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선택이 정말 너의 것이냐?’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바벨 (작가: 달리, 작품정보)
리뷰어: 향초인형, 21년 11월, 조회 51

*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소설은 주인공 올가가 친구였던 연우의 실종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 그를 찾아나서는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전제는 현재 올가가 스스로 선택하여 시민이 된 도시 ‘바벨’이 예전의 거주지였던 변두리 도시보다 완벽한 세계로 상정되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 곳은 이방인이라고 지칭되는 일부를 제외하곤 바깥 현실세계는 인공지능과 전문인력의 손에서, 그리고 시민들은 가상세계에서 보내는 것으로 이분화됩니다.

일단, 이 완벽한 세계로 일컬어지는 곳에도 빠른 지식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 하는 노인과 적당한 값을 치르지 못 해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 하는 소외 계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벽’하다는 것은 모두를 아우르는 평등한 세계를 일컫는 뜻은 아닙니다.

가상세계에 머무는 것은 다른 소설들처럼 현실과 완전히 단절되기보다는 절제된 규칙이 있어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게 분명히 차별화되지만 역시 당근의 힘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영향을 끼칩니다. 삭막한 미래 모습이죠.

소설 전개는 올가가 연우를 찾는 과정에서 이 세계에 만족하고 잘 적응해 살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이유를 장소의 이동과 행동의 궤적에 따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가가 자신의 인공지능 양육자에게 품었던 신뢰가 ‘바벨’이란 도시를 설계한 창조자를 만나면서 허상을 깨닫고 그 행복에 대한 신념에 균열을 가져오는데요.

올가는 자신의 나이답게 ‘선택’의 자율성에 대해 삶의 행복을 좌우할 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알고 보면 자신이 내렸다고 생각한 결정조차도 이전 양육자가 유도하여 새로운 양육자에게 넘기는 형식으로 물밑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선 인간보다도 의지하던 인공지능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변화를 겪습니다.

양육자는 사랑하고 있는 자식의 행복을 원해서 중요한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그 세계로 인도하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것이 본인의 생각을 거쳐 숙고한 후 나온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반적인 양육자와 피보호자 간의 딜레마가 여기서도 반복됩니다.

올가는 그 사실을 명확히 깨닫고 그 선택의 문제에서 신중함을 보임으로써 성숙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른들의 세계는 올가에게 중요한 것을 속이고 있는 씁쓸함을 남깁니다.(결말에 대한 스포를 하지 않겠습니다)

올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느끼는 외로움을 이해받고 싶어하는 평범한 소년입니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외로움이란 인간이 가지는 존재의 본질입니다. 지문처럼 개별적인 동시에 철저히 고유하기 때문에 사람은 완전히 이해받는 게 불가능하다는 모순을 가집니다.

그러나 올가는 처음 그 사실을 깨닫지 못 하고 자신의 생체리듬을 읽는 인공지능에게 완벽하게 이해받고 있다고 행복해합니다. 그리고 올가가 인공지능에게 실망하는 이유도 자신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분석했기 때문에 이해받는 것으로 오해했음을 깨닫는 데서 찾아집니다.

올가가 존재의 모순을 깨달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인공지능과 인간의 가치에 대한 우위가 전복되는데까지 성장합니다.

가독성이 좋게 이야기들을 날짜별로 배치했을 뿐 아니라 술술 읽히기 때문에 다가가기 좋은 소설입니다.

분량에 비해 너무 많은 것들을 함축하다 보니 이야기가 약간 설정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흩어놓지 못 했지만 그 점은 분량을 늘리면 충분히 사라질 것들입니다. 세계관과 주제가 크다 보니 담는 그릇이 좁은 느낌일 뿐입니다.

이야기의 전개에서 뜻밖에 ‘바벨’의 비밀도 밝혀지고 ‘할아버지의 편지’가 무슨 내용일지에 대한 추측에 대한 반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을 대상 독자로 설정했다고 작가님이 소개글을 남기셨는데 성인 독자가 읽어도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잘 짜인 SF입니다.

다른 SF와 다른 점도 찾아보시고 이야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지금 바로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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