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규칙을 비틀거나 우회하지 않고도 완전히 새로운 풍경을 스케치해낸 독특한 좀비물입니다. 인물이나 사건보다는 발상 자체가 이야기의 핵심 동력이 되고요. 좀비로부터 촉발된 대혼란과 그 이후를 다루는 장르에 독자가 흔히 기대하는 지옥도가 이 작품에선 정반대로 펼쳐집니다. 좀비는 관료적인 기술 논리에 꽉 맞게 편입되고, 인간은 여전히 그 위에 군림하며 살아가는데, 이상하게도 여긴 산 사람들의 세상 같지 않죠. 낯선 위화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야기는 바로 그 위화감을 붙잡고 전개됩니다.
아마 이 안에서도 좀비 출현과 대창궐까지의 시나리오는 여느 독자의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이 작품이 정말로 돋보이는 지점은 그 이후부터예요. 인류는 짧은 혼란 끝에 세계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것도 아주 말끔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내죠. 작품 속에서 이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용어가 바로 ‘Z테크’입니다. 무한에 가까운 좀비의 체력을 새로운 에너지 동력원으로 쓰게 되면서 새로운 산업 분야가 열린 것이죠. 이를테면 이 작품에서 좀비의 위상은 증기와 전기, 디지털과 인공지능의 뒤를 잇는 5차 산업혁명의 핵심 자원인 겁니다.
좀비로 인한 지구적 재난을 일종의 경제 현상으로 바라보고, 곧바로 기회의 발판으로 삼는 인류의 모습에는 고무적이기보다는 어딘가 섬뜩한 구석이 있습니다. 양가적이죠. 충분히 안도할 수 있는 긍정적 상황임에도 여기선 기획된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배음이 짙게 울리거든요. 맨 처음에 Z테크의 가능성을 발견한 계기는, 인류사에서 눈에 띄는 진보의 시작이 으레 그랬듯 다소 엉뚱한 행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람이 좀비의 등 뒤에서 낚싯대에 매단 생고기를 띄워주면 좀비는 제 눈앞의 생고기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얼마 뒤 인간은 좀비를 쳇바퀴 속에 넣어 동력으로 쓰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고안해냅니다. 얼핏 황당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인간만이 생각해낼 수 있을 법한, 아주 개연성 있는 발상이기도 하지요. 어쨌거나 주인공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계는 그렇게 다시 균형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과 좀비의 구도를 노골적으로 역전시킵니다. 실은 첫 장면부터 그렇죠. 이 작품의 첫 문장은 이래요. ‘좀비는 등 뒤에 있다.’ 주인공 ‘주여정’은 자신이 언제나 좀비의 등 뒤에 서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줄 알았겠지만, 어느새 제 등 뒤에 바짝 다가선 좀비의 위협으로부터 달아나고 있죠. 이 일을 몰래 기획한 인물은 같은 회사 직원 ‘연보라’입니다. 여정과 보라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지속 가능한 죽음’이라는 이름의 상조회사인데, 이 회사가 하는 일이 꽤 흥미롭습니다. 좀비 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세계에서 죽음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고, 그에 따라 자연히 상조회사가 하는 일도 달라졌거든요. 이 세계에서는 인간으로서 생명이 다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좀비가 되면, 남겨진 가족이 쓸 에너지 공급에 필요한 노동력을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기적의 논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성립합니다. 이미 대창궐로 한 번 황폐해진 세계는 인간의 도구화나 소외 이슈에 큰 관심이 없는 듯 보이고요. 상조회사는 원하는 사람들의 몸 안에 기꺼이 좀비 바이러스를 주사해 줍니다.
짐작대로 좀비는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으로 급부상합니다. 상조회사 ‘지속 가능한 죽음’은 그런 시대에 빠르게 적응하여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죠. 산 사람의 뇌를 적출한 뒤 보존 용기에 담아 의식만 메타버스로 보내고, 몸은 좀비로 만들어 자본을 축적하는 겁니다. 회사로선 획기적인 발상이지만 인간으로선 그야말로 절망적인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좀비 아포칼립스와 자본주의의 결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보라는 좀비 산업이 만연한 이 세계에 저항하는 인물입니다. 회사의 자산인 좀비를 허가 없이 풀어놓아 여정을 곤경에 빠뜨린 것은, ‘지속 가능한 죽음’과 같은 상조회사들이 더 이상 세력을 넓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보안 상의 취약점 때문에 고객(용기 속의 뇌)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를 지탱하는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이루어질 테니까요.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뛰어나고 동시에 가장 기괴한 이미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합니다.
보라가 풀어놓은 건, 고객의 뇌를 적출하고 남은 몸으로 만든 좀비였습니다. 그리고 이 좀비들이 향하는 곳은 용기 유지실, 그러니까 원래 그 몸 안에 있던 뇌가 보관된 장소인 거예요. 원래 하나였던 몸과 뇌가 분리되어, 몸이 뇌를 뜯어먹는 형국이 되어가는 것이죠. 하지만 여러 구의 좀비가 각자 자기 뇌를 알맞게 찾아갈 리 없으니 여기에도 장치가 하나 더 추가됩니다. 그 결과 제 몸이 제 뇌를 뜯어먹는 지옥도가 치밀하게 완성되지요. 적어도 저는 이런 좀비물을 이전에 본 적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보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보라의 계획대로 회사는 무너지고 세계가 다른 방식으로 재건되었다면 아무래도 작품의 임팩트는 조금 약해졌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이야기는 끝까지 초점을 잃지 않습니다. 작가는 결말에서 독자로 하여금, 도려내어진 보라의 뇌가 출력하는 비명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의도했던 최종 목적지에 끝내 도착합니다. 정말이지 시체보다도 차디찬, 메스로 도려낸 것 같은 세계를 막 갔다 온 느낌이 들게 하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