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존재라서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자신을 의탁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 한다. 아마도 이런 마음이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었을 텐데, 지금처럼 유일신 사상이 세계의 대부분을 뒤덮기 전에는 삼라만상에 신 또는 신 비슷한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이는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가택신을 비롯한 온갖 다양한 신이 만들어졌고, 그중에서도 성주신은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무사와 안녕을 수호하는 신의 우두머리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이필원 작가의 소설 <처마 밑의 지킴이>에는 바로 이 성주신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중학교 3학년 은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은재의 외할머니에게는 집안 대대로 전해져온 기와집 한 채가 있었는데, 이 집을 물려받은 외삼촌이 여동생들과 상의하지 않고 이 집을 팔아버려서 엄마와 이모들이 화를 낸다. 보름 후 공인중개사 겸 풍수역학전문가 순영이 은재네 집으로 찾아와 은재 엄마에게 부동산을 거래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외삼촌이 그 일을 빠트려서 ‘어르신’이 크게 화가 나 있다고 전한다. 대체 그 어르신이 누구냐고 묻자 순영은 가신이라고 답했고, 은재 엄마가 믿지 않는 태도를 보이자 순영은 그 자리에서 가신의 존재를 입증한다.
순영의 차를 타고 외할머니의 집으로 간 은재네 가족은 그곳에서 다양한 일을 겪는다. ‘어르신’을 비롯한 가신들을 찾느라 또는 그들이 시키는 일을 하느라 오랜만에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기도 하고 집 주변을 돌면서 변화를 살피기도 한다. 화가 난 신에게 용서를 빌기 위한 행위이지만, 덕분에 은재네 가족은 그동안 제대로 돌보지 않고 버려두다시피 했던 집을 다시 보고, 이 집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던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정말로 성주신이 존재해서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 조상들이 성주신이 지켜준다고 믿었던 집안의 무사와 안녕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과 봉사를 해온 사람들의 공이 아닐까.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문제의 기와집은 외할아버지의 집이 아니라 외할머니의 집이다. 외할머니로부터 기와집을 물려받은 문서상의 주인은 외삼촌이지만 실질적인 주인 노릇은 은재 엄마가 한다. 외삼촌과 엄마, 성주신을 연결하는(문자 그대로 ‘중개’ 역할을 하는) 공인중개사 순영 역시 여성이다. 순영과 외할머니의 집에 갈 때도 은재네 가족 중 아빠는 안 가고 은재 엄마와 은재, 은재의 남동생 은규만 간다(아빠는 같이 가는 대신 참치김밥을 싸준다).
같은 남매라도 은재는 어른스럽고 은규는 어리숙한데, 은재는 중학생이고 은규는 초등학생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기억할 – 그리고 언젠가 엄마의 뒤를 이어 대주의 역할을 하게 될 – 책임이 은규가 아니라 은재에게 있기 때문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날 이후 전보다 용감해진 은재 엄마가 은재 남매에게 “집안의 대들보로 남자만을 말해선 안 되지. 이젠 여자 대주가 대세니까.”라고 말한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여성과 귀신이 협력하는 이야기는 전통 설화에도 많지만, 억울하게 죽은 여성이 귀신을 통해 복수하는 ‘피해자 여성 – 대리자 귀신’ 구도가 대부분이다. 그에 반해 이 소설은 주위의 어떤 남자도 미덥지 않은 세상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던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던 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연대와 협력의 관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신선하고 진보적이다. 이들의 ‘협업’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