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저는 학부 시절 법을 전공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재판 결과가 나오면 항상 사람들은 “도대체 왜 판결이 저따구냐”라고 물어보고는 합니다. 언론은 판결을 간략하게 보도하는데, 이것이 사람들이 법원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그러나 양형위원회에서 마련한 시뮬레이션 등을 해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판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이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재판에서 드러나는 사실들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그저 감정만 뱉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불의한 판결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상당수가 법 자체의 문제라서 입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그 적용을 달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법을 안다고 하더라도, 쌍욕이 나오게 하는 판결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그냥 인공지능이 판결하면 안 되는 것일까?”
1. 인공지능 재판은 과연 객관적인가?
얼핏 타당해 보입니다. 기계는 계산하듯이 형량을 짜주고, 그것은 객관적이며,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런 재판이 시도된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AI 재판 서기가 등장하고, 양형 프로그램이 양형을 내려 판사를 돕는다고 하죠. 뭔가 더 객관적인 재판을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가요?
현재의 인공지능은 ‘인간이 생산한 정보를’ 학습하는 방식으로 성장합니다. 그것이 대량의 지식을 투입하는 식이든, 아니면 직접 학습하게 하든 인간이 쌓아 올린 지식을 배우는 인공지능이 현재의 인공지능입니다. 그렇기에 완벽한 인공지능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실수하는 정보를 받아들인다면 언젠가는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보다 틀릴 확률이 매우 낮지만, ‘완벽하게 맞는다’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알파고의 실수처럼요.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테이라는 인공지능은 사람들의 트윗을 학습해 대화하는 인공지능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테이에게 각종 인종차별, 정치적 극단주의적 언사를 학습시켰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 테이는 극단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현재 인공지능의 한계입니다.
2. ‘인공재판’에서의 인공지능
그렇기 때문에 인공재판에서 인공지능도 실패할 것이라고 충분히 가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감정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완벽한 보조장치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인공재판’에서 인공지능은 답을 확신하지만, 실제 소설에서 수형자의 후회 감정은 범죄에 대한 후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감이 맞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공지능과 인간을 대비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에서 결국 인간과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압도적인 능력으로 인간을 뛰어넘는 한계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이 신을 뛰어넘지 못했듯이 인공지능도 인간의 한계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우치게 합니다.
3.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럼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할까요? 공정한 재판을 기계에도 맡길 수 없다면 지금의 형태를 답보해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답은 혼란을 ‘함께’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토론하면서 의견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죠. 만일 이 소설에서 인공지능이 보조적 위치에 있고, 더 많은 인간이 재판에서 토론할 수 있었다면 좀 더 합리적인 접근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간은 감성적입니다. 그래서 배심원제 모델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모방한 인공지능도 인간처럼 틀린다면, 인간 사회 내부에 일어난 일은 인간이 ‘틀리더라도’ 직접 결정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우리는 ‘틀리는 것’에 대한 너무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는 더더욱 그러겠죠. 하지만 ‘기계도 틀리는 마당에’ 틀리는 것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핵심은 ‘틀리고 나서 어떻게 고칠 것인가’ 입니다. ‘인공재판’의 사례처럼 완벽성을 추구하기 보다, 바로바로 하자보수를 해서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인류는 수많은 오류를 극복하고 성장해 왔습니다. 과한 낙관은 금물이지만, 그렇다고 인공지능에게 모든 것을 넘기는 것이 해법은 아닐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창조물인 ‘인공지능’에 불과하니까요.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4. 아쉬운 점에 대하여
이런 생각들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해당 소설은 이야기를 잘 이끌어갔습니다. 다만, 그것이 ‘생각보다 빤히’ 예측되는 것이라 아쉬움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너무 강한 확신을 하는 대목에서 인공지능이 틀릴 것이라는 사실이 독자에게 확연히 다가옵니다. 독자에게 분명한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좋지만, 너무 직접적으로 그리고 예측 가능한 부분은 소재의 특성상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능력으로 재밌는 작품이 완성된 것 같습니다.
즐거운 생각을 하게 한 소설입니다. 재밌는 소설입니다.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