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여정이 위기에 처하고, 여기 대응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의 길이는 짧은 편이나, 그 등 뒤에 있는 정보가 상당해요. 좀비가 발생한 이후의 세태가 그러한데요, 서사의 근간이 되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눌 자신이 없어, 이후의 이야기는 스포일러 감추기 기능을 사용하여 쓰고자 합니다. 아직 읽지 않은 분이시라면,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라는 점을 먼저 전하고 싶어요.
소설의 첫 장면은 가벼이 정보를 흘리며 진행됩니다. 건축법에 좀비와 관련된 조항이 있으며, 여정과 달리 사장은 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적습니다. 이는 현재를 기준으로 좀비가 이상현상이 아닌 일상의 구성요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또한 전송관이라는 통신 수단을 통해 지금의 일상과는 다른 지점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답니다.
환풍구에 이르러 이야기는 여정을 중심으로 한 현장에서부터 거리를 두고 세상을 비춥니다. 정확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요약에 가깝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선호하는 표현 방식은 아니어요. 그럼에도 재미있게 읽힌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국에는 방식을 넘어 담은 내용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끝내 위협적이지 못한 좀비, 경제 구조에 편입되어 노동자가 된 좀비도 흥미로웠습니다. 좀비는 구조가 얼마나 더 변형될 수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 다양하게 설정되긴 하지만요. 제가 집중한 건 선택권에 대한 문제였어요.
일반적으로 좀비가 되는 일은 선택과 무관하게 소개되고는 합니다. ‘지속 가능한 죽음으로부터’에서는 좀비화도 선택의 대상인 것처럼 보이지요. 특히 흥미를 끌었던 건 선택의 결과가 선택권의 포기라는 점이었습니다.
표면적인 사건에서 좀비를 풀어놓은 것은 ‘보라’이고 이를 해결한 건 ‘여정’입니다. 실질적인 행동은 모두 좀비, 곧 회원들의 신체가 수행했음에도요. 그에 앞서 세계적인 위기에서 인류 문명을 구해낸 것 역시 좀비들입니다. 그리고 과정에서 좀비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좀비를 현대 사회의 우리네 모습과 닮았다는 시선을 갖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찌 되었든 상조회사의 회원들은 신체에서 해방되어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회원들이 이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또 무엇 때문일까요.
감상으로 시작한 리뷰인데 엉뚱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따라하고 싶은, 따라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헤맨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보라’라는 인물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에 와 닿았던 건 ‘좀비가 저희 삶을 좀먹고 있어요’ 라는 발화였어요. 문장만 떼어 보면 좀비물에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요. 다만, 발화에 이어지는 건 보라의 어머니가 내린 선택입니다. 1차적으로 보라는 스스로 좀비가 되려는 세상을 상대로 두었을 수 있겠고, 2차적으로는 스스로 좀비가 될 수 있는 미래를 막고 싶지 않았나 생각해요.
상조회사 지속 가능한 죽음은 그야말로 죽지 않는 죽음을 제공합니다. 회원들은 신체적 죽음이 지속되는 것을 대가로 지속가능한 삶을 받았으니까요.
머릿속이 산만한 탓인지 생각이 여기저기로 튀는데요. 우리가 사용하는 다양한 무료 어플리케이션과 서비스는 무형의 요금을 청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장 SNS나 플랫폼 운영 업체는 공개된 개인정보와 상품에 대한 선호도나 정치적 성향 등을 활용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매일 선택하지만, 동시에 미래의 선택권을 헐값에 내다팔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살아있는 신체보다 지속적으로 죽어 있는 시체가 삶에 더욱 도움이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또 선택하며 선택권을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특정 기능을 하는 뇌의 일부만을 제공하는 죽음을 추가로 맞을 수도 있겠지요. 세상은 위기 끝에도 계속 발전한다는데, 우리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죽을 수 있을까요?
쓰고 보니 참으로 두서 없이 썼습니다. 했던 얘기를 또 몇 번이나 더 언급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렇다면, 그만큼 마음이 가 얘기하고 말았다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전에 좀비가 될 준비를 하는 이야기를 고민한 적이 있어요. 근력이 약하거나, 발이 느린 좀비는 생존이 어려우니 좀비가 되기 전 꾸준한 운동과 건강 관리로 제 2의 인생을 준비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었답니다. 여러 고민 끝에 완성하지 못했는데요. 보다 일찍 이 이야기를 만났다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모방하고 싶은 구석을 곳곳에서 만났어요.
좋은 이야기에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