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세태에 대한 블랙 코미디입니다. ‘염소책방’은 말라가는 동네 서점을 상징하는 공간이고요. 익숙한 현실에서 출발해서 오컬티즘으로 매듭지어집니다. 읽는 내내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끊임없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도록 쓰인 것은 이 이야기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 ‘나(정다운)’는 알려지지 않은 단편소설집을 낸 작가입니다.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요. 주인공은 주로 장르문학 커뮤니티에서 활동해온 것으로 보이는데, 함께 공포문학 카페에서 글을 쓰던 ‘은 작가’는 최근 장편 추리문학상을 수상해서 동네 서점에서 행사를 열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이날 은 작가를 따라 행사 장소인 염소책방에 처음 방문하죠. 그리고 얼마 뒤 책방 주인으로부터 일자리 제안을 받아 취직하게 됩니다.
주인공이 염소책방에서 하는 일은 정부가 주관하는 독립서점 지원 사업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입니다. 하루하루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던 주인공은 곧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염소책방 사장은 출근이 뜸한 데다가 책을 팔 생각도 없어 보이고, 주인공이 기획한 글쓰기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은 겉으로만 의욕적일 뿐 뒤로는 주인공의 험담을 나누죠.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사기 위해 찾아온 손님을 계기로, 주인공은 책방 안에 감추어진 ―악마 의식을 연상케 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이야기는 미스터리 호러 장르물로서의 정체성을 단계적으로 드러내지요.
눈에 띄는 사소한 문제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외국어의 형식적 문법에 영향을 받은 듯한 문장이 몇 번 나오는데 어쩔 수 없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한국어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풀어쓰거나 간결하게 끊어서 가는 게 더 자연스럽겠죠. 그리고 리얼리티 측면에서도 걸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쇼핑백을 가득 채울 만큼 옷을 샀는데 10만 원을 썼다는 건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그냥 지나치긴 어렵거든요. 액수를 변경하면 좋을 것 같고, 구체적인 액수를 언급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다 중요한 문제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설정에 따르면 주인공이 악마의 표적이 된 것은 그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이야기꾼들을 좌절시켜 세상에 나올 책들을 미리 없애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 지식의 무화(無化)를 추구하는 듯하고요. 그런 악마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명의 작가는 좌절하기 쉬운, 가장 손쉬운 타겟인 것이죠. 실제로 이야기꾼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책을 읽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동시대의 대중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의 메시지가 의미를 갖는 지점일 텐데, 문제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아무 죄도 없는 한 아이와 아이의 엄마를 학대한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전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상관없잖아? 넌 어차피 좋은 엄마도 아닌걸.”
“책 따위 읽는다고, 글 따위 쓴다고 애를 방치했지? 방치하면 아이가 제대로 클까? 보나마나 너처럼 인정욕구만 남은 괴물이 될 거야. 세계를 책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괴물.”
주인공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고, 스스로 ‘돼먹지 못한 엄마’라는 열패감에 시달리고 있는 엄마이면서, 불운하게도 악마의 표적이 된 이야기꾼입니다. 그런 그가 이야기의 결말부에서는 악마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아이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영원히 글을 쓰지 않겠다는 계약을 맺게 되죠. 심지어 이 계약의 내용은 아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그러면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 아이는 글을 쓰지 않고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나요.
이런 전개가 ―아무리 이야기라고 해도― 특히 가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주인공은 악마를 피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몇 달간 친정으로 피신하는 등 이미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모든 비극에 처음 다리를 놔줬다고 할 수 있는 은 작가는 언제부턴가 보이지도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 혼자서 모든 비난을 감당하게 하는 것은, 그게 아무리 가치 있는 메시지를 지향한다고 해도 옳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것이 우리가 텅 빈 서점을 볼 때 느끼는 어떤 씁쓸함을 묘사하기 위한 설정이라면 더 그럴 수밖에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