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이 서늘해질 때.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씨앗 (작가: ccg,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1월 25일, 조회 17

<씨앗>은 어떤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이 먹으면 그 신체를 토양 삼아 자라는 씨앗이 있다. 그 것을 먹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이슈가 된다. 주인공인 선경은 주머니에 그 씨앗을 넣어놓고 만지작거리며 고민한다.

그런 선경은 비록 부모의 이혼을 겪었지만, 평생을 모나지않고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혹은 그렇게 노력해온 사람이었다. 어떤 향기도 내지 않는 무색무취한 사람. 주변에 휩쓸려 고등학교 땐 공부를 하고, 턱걸이로 대학을 진학하고, 연예를 했고, 헤어졌다. 그때 선경은 깨닫는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향기에 취해, ‘평범한 사람’의 무리에 끼어 있었음을.

그렇게 취업을 하지 못하던 그녀에게 강사는 자소서를 거짓으로 꾸며 쓰기를 권고한다. 그러자 계약직으로 취업에 성공한다. 취업 후에는 한동안 괜찮았다. 일은 있었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나빠지기 시작한다. 끝내 권고 사직까지 듣게 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그렇게 그녀는 회사에서 ‘없는 사람’이 된다. 그냥 그만두기엔, 아버지의 반응이 어딘지 껄끄러웠다.

씨앗을 알게 된 건 그때 쯤이었다. 선경은 씨앗을 구매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그 것을 얻게 된다. 그리고 커피 내음과 함께 들려오는 자신의 험담을 들으며 커피 냄새가 나는 식물이 되기를 바라며 씨앗을 먹는다. 그렇게 발아한 열매는 짙은 커피 냄새를 내는 나무가 된다.

 

자신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주체적인 욕망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고,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확신을 갖는 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것. 그 것은 탄탄한 토양에 뿌리 내려야 하기에 선천적인 것이 아닌 후천적인 것이다.

뿌리는 자신의 유년이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뿌리는 양분을 흡수한다. 그런 어린 시절 선경이 겪은 가족의 불화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런 선경을 맡은 아버지가 선경에게 요구한 평범해지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아니 평범이라는 것은 어떻게 규정하는 것일까. 이 소설에서는 그 것을 타인의 향기라는 표현으로 이야기 한다. 타인에게 맞춰진 삶에서 가치를 찾는 인생은 비로소 자신이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없기에, 평범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런 그녀가 씨앗을 원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했을 것이다.

씨앗과 알은 예로부터 생명을 상징했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녀가 씨앗을 구하기 위해 쓸모없는 알과 씨앗을 사들이게 된 것은, 표면적으로는 구매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그들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과 동일한 평범하면서도 자신이 되지 못한 생명들을 마주하는 일이다. 

 

타인의 시선의 서늘해질 때가 있다.

자신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방식으로 말미암아 타자가 된다. 선경은 자신의 가치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선경에 대한 시선을 살펴보면, 선경이 타자화되는 방식을 알 수 있다.

2년 계약직으로 사무실에 들어온 선경에게 사람들은 친절했다. 그녀가 무색무취한 사람인 걸 깨닫고, 더 이상 선경과의 관계를 깊게하지 않았지만, 그녀에 대한 뒷담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첫 일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코로나로 회사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자, 그래서 선경에게 권고사직을 요청했지만 선경이 거절하자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선경을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 그리고 탕비실에서 뒷담이 직접적으로 들려온다.

그 것을 케어해 줄 가족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아버지는 코로나 시국을 이겨내지 못했고, TV만 보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런 아버지는 선경에게 ‘점점 안좋아지는’ 표정으로 ‘신경 쓸 것 없다고’ 이야기한다. 버텨야 한다면서.

그런 시선이 최종적으로 닿는 자리는 어딘지 섬뜩하면서도 서글프다.

“대리님 씨앗 이야기 들었어요?”

이대리와 성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발견된 것만 벌써 수십명이래요.”

(중략)

“성원씨는 인터넷을 그만해야 해. 왜 성원 씨도 씨앗을 구하고 싶어?”

이대리에 말에 성원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게 왜 필요하겠어요. 그런 건 우울한 사람들이나 구하는 거라는데.”

“이게 사실이든 누가 지어낸 이야기든지 간에 참 우울한 이야기다, 그치? 세상이 참 삭막해. 그렇게 사람들을 궁지로 몰고 말이야.”

포트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선경 씨는 그만둔 거지? 이틀 동안 안 나오네.”

“그러게요. 말이나 하고 그만두지. 이래서 요즘 사람들은 기본이 안 되어 있다니까요.”

“우리야 좋지 뭐, 무단결근이면 해고 사유 되니까.”

코로나로 인한 불가불적인 상황에서 경제적 극단에 내몰리는 과정은 현실적이면서도 서글프다. 그런 상황에서 소외되는 상황의 묘사는 개인의 황폐화가 선경을 어떻게 좀먹는 지를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계약직, 권고사직이라는 말이 유독 눈에 띈다. 불황의 시대에서 가장 먼저 해고되는 사람들, 그리고 해고될 수 없어 버티는 사람들의 절규는 선연하다. 하부 구조의 붕괴로 상부 구조의 황폐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타자가 된 사람들은 끝내 극단에 닿을 수 밖에 없다.

그 극단에서 이대리와 성원의 대화는 섬뜩하다. 선경을 타자로 만든 그들은, 씨앗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을 연민하면서도, 그 씨앗으로 자살하게 만든 자신에 대한 인식은 없다. 그저 자신과의 이해 관계로 해결됨을 기뻐할 뿐이다. 선경이 염원한 평범한 사람들이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평범해지는’ 이 극단에는 사람을 가치로만 판단하는 물화된 세태의 인식이 근간에 자리 잡아 있다.

 

비로소 해방되는 사람들이 있다.

선경의 비로소 자아를 찾는 방법이 씨앗을 삼키는 것은 이 세태에 대한 수동적인 비극으로 비치는 듯 보인다. 허나 그 결과가 식물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 하다. 물화되어 인간과 재물 중 재물이 중시되는 교환 가치로 가득찬 이 세태 속에서 재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자가적으로 열매를 맺는 식물은 스스로의 가치가 오롯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욱 인간적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세태는 물화되어 건강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의 가치는 정말 필요할까. 오히려 씨앗을 구할 때 그녀의 곁을 지켜준, 그리고 유일하게 그녀를 아무런 가치평가 없이 인지해준 고양이야 말로 필요한 관계가 아닐까.

더불어 글을 쓰면서 고양이의 상징에 대해 찾아보았지만, 마땅히 나오는 결과가 없어 첨언하기가 어려웠다. 구글에서는 ‘고양이는 여성성(아니마), 어머니, 무의식, 자연의 에너지나 지혜, 삶과 죽음과 재생에 대한 궁극적인 신비를 나타낸다. 고양이 눈이 여러 가지로 변하기 때문에 태양의 변용력, 달이 차고 밤의 광채를 의미한다. 또한 인내, 욕망, 자유를 뜻한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 것보다 맘에 드는 해석이 있어 글의 마지막에 링크를 첨부한다.

https://brunch.co.kr/@sgyang/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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