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회차까지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별리낙원이 탄탄하고 정교하며 또한 화미(華美)한 소설임을 언급해주셨습니다. 저 또한 읽어나가는 동안 한 단락도,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에서조차도 허술함이란 것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복잡하고, 따라갈 것과 새겨 지닐 것이 많은 소설이니만큼 선뜻 독파하기 어렵지만, 그렇기에 읽어나갈수록 별리낙원의 세계를 알아간 기쁨이 커집니다.
별리낙원은 광막하고도 또 한편으로는 화려장중해서, 사원의 천장화를 우러르듯 숨죽이고 올려다볼 수 밖에 없는 작품인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인류유산으로 남은 프레스코화나 스테인드글라스화가 그렇죠. 탐미와 혼신이 담긴 그 작품들은 어느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언제까지고 남겨 전하기 위해 탄생했지요.
그 예술품들이 그렇듯 별리낙원도 수많은 희로애락, 양분할 수 없는 인간군상, 때론 사람을 어리석거나 숭고하거나 비참하게 만드는 연모지정을 수많은 환란과 사건들에 담아냅니다. 그래서 예술을 감상하는 눈으로 소설을 읽으면서도 가슴은 시렸다가 타오르기를 반복합니다. 그야말로 진원과 선우, 수신과 화신의 힘을 품고 서로를 밀고 당기는 두 사람 자체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도록.
별리낙원의 배경세계는 정쟁으로 소용돌이치고 정적들은 다양하면서 만만치 않으며 또한 섣불리 피아구분을 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이어지고 겹쳐지는 갈등관계는 복잡하고 조밀한데 한편으로는 긴장을 잃지 않습니다. 정쟁과 사건중심으로 작품을 읽으려 해도 충실하며, 애정관계에 주안점을 두고 읽으면 또 애절하고 먹먹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마음에 가장 기울어서 읽고 있고요.
비록 아직은 서장에서 일어난 일과 94회까지 진척된 사이의 것은 짐작만 할 뿐이지만, 선우가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며 진원에게 왔음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로맨스적인 감동이 커져가고 있습니다(사미르에서 있었던 일을 전부 알게 된다면 분명 진원의 심경에 공감하면서 선우에 대한 상심도 하고 운명도 탓하고 다 하겠죠…빨리 읽어나가겠습니다 마음이 짠해지겠지만 감동은 크겠지요 따흐흑).
선우가 타흐이드 카밀 시절에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그럼에도 카밀의 생과 그 성정을 돌이켜 보면 전쟁 끝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아르투르를 등지고 건너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서요.
지고한 카밀이라면 분명 전란으로 상처입은 국토와 거기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눈에 밟혔을 거고, 그럼에도 진원의 “같이 가고 싶고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이 카밀의 가슴에 남아서 132년의 이야기는 펼쳐진 거겠죠. 화신의 기운 때문에 대한 땅에서 몸이 망가지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든가, 황녀와(진원이든 소원이든)혼인하여 누릴 영화 같은 것은 정말 카밀에게는 부차적이지도 않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겠구나 싶습니다. 아래 문장이 그런 감동을 집약한 한 줄이었어요.
「성화가 베푸는 따사로운 기운 속에서 선우가 떠올리는 사람은 언제나 진원 단 한 명뿐이었다.」
덕분에 선우가 진원에게 남긴 깊은 상처를 통감하면서도 때로는 몰염치할 만큼 진원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밉지 않고, 이대로 복록을 누리며 해로하길 바라게 되고요.
그리고 진원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느껴집니다. 진원 자체가 시원스러우면서 당참에도 때로 형언 못하게 가련해지는 것처럼, 선우를 대하는 모습에서 그렇게 되어요. 누군가의 말갛게 웃는 모습에서 슬픔을 느끼는 바로 그런 감상이 됩니다. 특히 87회에서 93회까지가 로맨스로 가슴 저며지는 정점이었네요.
진원은 선우에 대해 그렇게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지만, 계속 함께하지 않고 보낼 거고 그 전에 성심을 다한다는 느낌이어서요. 살아가기 위해 서로가 함께여야 하는 걸 아직 모르는(선우가 말 다 안해서 모르는 거지만) 채로 선우에게 주는 애정이 충만한데도, 때때로 그런 진원의 마음 표하는 모습 때문에 오히려 가슴에 바람구멍이 듭니다. 예고된 사건들이 더 펼쳐지고 두 사람의 지난날과 선우가 감춘 것들이 드러날 소설 뒷이야기들이 두려운 한편 가슴 설레네요.
간결한 글귀나 수수한 조형물이 아닌, 굳이 공들이고 치장하여 만든 수려한 유산. 그러면서도 가상성과 복잡성을 망라하여 살아 있는 서사. 상처 위에 디뎌 선 채로, 늘 이별을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서로에게 계속 함께하고픈 열망을 말하는 한 쌍의 추억. 그런 것들로 엮인 소설인 별리낙원에서 거니는 시간을 소중히 하고 싶습니다. 그 거닐음을 계속하며 작가님을 응원하겠다는 말과 함께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