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아리가 자신의 팔에 피를 내고 흡혈하는 강렬한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흡혈귀 소녀의 관점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장면부터 인상이 깊어요.
꼭 제가 흡혈귀가 되어 역겨운 냄새들 속에서 향긋한 피 냄새를 맡는 듯했어요. 여기서부터 순식간에 소설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점점 내용이 전개되면서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이 드러납니다. 흡혈귀만 있는 게 아니고 증기기관과 일제강점기, 자동인형과 기술자가 있네요. 작가님이 이미 이미지가 정해져 있는 일제 강점기라는 배경에 슬쩍 끼워 넣은 스팀펑크와 흡혈귀라는 요소가 잘 섞여 있어서, 큰 이질감 없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서 느껴지는 작가님의 내공이란!
그리고 흡혈귀를 다룬 만큼 피가 계속 등장하는데, 묘사의 디테일이 취향이었어요.
마지막의 ‘쿄코의 뜨거운 피가 빠르게 흘러갔다. 이 땅 위를 거칠게 내달리는 강철 기차의 속도로 흘렀다.’ 는 이 문장! 이전에 묘사된 조선의 상황과 쿄코한테 일본인의 피가 흐르는 걸 부각하는 듯해 좋았어요. 더불어 퇴마도가 흡혈귀가 아닌 인간에게 휘둘러진 것도 너무 모순적이고 재밌다고 생각한 부분입니다.
다 읽고 나니 다음 편이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없어서 슬퍼요. 전체 내용이 프롤로그 같았는데요, 작가님이 장편화 하시는데 응원하는 마음으로 작게 글을 끄적여 보았습니다. 이 맛있는 작품을 읽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작가님. 건필하세요!
ps
확장했으면 좋을 부분을 적어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봐서 뒤늦게 몇자 적어봅니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문명의 이기로도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면 좋겠다’ 고 한 게 살짝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할아버지의 심정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서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