향을 띤다.

암살단이 쫓는 집단인 버려진 자식들은, 초능력을 가진 ‘섀틀러’의 집단이다. 세계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모여 국가 전복을 꾀하고 있다.

어쩐지 독특한 배경과 캐릭터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이야기. 약간은 어색한 문장들에도 불구하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품을 이끌어나간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은 마릴이 의회에서 윌리엄 경과 말싸움하는 장면(8회)인데, 핑퐁식으로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물 흐르듯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논지가 흥미롭기도 하고.

 

「피를 머금은 꽃」의 포그리작가 이후로 성장이 기대되는 작가, 그리고 작품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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