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하면서도 무언가 꿈틀 생각나게 하는 작품 ‘스쳐 지나간’.
이 작품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겠지만, 나의 경우 읽고 난 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뒤틀린 욕망의 한 단면을 본 듯하다. 우연히 스쳐지나면서 보게 된 한 여자의 얼굴.
별다른 특징은 없는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얼굴이 자꾸만 뇌리에 박힌다.
급기야 의식하지 않는 순간조차 그 여자의 얼굴이 무의식의 깊은 곳까지 따라 들어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착은 심해지고, 자신의 삶은 그 얼굴의 형상에 사로잡혀 점점 함몰되어 간다.
그 얼굴을 찾기 위해 미친듯이 거리를 헤매기도 하고, 뭔가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이 보이면 붙잡아 뚫어져라
쳐다보기 일쑤니, 미친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그럴수록 그 형상은, 그 얼굴은 점점 더
뚜렷하게, 선명하게 자신 안에서 디테일하게 살아남을 느낀다.
결국 성형외과를 찾아 자신의 얼굴을 그 여자의 얼굴과 똑같이 해달라고 주문한다.
병적일 정도로 그 자신이 그 토록 찾고자 했던 여자의 얼굴, 이제는 자신의 얼굴이 되었기에 더 이상 그 여자의
얼굴을 찾지 않는다. 아니,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 누군가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미묘하게 기시감을 느끼며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어쩌면, 그 자신의 뒤틀린 욕망 그 끝에 잃어버린 ‘나’ 자신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