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앞둔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정교한 SF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다중 우주 이론에 기반하고 있고요. 주인공은 비운의 대학원생 ‘요나’입니다. 리뷰를 쓰는 시점에 저는 25화(이주 – 새로운 시작 2편)까지 읽었는데, 지금까지는 요나의 비중이 굉장히 크네요. 그런데 여기에서 오는 꽤 큰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지도 교수의 지시로 임박한 종말의 원인인 블랙홀을 연구하던 요나는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다른 차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남자는 스스로를 ‘절대자’라 칭하죠. 남자의 말에 따르면 절대자는 다른 모든 다중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들의 이데아이자 단 하나의 원본입니다. 요나를 포함한 다른 ‘나’들은 모두 원본의 복제품이나 모사품에 불과하죠. 설명을 듣고 난 요나는 잠시 혼란스러워하지만 곧 이 상황 전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결심합니다. 다중 우주를 넘나드는 방법을 이용하여 종말의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하는 데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기로 한 것이죠.
절대자의 안내를 따라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요나는 그 세계의 의장인 ‘리’를 만나 종말의 해법을 찾아냅니다. (리는 요나와 마찬가지로 절대자의 또 하나의 사본입니다. 절대자와 리, 요나의 삼자대면은 같은 얼굴을 한 세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 해법이란 요나가 속한 세계의 수십억 명에 달하는 인류를 모두 리의 세계로 이주시키는 겁니다. 리는 이주민들을 자기 세계의 금성과 화성 테라포밍 사업에 노동자로 투입한다는 조건을 달아 이주를 허락하죠. 협상을 마친 요나는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와 지도 교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든 일을 미리 알고 있었던 교수는 요나를 지구 연합 정부의 수뇌부에게 데려가죠.
요나의 브리핑을 들은 연합 정부 이사회는 짧은 검토 끝에 이주 결정을 내립니다. 한 달 동안 차원 이동을 위한 포털 생성기 10대를 대륙 각지에 설치하여 한 번에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이죠.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있습니다. 이 계획을 모든 지구인에게 납득시킬 방법이 없는 거예요. 누군가는 정부의 계획에 반기를 들거나 선택권을 달라고 하겠죠. 결국 연합 정부는 사태의 진상을 공개하지 않은 채로 일을 감행하기로 합니다. 전 이게 좀 의아해요. 요나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다 데려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가능한 설명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느낌이에요.
일단 그것이 요나가 리와 맺은 계약의 일부였을 수 있겠죠. 한 사람도 포기하지 말고 데려와서 테라포밍 노동에 투입할 것. 그게 아니라면 연합 정부의 수뇌부가 이주 후 자기네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지구인들을 일종의 볼모로 끌고 가서 리와의 추가 협상에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고요. 그것도 아니면 위원장의 말마따나 아예 체제 전복을 위해 쪽수를 늘리려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개연성은 좀 떨어지겠지만요. 가장 쉬운 길은 요나가 전 인류를 구출해내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강한 책임감과 인류애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요나가 제안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이 이주 프로젝트는 실상 대국민 납치 사기극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대다수 지구인들에겐 이주에 관한 정보도 없고 선택권도 없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그 사기 행각의 핵심 공범이죠. 이를 증명하듯 첫 번째 차원 이동 직후 영문도 모르고 딸려온 한 여성 시민은 제 아이를 찾아 울부짖다 그곳의 경비대원에게 사살을 당하고 맙니다. 이를 본 요나는 분노하는데, 정말로 이 인물이 그 일에 분노할 자격이 있을까요. 차원 이동을 감행하기 전에 미리 대중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주에 관한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은 요나는, 사살당한 아이 엄마를 보면서 분노할 자격도 없게 되는 겁니다.
전 이 이야기에서 요나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라는 인물의 문제는 작품 전체의 문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봐요. 물론 앞으로 이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단서들로 미루어 짐작해보자면 요나는 커다란 비중에 비해 아직은 무게중심이 제대로 서있지 않은 인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