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의 배경을 성실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복서’는 보어우드 시티 42번가 출신 빈민입니다. 일주일 전, ‘매직피플 달리기’ 경기장 주변에서 싸구려 약을 팔다가 단속반에 걸려 2주간 교도소에 갔다 왔습니다. 이야기는 출소 직후의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매직피플 달리기는 목숨을 걸고 벌이는 도박입니다. 선수로 뛰는 참가자는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손은 등 뒤로 묶은 다음 혼잡한 도로와 건물들 사이를 지나 목적지까지 달려야 하죠. 대부분 도착하기 전에 죽겠지만 우승하는 선수에게는 커다란 상금이 주어집니다. 이 도시에서 매직피플 달리기에 선수로 참가한다는 건 아마도 그 인물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뜻이겠죠. 복서는 이 경기에서 우승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 ‘앤지’라는 여자를 만났죠. 앤지는 쿨하고 털털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인 것 같은데, 이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의 짧은 회상 안에서만 잠깐 등장합니다.
여러 면에서 미완의 이야기예요. 이름을 가진 인물과 조직이 꽤 많이 나오는데, 아직 정리가 다 안 됐거든요. 출소 후 처음 마주친 ‘펀치갱’들과의 에피소드는 이들 사이에 무언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복서가 속한 조직에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자세히 설명되지 않았고, 펀치갱과 ‘바코드맨’이 어떤 역학 관계를 가지고 대립하는지도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인물에 주목하면 앤지의 이야기도 더 있어야 하고, ‘태오’ 이야기도 왠지 더 있을 것 같죠. 무엇보다 주인공 복서의 캐릭터도 아직까지는 그리 선명하지 않아요. 이 이야기에서 선명히 드러나는 요소는 배경뿐입니다. 인물과 사건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무언가가 일어나는 건 이 단편이 끝난 이후부터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래야 말이 됩니다. 결국 사이즈가 꽤 큰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초반에 만난 펀치갱들과의 짧은 심리전에 이은 추격전은 이 도시가 순찰 지역과 우범 지역으로 분리 형성되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입니다. 다음에 또 만나면 이들이 속한 조직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밝혀야겠죠. 제목으로 쓰인 매직피플 달리기도 마찬가지예요. 이 도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열악한 여건 속에서 생활하는지를 알려주는 장치죠. 이걸 넘어서 좀 더 큰 임팩트를 가지려면 다음 경기에서 뭔가 묵직한 사건이 터져줘야 할 것 같아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세계관 구축으로서는 충분히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분명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오픈월드 게임을 연상시킬 테고요. 쓸만한 재료들도 중간중간 다양하게 들어가 있어서, 성패는 그것들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듬고 개연성 있게 연결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