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타입의 조선 명탐정 감상

대상작품: 산신 설원전 – 귀매 (작가: 배명은, 작품정보)
리뷰어: 브리엔, 22년 1월, 조회 45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전례가 없는 참신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시대나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복장이나 행동에 대한 제약이 훨씬 엄격했고, 재산을 사적으로 소유하거나 직업을 가지는 것조차 어려웠기 때문에, 작가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비슷비슷한 캐릭터가 나오기 쉽다.

 

<산신 설원전>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설원은 평범한 인간 여성이 아니다. 설원은 인간의 운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천계의 신 ‘북두신군’의 제자 중 하나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산신으로 강등되어 청수산에 유폐되었다가 현재는 양반의 여식처럼 옷을 입고 어린 여자 행세를 하는 중이다.

 

현재(2022. 1. 27.)까지 총 다섯 편이 공개된 <산신 설원전>에서 설원은 당대의 여성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일이나 일부 계층의 여성들만 겨우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어렵지 않게 능히 해낸다. 그 모습이 작품 전체에 신선함과 활력을 부여하고,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훨씬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를 상상하게끔 한다.

 

 

<산신 설원전>의 첫 번째 작품 <귀매>에서 설원은 어린 여자로서는 드물게 주막에서 국밥을 먹고 잠을 잔다. 호를 야단치면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남자로 변복을 하고 야밤에 몰래 관아로 가서 시체를 살피기도 한다. 자신보다 연상이고 신분도 높은 윤정윤 종사관에게 이래라 저래라 무례한 말을 늘어놓기도 한다. 설원의 곁에 호라는 든든한 호위 무사가 있는 덕분이기도 하고, 사실 설원이 보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겉모습만 봤을 때는 잘봐줘 봤자 중인 신분인 어린 여성이 당대에 감히 할 수 없었던 일들임이 분명하다.

 

 

<산신 설원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설원은 전통 사회의 여성들이 하지 않았을 법한 일들을 한다. <재복데기>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대감집 여자 하인을 찾는 일에 앞장선다. <충>에서는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 과감히 들어간다. 남자 앞에서 거리낌 없이 얼굴을 씻고, 남자 하인에게 머리 손질을 맡긴다. <흑왕의 무덤>에서는 웬만한 남자들도 가지 못했던  청나라 천진에까지 간다. 

 

설원의 이러한 행동과 행보는 남녀유별, 남녀칠세부동석이 보편적인 사회 윤리였던 조선 시대에 보기 드문 일이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설원의 과감한 행동을 두고 윤정윤의 하인 담이 불평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여자의 몸으로 조신하지 못하게”, “여자가 뭘 그리 많이 먹습니까?”) 그 때마다 받아치는 호의 대답이 명문이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감히 설원 님이 씻고 계시는데.”, “여자가 많이 먹을 수도 있지, 왜 빈정거리지?”)

 

이렇듯 전통적인 여성상에 반하는 설원의 특징들은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남성인 윤정윤이 아니라 여성인 설원이 해결하는 전개에 설득력을 높인다. 새로운 타입의 ‘조선 명탐정’ 설원의 활약을 좀 더 보고 싶은 마음은 욕심일까. 부디 다음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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