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중인 작품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손이 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눈길도 안준다. 그 이유야 뭐 짐작하는 그대로일 것이다. 더 보고 싶은데, 더 봐야하는데 기다려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은 것이다. 그런데 그 싫어하는 짓을 또 해버렸다. 도대체 어떻기에 이렇게 추천을 하는 것인지 1회 정도는 봐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수였다. 그냥 끝까지 계속 달려버렸다. 그 결과, 다음 회를 무작정 기다려야한다는 사실에 대한 짜증과 괜히 시작했다는 뒤늦은 후회, 그리고 그래도 이런 재미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가 뒤섞여 상당한 감정의 기복을 보이고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한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인지 연재가 올라오는 기간 동안 그 이전의 이야기는 잘 잊어버린다. 덕분에(?!) 새롭게 올라오는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복습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특히나 연재 기간 중 공백이 길어질수록 그 증상은 더 심해지고, 그러다가 때로는 그 복습이 귀찮아서 연재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묵호의 꽃>은 특별한 복습이 필요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저마다의 개성이 제대로 잡혀있는 캐릭터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굳이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기억이 되는, 잘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캐릭터의 집합이라고 해야 할까?!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은 혼란은커녕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에 빠져들게 되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가게 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캐릭터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사실, 이렇게 연재되는 이야기, 특히나 로맨스라는 장르라면 이야기 자체가 좀 가볍지 않을까 하는 편견 비슷한 것이 있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언젠가 유행했던 인터넷 소설. 정말 부담 없이 읽기도 좋고 그만큼의 재미도 있었지만, 언어의 파괴니 뭐니 하면서 많은 비판도 함께 했었던 그런 종류의 소설들 말이다.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묵호의 꽃>은 나의 예상과는 완전 달랐다. 물론 읽기에도 크게 부담 없고, 재미 또한 있지만 결코 가볍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오히려 밝다는 느낌만이 드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충분히 문장들에 힘을 쏟은 것 같은데 그 힘이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그 속에 놓인 대화들마저도 무심한 던지는데 한없이 따뜻하게만 다가왔다. 농도 짙은 어떤 향기에 봄바람이 불어와 여기저기에 좋은 기운들을 살랑살랑 흩뿌려놓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다시 한 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늘어나게 된다.
<묵호의 꽃>을 읽으면서 신기했던 것은 읽는 순간순간마다 장면장면마다 머릿속에서 TV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는 점이다. 무슨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랄까!? 이건 뭐 그대로 TV로 옮겨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아주 자연스럽게 들면서 나도 모르게 이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는 누굴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배우들의 얼굴들이 떠오르고 나름의 이유를 들어가며 여기저기 배치를 하기도 했지만, 뭐 그 캐스팅 결과는 나만의 상상 속에 남겨둘 것이고… 나처럼 이 작품을 읽는 독자라면 저마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찾아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역시 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보다 정확히 말자하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충분히 재미있고, 충분히 훌륭하다는 결론은 이미 내려진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하지만 살짝 아쉬운 마음에 조금 다르게 한 번 생각해본다. 뭐든지 잘하는 여자 주인공이 있다. 외모도 훌륭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인물이다. 단지 약점(!?)이라면 신분이 낮고,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는 것 정도랄까. 그런 그녀에게 저승사자의 탈을 쓴 차도남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만한, 당연히 가진 것도 좀 있고 능력도 있는, 남자가 나타나고 계속해서 엮이게 된다. 분명 이 둘이 사랑을 키워갈 것이다. 제목부터 그러니까……. 근데 이 차도남에게는 미모나 재력 등 모든 것을 다 갖춘 정혼자가 있다. 그리고 여주에게도 친오빠 같은 관계의 훈남 도련님도 있다. 뭐 이런 구조 좀 익숙한 것 같지 않은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고 말이다. 그동안 많이 봤던 것이라면 그만큼 많이 먹혀들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느낌의 구도이기에 많은 이들이 거리낌 없이 다가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고, 이는 결국 대중적이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너무 익숙해서 다른 것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양날의 검과 같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특별해지길 원한다면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을만한 큰 한 방을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슬쩍 해본다.
아직까지 달달한 로맨스다운 로맨스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느껴진다. 그 와중에 또 이 사람들은 나름의 큰마음까지 먹고 의로운 행동들을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배경이나 대충의 줄거리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다. 근데 또 굳이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특별한 설명 없이도 한 번 쯤 읽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고 또 실제로 읽기 시작하게 된다면 그런것과는 상관없이 금방 빠져들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암튼!! 거대한 음모에 맞서서 정의를 이루고자하는 큰 뜻을 추리적인 요소로 풀어내고, 그 속에서 달달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로맨스적인 장르를 더하면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묵호의 꽃>이다. 아직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작품이다. 부디 끝까지 그 힘 잃지 않고 힘차게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