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공포는 여러 종류가 있을 겁니다. 어느 순간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이라던가, 마지막 한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소름끼치는 반전의 짜릿함도 공포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줍니다.
일월명 작가님의 [붉은 망태]의 경우 다 읽고 나면 가슴 한 구석이 갑갑해지는 먹먹한 공포감을 안겨주네요. 사실 이 작품의 경우 어느 정도 주인공의 상황에 공감이 가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아이를 가진 맞벌이 부부(저군요..)가 아니라 하더라도 작품이 주는 저릿저릿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묻혀 있습니다.
희선은 부부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되어 아이를 가집니다. 육아와 복직에 대한 계획까지 꼼꼼하게 세워 놓은 그녀와 남편이었지만, 완벽했다고 여겼던 계획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예상보다 손이 많이 가고 남편은 예전과는 다른 말을 하고 있으며, 회사에서는 예정보다 급하게 자리로 돌아와주길 바랍니다. 그런 그녀에게 묘한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가 나타나는데…
아무리 아이를 사랑한다 해도 살면서 한 번 정도는 이 아이가 내 인생의 사다리를 한 칸씩 부러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순간을 겪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현실이 팍팍하고 주위에서는 잘 되면 질투하고 안 되면 비웃는 시선들만 가득한 것 같은 아주 더러운 기분이 들 때면 내가 사랑하던 모든 것들이 내 어깨 위의 짐으로 보이게 됩니다.
엄마는 힘들게 얻은 아이가 귀하고 사랑스럽지만 사회인으로서의 자신의 발걸음 또한 지키고 싶어 합니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지만 어찌어찌 짜 맞춰 놓은 계획들은 타인의 조건과 상황에 의해 너무나 쉽게 어긋나 버리고,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망태 할아범의 질문에 대답을 해버리고 맙니다.
안부 인사처럼 쉽게 나온 그녀의 대답에서 엄마이자 아내, 인간으로 살아가는 팍팍함이 제 머리 속에 콕콕 박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팍팍함이 우리를 흔들리게 하고 맘에 없는 말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후회하지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보면서 재미있었던 점은 굉장히 시니컬한 제목과는 달리 생명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떨까요? 일월명 작가님은 비틀거리는 엄마와 아이에게 어떤 결말을 주셨을까요?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는 말을 이제는 멋쩍게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 말 한마디에 상처 받고 밤새 답이 없는 고민을 하던 멍청한 아빠였던 저는 이 글을 다 읽고 나니 손바닥이 땀으로 흠뻑 젖었더군요.
세상 모든 엄마 아빠와 그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서 이 작품을 독자 여러분들께 권해드립니다.
처음엔 ‘일월명 작가님의 스타일은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읽었는데 읽고 나니 역시 좋은 작가는 장르나 스타일을 가리지 않는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됩니다. 조금 무겁지만 재미있는 단편 소설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