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더한 공포, 외로움.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네버마인드, 지구 (작가: 헤이나, 작품정보)
리뷰어: 초모완, 21년 12월, 조회 51

환경오염으로 더 이상 지구에서 사람이 살기 힘들어진 2090년대의 지구. 인류는 척박해진 지구를 버리는 선택을 했고 점차 사람들을 다른 행성으로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각 나라의 다양한 분야의 직업 종사자들부터 이주를 하기 시작하지만 사람들은 지구에서의 생활을, 한번 이주하게 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지구에서의 삶을 깨뜨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반면에 신문기자인 지희는 지구에서의 삶에 별 미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프록시마 B 행성의 신도시 페니안 으로의 이주에 지원하게 된다. 

지희가 지구에서의 삶이 없거나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문기자로서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페니안 도시로 이주한다고 했을 때 가지 말라고 말리던 가족도 있었다. 페니안으로 향하는 헤르메스호에 몸을 싣게 되면 그야말로 생이별을 하게 될 것인데 정작 당사자인 지희는 무덤덤하기만 하다. 

헤르메스 호에 오른 지희와 다른 이주민들은 오년 동안의 항해를 해야만 한다. 기나긴 항해 기간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동 수면을 하지만 지희는 냉동 수면을 거부한다. 그녀는 직업 정신을 내세우며 헤르메스 호에서의 일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우주선의 이름과 같이 제우스의 말을 전달하는 사자처럼, 지희도 우주선에서 있었던 일을 전달하고자 했다. 

우주선을 살피는 몇 명의 승무원들이 있었지만 그들과의 대화는 없었다. 그들은 냉동 수면을 하지 않는 지희를 별종처럼 생각하는 듯했고 식사도 자기네들끼리만 하였다. 그래도 지희는 괜찮았다. 대화하는 사람이 없어도 귀를 즐겁게 해줄 음악이 있었고, 재미있는 드라마와 영화도 있었다. 지희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라도.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항해 132일째 지희는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간다고 느꼈다. 약 1825일의 항해 중 기껏 132일이 지나갔을 뿐이었다. 앞으로 지금껏 버틴 시간을 열세 번을 더 버텨야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멋진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도,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일렉 기타의 소리로도 지희의 고독을 채워주지는 못하였다.  

무료함을 깨뜨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국 우주선인 ‘이카루스 Ⅳ’ 호의 신호가 소실된 것이었다. 밀랍 날개를 달고 태양에 다가가려다 추락한 인물과 같은 이름인 이카루스호를 찾으러 갈지 정해진 계획대로 페니안 행성으로 나아갈지 옥신각신 하지만 결국에는 단 며칠간만이라도 이들을 탐색해 보고 가는 걸로 결정을 내린다. 

끝을 알 수 없는 새까만 우주 속에서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는 이카루스 호를 발견한다. 다만 Ⅳ호가 아닌 Ⅲ호였다. 30년 전에 출발한…

알 수 없는 이유로 우주에 표류해 있던 이카루스Ⅲ 호의 사람들은 구조신호를 보내 놓은 채 모두 냉동수면 상태로 들어갔다. 그들을 바라보는 지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애초에 냉동 수면에 부정적이었던 지희에겐 자신도 자칫 잘못되면 이들과 같은 상황이 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이카루스Ⅲ 호는 운이 좋아 30년 만에 이렇게 발견되기라도 했지. 그렇지 않다면 영영 못 깨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카루스Ⅲ 호의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지희의 눈에는 이들이 시체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희는 위의 일을 겪고 나서 의외의 결정을 내린다. 냉동수면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영영 못 깨어날지 모른다는 공포를 이겨내고 지희는 어쩌면 자살이 될지도 모를 냉동수면을 결심한다. 

태블릿에서는 나를 위해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주고, 지구에서의 인기 있는 드라마 영화를 보여 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외로움의 허기를 달랠 순 없었다. 그녀에게는 못 깨어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보다 외로움의 고통이 더 컸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냉동수면 되기 직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구에 남겨진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을 수도 있고, 지구를 떠날 때의 등 뒤에 남겨진 쓸쓸한 내 방 모습이 생각났을 수도 있고, 여전히 멋진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불의의 사고로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깜깜한 우주 속에서 끝없이 유영하는 끔찍한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희가 냉동수면에 들기 직전에 미소 지었다면, 어쩌면 1500여일 뒤 페니안에서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우주라는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지희의 외로움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어쩌면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화상을 그린 것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시국까지 와서 더더욱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과 만나 웃고 떠들며 이야기 하는 것이 제한  되는 현시점에 사람들의 외로움은 점점 커지고 있는 듯하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등 혼자 할 수 있는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지희가 느꼈던 것처럼 그런 것으로는 외로움과 고독을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카루스Ⅲ 호처럼 외로움의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지희가 바라듯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바라듯이, 자유롭게 사람들과 만나 웃고 떠드는 새로운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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