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릭 덕을 꽤 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GNU처럼 첫 부분이 전체의 줄임이 되는 재귀식 구성을 하고 있는데, 이 작은 트릭이 생각보다 소설 자체의 재미도 높여준다. 대체 어떤 문장으로 다음 문자를 이을지, 그게 또 얼마나 자연스러울지 나름 기대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는 꽤나 기대를 잘 충족한다. 중간에 살짝 어색한 부분도 있기는 하나 그것도 충분히 넘길만한 정도로 큰 무리가 없으며, 뜬금없이 엉뚱한 내용으로 튄다던가 하는일 없이 나름 일관된 이야기를 보여주어서다.
이 트릭은 이 소설이 단편이기 때문에 더 적절하다. 어떤 문단은 짧고 어떤 문단은 길며, 문단의 나눔도 다소 이상해 보이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크게 두러지진 않는 것도 이 소설이 전체 길이가 짧은 단편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무난한 편이다. 일종의 자연재해로 인한 아포칼립스 세상은 꽤 익숙한 것이기에 쉽게 다가오며, 그런 세상속에서 생존해나가는 인간들의 심정도 잘 이해가 된다. 그러나 흥미롭지는 않은데, 소설이 배경과 남은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만 그칠 뿐 딱히 현재 진행중인 어떤 사건을 다룬다던가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식물이 번식을 그만두면서 일어나게 된 아포칼립스라던가, 종자의 존재 등은 이 소설의 테마인 식목일과 잘 어울린다. 그러나 그것이 희망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좀 색이 바래는 느낌도 있다.
식물들이 번식을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음 세대의 종자를 내놓지 않는다면, 결국 종자를 심어봤자 일회성의 연명에 그치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새로운 종자의 싹을 틔운다해도, 그것은 단지 인간이란 종의 종말이 느리게 만들 뿐이라는 점에서 소설 속 세상은 심히 암울하다.
식물이 왜 번식을 그만 두었는지나 왜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다는 것도 아쉽다. 그럴듯함이 부족하다는 것은 SF로서는 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