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러, 네 호러… 딱히 가리는 장르는 없지만 밤에는 읽을 수 없는 장르라서 자주 보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성용님의 <신라 여관 202호>의 리뷰를 선택한건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도 응원하고 싶은 주인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린 결말임에도 이 주인공이라면 쉽게 당하진 않겠구나(!) 싶어서 꼭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저는 이불 속에 숨어서 열렬히 응원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무섭네요. 역시 사람이 제일 잔인하죠.
미드 <한니발>을 추천받아서 순전히 배우가 취향이라는 이유로 시즌 2까지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보다가 시즌 3에 이르러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데요.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요, 살려두는 것도 아니요. 조금씩 죽게 만들어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땅 속에서 썩어가면서 버섯 재배의 훌륭한 비료가 되어주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바로! 산 사람의 몸을 요리의 재료로 활용해서 다시 그 살아있는 사람에게 먹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는 다리가 사라지고, 하루는 신장이, 콩팥이 사라졌는데 그 다리가 그 오장육부가 아침 식사가 되는거죠. 그렇지만 훌륭한 외과 의사이자 요리사인 한니발은 요리의 재료도 싱싱하게 관리하면서 내 다리임을 알면서도 먹지 않을 수 없도록 맛있게(!) 조리를 합니다.
정말 보고 있기 괴로운 광경이라 더는 시도를 하지 못해서 결국 결말을 보진 못했죠.
2.
이 작품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가지고 노는 여관 내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요.
혹시,
지하철 근처 쯤 형성되어 있는 정말 ‘여관’이라 이름 붙여야 할 것 같은 모텔들이 다닥다닥 있는 모습에서 공포를 느끼고 작품을 구상하신 것이라면 저는 그 공포에 진심으로 한 표를 드리고 싶습니다.
학창시절 대로가 있었음에도 몇 분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모텔 골목을 통해서 친구를 만나러 가고, 다시 그 길로 돌아오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모텔 벽의 꾀죄죄함과 우중충함, 제 딴엔 영업을 한다는 뜻으로 그리고 호객 행위를 위해 둘러놓은 형형색색의 등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느낌은 완벽하게 사라지고 겨울 한복판의 추위만 남은 것 같은 을씨년스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전면에 커다랗게 이러한 영화를 상영한다는 뜻으로 붙여 놓은 영화 포스터들의 배우들이 저를 노려보는 것 같았죠.
그 골목에서 누군가 저를 따라와서, 타닥 타닥하고 제 발걸음 소리에 맞춰서 박자를 달리하는 낯선 이의 발걸음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전화를 받는 시늉을 하며 벗어난 뒤로는 두 번 다시 그 골목으로는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아마 지금은 많이 바꼈을테지만 여전히 그 골목을 바라보면 한 겹의 어둠이 있는 것 같아요.
주인공도 술에 취해있지 않았더면 감이 아주 나쁜 편은 아니라서 <신라 모텔>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텐데!
“누가 지켜보는 것 같다.”는 이상한 느낌을 전신 거울 앞에서 받았을 때 얼른 도망을 쳤어야 했는데!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요. 영화에서도 돌아보지 말라고 하면 꼭 돌아보는 법이라 이제는 체념하고 주인공을 응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3.
전신 거울과 드릴
가래 끓는 기침 소리와 비린내
천장과 야동(?)
이 정도만 알고 작품에 접근하셔도 장르와 더불어 충분히 짐작이 가겠지만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과는 다르게, 내가 아는 어딘가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계속 줍니다.
거뭇한 곰팡이로 가득한 닫힌 문짝 옆 벽 하단에 청색 테이프로 둘러진 바가지만한 크기의 작은 미닫이 창이 보였고, 나는 손을 들어 미닫이 창을 두드리며 주인장을 불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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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한 구석에 컴퓨터 모니터만한 크기로 합판 하나가 덧대져 있었다. 그거네 그거. 오래 된 여관이니까 이런 구식 방법도 쓴다 이거지? 가만히 그 부분을 살펴보았다. 살짝 홈 하나가 튀어나와있고, 격자에 맞춘 듯 딱 들어맞는 합판이다. 그래 밑에서 홈을 잡고 당겨 구멍을 만든 뒤 천장 한가운데 카메라를 설치하고, 다시 합판을 밀어 넣으면 준비 완료.
정말로 곰팡이로 가득한 문짝에 청색 테이프를 두른 미닫이 창이 있을 것 같고, 그 문을 두드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주인공의 행동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묘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몰카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현대에 정말로 몰카를 심어 놓았을 것 같은 천장까지.
소설이라 다행이라고 계속 되뇌이며 봤습니다.
4.
그래서 주인공이 전신 거울로 뭘 했다는 건지, 대체 야동을 봤다는 건지 드릴로 뭔가를 어떻게 했다던지! 궁금해지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단순한 ‘재미’로 사냥이나 낚시를 하는 것도 보기 있기 힘든데 하물며 사람이라니요. 하여간 우리 주인공이 깡다구가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었고, 술에 취에 있던게 천운이었습니다. 아, 그 사람이 말하려 했던 “천….. 으아아아”는 뭐였을까요. 글쎄요. 저라면 차라리 “살려주세요.”라고 했을 것 같은데요. 하긴 제정신이 아니었을테니 눈에 보이는데로 얘기 했을 수도 있고요.
아무도 주인공을 신경쓰지 않는 골목에서 좌, 우, 앞 모두에 “오늘은 쉽니다.”란 표지판이 앞 선 것과 한껏 다른 의미로 보이며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읽어보시길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입니다.
이제 모텔 골목이 위이잉, 하는 소리로 뒤덮인 꿈을 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