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주관, 기호, 선호, 개성.
요새는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오롯한 점이 특히 중요하게 부각되는 시대다. 다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어떤 환경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이 되는지, 스트레스를 최대한 덜 받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한 노력은 나의 취향, 주관, 기호, 선호도, 개성 등을 파악하기 위한 과정이라 해도 아예 말이 안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쉽게 하는 일은 바로 호불호가 뭔지 따져보는 일 아니던가? 한 사람은 삶을 살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취향을 갖추게 된다. 본인의 취향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취향이 살아가는 데 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다. 나의 뚜렷한 취향이 없어도,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만 해도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 이런 것을 보면 내 취향이 뭔지 모르거나 거기에 의미를 두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이 이야기에서는 바로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취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삶에 찌들어 스트레스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나’는 카페에서 이력서를 쓰던 중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취향을 파는 대신 당장 수중에 1억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오는데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을까. 더군다나 지금 당장 돈이 절박한 상황이라면? ‘나’는 이력서를 쓰며 가망도 없는 구직활동을 지속하느니 눈에 보이지도 않고 중요해보이지도 않는 취향을 팔고 돈을 챙기기로 한다. 밀린 대금을 갚고 구직에 성공할 때까지 생활비로 쓰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은 사상누각이 되어버린다.
돈을 벌기는 어려워도 쓰기는 쉽다고 하지만 쉽게 얻은 돈은 더 쓰기가 쉽다. 노동으로 힘들게 번 돈은 들인 노력과 시간을 떠올리게 하기에 그나마 조심스럽게 쓰게 되지만 아무런 노동 없이 갑자기 얻은 돈은 마약 같아서 거리낌없이 쓰게 된다.
‘나’의 독백에서 얼마나 쉽게 돈을 써버렸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결국 ‘나’는 다시 마주친 취향상인에게 다시금 취향을 판다. 첫번째 금액보다는 적은 액수로. 위기감 아닌 위기감을 느낀 ‘나’는 돈을 불려보겠답시고 주식에 올인하지만 역시나 한순간에 탕진해버린다. 그 금액을 통장에 꽉 쥐고 있으면서 구직활동을 했으면 좋은 결과가 생겼을 지도 모르는 일인데, 주식으로 허망하게 날려버렸으니 보는 내내 내가 속이 터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그러면서도 내가 만약 저 상황이었으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 자신은 할 수 없었다. 사람이란 자기가 말한 대로,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생물이 아니니까. 사람은 본인의 생각보다 훨씬 더 자신을 잘 모르기에.
세 번째로 ‘나’는 자신도 모르는 취향 여러 개를 묶음으로, 훨씬 더 헐값에 판다. 평범한 사람처럼 노동을 하면 많지는 않지만 적당히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금액이 일정하게 통장에 입금될 터인데도 한번 맛 본 거액의 그림자를 떨쳐버릴 수 없었던 탓일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면서도 ‘나’는 취향을 팔아치웠다. 그 이후 나는 빠른 속도로 나락으로 추락한다.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이 있지만 그렇다고 황금과 돌의 가치가 같지는 않듯이 숫자는 찍혀있는 곳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그에 마땅한 가치의 물건과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게 나에게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그 돈은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으나 대신 나는 나의 일부를 영원히 잃어버린 느낌에 사로잡혀 버리고 말았다.
라던지
일터에 나가지 않았으니 당연히 해고되었다.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라던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하게 몰랐지만,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대목이다. 있는 기력, 없는 기력을 닥닥 긁어모아 겨우 면접을 보러 간 ‘나’는 면접장에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확실하게 깨닫는다.
팔기 전까지는 그저 쓸모없는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취향을 하나 판 것으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고 두 개째에서도 역시 별다른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취향들을 대거 팔아치운 후는 달랐다. 아직 모르는 나의 취향은 내가 변할 수 있는 잠재력이었고 나는 그 잠재력을 팔아버렸기에 지금과 달라질 수 없었다. 조금씩 나를 바꿔가며 미래로 나아가야 했을 디딤돌을 내 손으로 팔아버렸으니 어떻게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내 앞에 놓인 빈 컵라면 용기와 삼각김밥 껍질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지만 이제 더 이상 떠오르는 것은 없었고 배를 채웠으니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본인의 미래를 제 손으로 팔아치웠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가 느낀 자괴감이 어떠했을 지는 짐작만 해 볼 뿐이다. 어쨌거나 나는 내 미래를 팔아치우지 않았으니까. 앞으로 내가 어떻게 변할 지, 어떤 길을 걸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가능성으로 가득한 미래를 고작 2억이 조금 넘는 돈에 팔아치웠으니 얼마나 참담했을까. 더더욱 괴로운 일은, 본인의 과실이 무엇인지 알아도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무기력과 절망에 빠진 ‘나’는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이력서조차 쓰지 않은 채 집 안에 틀어박혀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생활을 이어간다. 취향을, 빛나는 미래를 팔아 손에 쥔 돈이 다 떨어질 때면 노숙자가 되어 길거리를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자신에게 취향을 사들인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예전부터 의심하고 있던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취향상인이었던 여자도 오롯한 본인의 취향은 하나도 없으며, 누군가로부터 사들인 남의 취향을 온 몸에 두르고 있다는 것을.
결국 ‘나’도 그 여자와 같은 취향상인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사소하게만 생각했던 취향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코웃음을 칠 지도 모른다. 취향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이렇게 과장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나의 호불호를 알아야 선택을 능동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런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 작게는 취미 생활부터 크게는 나의 인생 계획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내 취향에 따라 내가 한 선택이 바로 나를 만드는 것이다.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인 셈이다. 이런 것은 현실 세계에서 통용되는 돈으로는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돈 받고 팔아넘길 수 있는가?
물론 세상은 넓고 사람들의 생각도 다양하므로, 나와는 정반대의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취향을 얼마든지 팔겠다고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취향이 모여 나를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얼마를 준다 하여도 나를 팔 생각은 없다. 내가 살아오면서 쌓아올린 취향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살아가려면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돈보다도 중요하고 귀중한 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 생각할 뿐이다.
소설을 읽으며 스스로를 고찰해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생각해 볼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준 작가님에게 박수를 보낸다.
당신의 취향은 얼마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