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투명제단>의 배경도 바로 재개발이 진행되는 ‘정도프라자’다. 절대 나가지 않으려는 정도프라자 입점 점주들을 끌어내기 위해 양사장이 고용한 용역들이 투입된다. 용역들 안에서도 과거에 아버지가 용역들을 상대로 투쟁하셨던 기영, 재개발로 살던 집을 잃은 진형, 정도프라자 투쟁민들을 돕기 위해 용역으로 위장잠입한 국철, 깡패 노릇을 하다 용역일을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승만과 그 패거리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점주들을 끌어내기 위해 정도프라자로 잠입한 용역들은 기존에 보아왔던 철거현장과는 달리 쥐죽은듯 조용한 정도프라자를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러다 곧 ‘그것’이 등장하면서 조용하던 철거현장은 비명소리와 아우성이 난무하는 살육현장으로 바뀐다.
힘으로도 제압할 수 없고 도망쳐도 끝까지 쫓아와 사람을 먹어치우는 ‘그것’을 보며 정도프라자에 갇힌 사람들은 본인의 민낯을 드러낸다. 기영과 막역한 사이였던 정우는 말로는 기영을 챙기겠다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지에 내몰린 기영을 외면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정우와 국철, 진형 등 다른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던 기영과는 참 대조적이다. 물론 기영같이 행동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자기 입으로 기영을 그렇게 아낀다고 했으면 한두 번 정도는 기영을 구하려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기영을 버리고 양사장에게 돈을 갈취하다 ‘그것’에게 먹힌 정우를 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그것’과 눈을 마주치면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과 눈을 마주친 이후 옴쭉달쭉도 못하고 그대로 뜯어먹혔지만, 기영만은 가까스로 손에 쥐고 있던 거울 파편으로 ‘그것’의 눈을 찌르며 반격하는데 성공한다. ‘그것’과 눈이 연결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눈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또 기영은 무엇을 보았을까. 살아온 지난 세월들? 앞으로 겪을 고난? 산채로 뜯어먹힐 공포? 당사자가 아니면 누구도 모를 것이다. 살아남은 기영은 평생 말을 해주지 않을 것 같으니, 나는 앞으로도 짐작만 하겠지.
결국은 기영만 남기고 정도프라자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죄다 ‘그것’에게 먹힌다. 살아남은 기영조차 한쪽 눈을 잃은 상태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정도프라자가 ‘그것’을 위한 제단이 된 셈이다.
“니들 싹 다 지옥 갈 거야.”
“그 지옥에 갇혀서 니들끼리 서로 잡아먹으면서 괴로워하다가 죽을 것이야.”
1화에 등장했던 할머니의 말이 씨가 되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기영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사람으로써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려고 노력했고, 그 덕에 마지막에 목숨이나마 건진 게 아닐까. 마지막까지 ‘그것’을 피해 살아남았지만 정도프라자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어 결국은 압사한 양사장을 보면 내 추측이 아예 일리없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양사장이 기영을 도와 그 옆에 남아있었다면 기영을 구하러 온 다른 사람들에 발견될 수 있었을 테니까.
앞으로 기영은 애꾸로 살아야 하며, 눈을 잃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그것’을 귓가에 평생 달고 살아가야 하지만, 이건 기영이 용역일을 했던 것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기영도 용역일을 하며 다른 사람의 눈에 피눈물을 낸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도 살아남았으니 살다보면 언젠가는 ‘그것’을 떼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날도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기영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더이상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을 밀어버리는 일은 하지 말고.
폐쇄된 공간에서 ‘그것’에게 사냥당하는 공포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민낯과 가난에 대한 고찰이 스피디한 전개와 잘 어우러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정도프라자로 놀러오면 잊을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어때요? 한번 와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