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속에서 조연으로 살해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비평

대상작품: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작가: 고수고수, 작품정보)
리뷰어: 초모완, 21년 12월, 조회 87

잘생긴 것이 늘 새롭고 짜릿한 것처럼, if 놀이는 언제나 무료한 머릿속을 분주히 사고하게 만들어 준다. 로또 일등 당첨 계획이라든지, 절세 미남미녀가 나만을 좋아해 준다든지, 무협지 속 세상에서 절세무공을 구사하는 주인공이 된다면? 하는 if 놀이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의 작품은 ‘밀른 가문의 참극’ 이라는 추리소설을 재밌게 읽은 화자가 자고 일어나 보니 해당 소설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버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우에는 상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if 놀이는 아니었다. 소설 속 이야기를 따르자면 다음에 살해될 인물이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아침에 소설 속 하녀 ‘레나’로 살게 된 주인공은 소설의 창시자이자 조물주인 작가로부터 기존 소설이 인기가 없으니 좀 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바꿔 달라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게 된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죽지 않으면서 범인을 추리해 내야만 한다. 

소설 속 피해자로 살아가게 된 주인공은 이미 ‘밀른 가문의 참극’ 소설을 읽어 보았기에, 그래서 앞으로 진행될 사건을 예측할 수 있기에 쉽게 사건을 해결할 것만 같았지만 소설 속 진범이 죽으면서 이야기는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시시각각 사건이 바뀌고 설정이 바뀌면서 주인공인 레나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소설 속 주인공격인 명탐정 윌 헌트는 범인을 빠르게 잡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더 이상 이 집에서 살인 사건이 나오지 않게 할 겁니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범인은 이 말에 더 자극을 받았는지 꾸준히 사람들을 살해한다. 헌트가 말을 줄였다면 사람들이 덜 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명탐정 코스프레를 하며 레나와 함께 사건을 조사해 나간다. 범인을 빠르게 잡아내지는 못하였지만 그는 여전히 잘생기고 사람들에게 친절한 명탐정 윌 헌트이다. 이야기 마지막에 가서는 레나와 자신의 위치가 역전되기까지 하지만 그는 여전히 레나에게 잘해주는 ‘굿 윌 헌트’ 이다. 

 

 

‘수비를 믿으면 안돼. 자기 자신을 믿어야지.’

한화 출신 야구선수 류현진의 말이다. 이는 레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잘생기고 친절하기는 하지만 명탐정 윌 헌트만 믿고 있다가는 다음 살인 피해자가 레나 자신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레나는 동분서주하며 조사를 하고 범인을 찾아내려고 열심히 추리한다. 과연 주인공 레나는 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어나가면서 자신이 살해되기 전에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클리셰를 싫어하면서 좋아한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인 즉슨, 대중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익숙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비슷한 소재, 비슷한 줄거리로 이어지지만 ‘내 저럴 줄 알았다’ 라며 혀를 끌끌 차며 보는 것이 클리셰의 힘이다. 

하지만 클리셰만 따라간 이야기는 조금 식상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이야기는 여기에서 살짝만 비틀어 주면 된다. 그러면 같은 소재로 이야기가 시작했더라도 마지막에 가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끝나게 된다. 같은 원재료를 사용하였더라도 각각의 요리가 다른 것처럼, 클리셰를 충실히 따른 이야기들이라 할지라도 조금씩만 비틀어서 이야기가 전개되면 결국에는 전혀 다른 요리가 되는 것이다.

‘추리 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소설은 기존의 익숙한 추리소설 클리셰를 빌려 쓴다. 하지만 온전히 가져다 쓰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하게 변주해 낸다. 집 안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나가는 와중에 범인이 누구일까 예측하는 추리 소설 속 재미는 온전히 지닌 채로 기존의 클리셰들을 약간씩 변주해서 만들어 낸 새로운 이야기들이 균형을 잘 이루며 소설을 이끌고 있다.  

‘추리 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는 소설 속에서 한 집안의 사람들 반절 이상이 죽어나간다.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야기는 이미 ‘밀른 가문의 참극’ 이라는 소설에서 상황 설정과 트릭이 꾸며져 있고, 이 이야기들을 ‘추리 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에서 다시 한 번 상황을 바꾸고 트릭의 밧줄을 정교하게 꼬아낸다. 그리고 그 단단하게 꼬아진 밧줄이 결국에는  훌륭한 이야기의 매듭을 만들어 낸다. 

‘추리 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소설은 끝이 났지만 흥미로운 세계관과 캐릭터들의 여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은 듯 보인다. 계속 소설 속에 남기로 결정한 레나의 삶은 어떻게 될지, 주인공 버프가 약해진 명탐정 헌트의 앞길은 어떻게 될 것인지, 혹은 레나가 주인공인 소설이 다시 인기가 없어져 새로운 사람이 또다시 소설 속 세상에 떨어져 전혀 색다른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밀른 가문의 참극’ 소설 속 설정과 각 사건에 대한 트릭들, 그리고 그 설정과 트릭들을 비틀고 새롭게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을 같이 즐겨보시길,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들은 어떤 식으로 풀어 나갈지 자신만의 if 이야기들을 꾸며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상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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