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외계인들이 들이닥친 건 K가 햄버거를 먹으러 할 때였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읽을 때만 해도 스페이스오페라라는 태그를 읽었던 처음처럼, 그저 외계에도 햄버거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살아남는구나 하는 생각을 무심히 떠올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햄버거]는 매우 중요한 소재를 넘어 주인공의 역할까지 떠맡는다.
‘햄버거를 위한 테러리스트’ 란 제목에서의 언급처럼 이 소설은 햄버거로 시작해서 햄버거로 끝나는 우주 서사이다.
은하제국 아래 지구의 서울에 위치한 햄버거 매장에는 경악할 만한 재료로 만든 햄버거가 인기이고 화자이자 소설에서 통역관의 역할을 맡은 주요 인물인 K가 이 테러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도 스트레스를 햄버거로 바꾼 소소한 행복의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외계이민자들로 북적대는 일자리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K는 변방 외계어를 배운 실용적인 가치관의 일용직 노동자이고 이 은하제국은 다양한 외계인들이 등장함에도 현대를 방불케 하는 온갖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배경이다. 어쩌면 해결하지 못 한 지구의 노동과 환경 문제가 은하로 뻗어나갔음에도 해결되지 못 한 채 확산되기만 한 미래의 오늘일지도 모르겠다.
경제 불황은 이 시대에도 여전하고 그 곳곳에 햄버거를 대량 생산하는 햄버거메이커 같은 기계들이 이민외계종을 비롯한 불어난 인구를 감당하지 못 하도록 종족의 일감들을 뺏어가고 있다. 게다가 사이비 종교가 여전히 횡행한다는 것은 위안을 구하는 헛된 소원을 비는 종족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지구방위대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풀어지는 오물인들의 버거날드 매장 습격 미스터리는 이야기 전체에 재미뿐 아니라 작가의 기지를 충분히 보여주는 또다른 서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 자체가 다시 하나의 액자 속 소설처럼 짜임새 있는 소설이 되고 있다.
아마 독자들이 만약 이 커다란 개그 속에서 슬픔을 느낀다면 오물인들의 탄생과정과 그들이 지구까지 힘들게 찾아오게 된 목적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탄생과 고향은 한 마디로 은하제국 기업의 환경 파괴 범죄 행동에서 비롯되고 그 중심기업은 버거날드이다. 그리고 그 기업을 비호하는 것은 도리어 은하제국을 지켜야 할 안보부이며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이는 다시 죄수들이다.
햄버거소년들을 만들어낸 아버지들은 명령에 의한 것이지만 자신들의 피조물을 배신하고, 살아남은 햄버거소년들의 출현에 따라 공포에 사로잡힌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기업은 학살을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끝없이 출산(?)하는 어머니의 어머니를 창조한 햄버거의 신을 만나기 위해 지구로 오는 여정을 감행한다.
기원을 찾아가는 서사는 익숙한 서사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화두이기도 하다. 기억을 간직하는 모든 종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간이든, 연어이든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또는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것은 존재가 가지는 필연적인 정체성 확인 과정이며, 절대로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되는 끝없는 이야기의 전형이다.
이 소설에선 쓸모없는 쓰레기 행성의 오물들을 끌어들여 이 서사를 멋지게 재구성해내고 있지만 모든 이야기의 작가들이 언젠가 한 번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소설 속에서 재탄생시키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이야기의 창조자가 작가라면 작가의 창조자는 아버지와 어머니, 더 나아가 선조와 민족, 지구, 신이나 조물주, 또는 우주로 확장되는 것은 당연하다.
반복되는 서사는 중요한 만큼 실패 가능성도 높지만 주제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이 소설이 그저 미래의 웃기는 이야기를 넘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본다. 즉, 오물인이 지구를 찾아오게 된 개연성을 획득함과 동시에 오물인이 햄버거소년의 성장기를 거쳐 자신들의 신을 찾아나섰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오물인들이 협상 과정에서 거대 로봇 정크스트로이어를 접했을 때 그것의 외모만 보고 신으로 넙죽 반겼을 때는 속으로 뜨끔 했다. 마치 신세계의 인디언들이 처음 서양인들과 마주쳤을 때 선의로 그들을 받아들였다가 모조리 학살당한 과거의 역사처럼 비참하고 슬픈 결과로 이어질까봐 걱정되어서였다.
그러나 결말은 허무하지 않았다. 그들을 구하는 것은 역시 그들뿐이다. 그리고 결말은 과장되게 낙관적이지도 않다. K는 여전히 일용직 노동자에 머물고 그 인질 사건에서 고생했던 점원 역시 특별히 보상이라 부를 만한 것을 받지 못 했다. 일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단 한 가지만 빼고. 햄버거소년들의 사라진 목숨과 어머니의 어머니를 해방시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테러라고 부르기엔 너무 고귀한 만큼 버거날드 매장은 불매운동을 당했고 햄버거의 신은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
햄버거의 신이 누구냐고?
소설을 읽으시라고 권해드린다.
뜻밖의 재미를 넘어, 심각하고 귀여우면서도 슬픈 햄버거 미생물들의 반란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