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이 일상에 스며든 요즘이지만, 여전히 사람이 창작한 이야기를 찾는 독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들의 장점만을 조합해서 만든 이야기로는 만족할 수 없는 새로운 선호 내지는 취향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기황제>는 바로 이런 새로운 선호 내지는 취향을 가진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이야기의 기본 골격은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의 양식을 닮았다. 삼포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 동북지방 기리현의 설영촌이라는 곳에 최계영이라는 사내가 데릴사위로 오게 된다. 지주 장목춘의 딸이자 계영의 아내가 되는 현죽은 처음엔 침울해 보이는 인상으로 계영을 놀라게 하였으나 성격이 순종적이고 조신해 계영의 마음을 누그러뜨렸고 나중에는 음산한 분위기마저 매혹적으로 느끼게 한다.
여기까지만 봐도 현죽에게 뭔가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는데 계영은 좀처럼 현죽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는다. 설영촌에 오기 전 이 마을 여인들에 관한 기이한 소문을 들었고 현죽이 나오는 무서운 꿈을 여러 차례 꾼 후인데도 현죽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는다. 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계영의 딸은 태어날 때 탯줄이 쉽게 끊어지지 않았고 아이인데도 좀처럼 울지 않고 얌전하다. 한 번쯤 의문을 품어봄직한 기이하고 비범한 현상인데도, 계영은 심각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만약 현죽이 사내이고 자식이 아들이었어도 그랬을까. 현죽이 수상한 행동을 해도, 딸에게서 이상을 발견해도 어차피 그들은 나라를 어지럽힐 힘도 없고 높은 자리에 오를 수도 없는 여자이므로 위협이 될 만한 전조가 보여도 무시한 건 아닐까. 아이가 태어났을 때 “딸을 안아들며 아들이 아니라는 것에 무척 아쉬워”한 아버지다운 – 여자와 남자를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다운 – 착각이다.
계영은 한거사에게 예부터 동북지방에 날개 달린 아이가 장차 나라에 환란을 가져올 거라는 참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자신의 주변에서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딸의 겨드랑이 아래에 난 작은 부스럼을 떠올리지만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도리질친 건, 그가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라서일까, 딸을 “평범한 계집아이”라고 얕잡아봐서일까. 자신의 아내와 딸이 역적으로 몰려 관군에게 쫓기는 상황인데도 국법을 어겨선 안되고 무고한 자들을 죽게 해선 안된다는 계영에게 현죽은 말한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무고하지 않아 목이 잘리었겠소?”
“이 땅의 기운은 어머니에게서 딸들로, 딸들에게서 또 그 딸들한테 이어져 왔으니, 기필코 우리는 우리의 임금을 깨울 것이다.” 이토록 당차고 호쾌한 선언을 어릴 때 이야기책에서 읽었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동안 옛날이야기 속에서 여자의 역할은 열녀나 효부, 계모나 악처, 귀신이나 여우 정도인 줄 알았던 나로서는 여자들이 스스로 역모를 꾀하고 새로운 황제를 추대하는 이 이야기가 너무나 신선하고 재미있다.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은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