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올게>의 화자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입학 후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이성과 교제를 했으며, 대학원 진학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원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족한 요즘의 젊은이. 그런 ‘나’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사건의 발단은 남자친구의 말 한 마디다. “이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올게.” 평소처럼 ‘나’의 자취방으로 놀러와 커피를 내린 남자친구가 돌연 이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재미있는 건 ‘나’의 반응이다. 커피가 ‘식기 전에’ 돌아온다고 했으니 커피가 식기를 기다릴 법도 한데, 오히려 ‘나’는 “장난하냐고. 내가 납득할 거 같아?”라며 커피가 식지 않게 만들 방법을 궁리한다.
그런데 웬걸. 하룻밤이 지나도 남자친구가 돌아오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커피를 식히려고 애쓰는, 다시 말해 커피를 식지 않게 하려는 나의 노력을 무색하게 하려는 자가 따로 있음을 짐작하게 만드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생전 소식도 모르고 왕래도 없었던 동기 남자애가 집으로 쳐들어오지 않나, 그날 아침까지 멀쩡했던 전기와 가스가 끊기지 않나, 근처에 사는 친구한테 콘센트 좀 빌려달라고 했다가 대차게 거절을 당하지 않나, 커피메이커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물벼락을 맞지 않나, 교수님에게 찾아갔더니 대학원으로 오라는 말을 듣지 않나, 교내에서 낯선 여자에게 추격을 당하지 않나… 설마 이게 우연의 일치라고? 그럴 리 없어!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코지 미스터리는 작은 마을이나 소도시를 배경으로 형사나 탐정이 아닌 일반인이 일상의 사소한 의문점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비교적 쉽고 편안한 느낌의 미스터리물을 일컫는다. 이 소설은 흔하디 흔한 대학가 자취촌이 배경이고, 전문 추리꾼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여자 대학생이 주인공이며, 살인이나 절도 같은 범죄 사건이 아니라 남자친구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말의 의미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코지 미스터리 장르에 속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코지 미스터리의 특징은 진입장벽이 낮아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다는 것인데, 실제로 이 소설은 친숙한 배경과 인물이 등장해 감정이입이 쉽다. 여기에 갑자기 자취방으로 쳐들어 와 괴롭히는 동기, 나보다 애인을 우선시하며 쌀쌀맞게 구는 친구, 대학원 진학을 끈질기게 권유하는 교수 등 누구나 한 번은 겪어봤음직한 ‘일상 빌런’들이 줄지어 등장해 긴장감을 더한다. 얼떨결에 60살까지 부어야 하는 초장기 적금에 가입되거나 번호키를 계속해서 틀리는 상황도 너무나 일상에서 겪음직한 일들이라 남의 일 같지 않고 공포스러웠다.
우리의 일상은 과연 안전할까. 나에 대한 사소한 정보까지 공유하는 인간들은 과연 신뢰할 만할까. 무탈하다고 믿기 쉬운 일상과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짧지만 깊이 있고 재미있지만 섬뜩한 작품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