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책들의 궁전 비평

대상작품: 잠자는 여왕의 종이 궁전 아래에서 (작가: 전견,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나79, 17년 5월, 조회 89

나는 전작주의자이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그 작가의 전작들을 모조리 구해서 읽는다. 최근에 출간된 어떤 작품 때문에, 무려 이십 년 전에 출간되었던 낡은 중고 서적을 어렵게 구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 주의이기도 하고, 내가 마침내 만난 작품 이전에 그 작가가 이미 썼던 작품까지 완전히 소유해야 만족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작가 프로필에 ‘전집성애자’라는 항목 때문에 호기심이 들어 이 작품을 읽게 되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전작주의자는 한 작가가 쓴 모든 책을 모조리 서재에 소장해야 만족할 수 있는 괴상한 편집증 환자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글쎄 그게 과연 편집증에 해당될지는 모르겠다. 물론 살아있는 작가들은 계속 글을 쓰니 언제 자신이 갖지 못한 책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진정으로 좋은 작가는 죽은 작가 뿐이라는 말에는 어딘가 섬뜩한 부분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미저리>처럼 작가 한 명을 감금시켜 그가 쓰는 모든 원고를 독점하는 건 어떻냐는 주인공의 의견일 직접 실행해 베스트셀러 작가 한 명을 감금해 뽑아낼 만큼 충분한 원고를 뽑아내고는 그의 가죽을 벗겨서 책을 만들어 진정으로 그 작가의 전집을 완성시킨다는 대목에 이르면, 갑자기 스릴러처럼 느껴지며 오싹해지지만, 사실 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뭔가 동화스러운 판타지에 가깝다.

 
이야기를 듣지 못하면 잠을 잘 수 없는 아름다운 여자.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면 세상이 멸망할 테니 누군가가 그녀를 재우기 위해 끝없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단다. 남자는 끝없이 무슨 말인가를 조잘거려야 한다. 의사가 그랬단다. 끝없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이유는 알 수 없는, 그저 어쩔 수 없는 병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한 헌책방에서 이상한 여자와 이상한 남자가 만난다. 여자를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남자와 그의 이야기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괴물같은 여자는 그렇게 그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헌책방의 책들에게 주기적으로 물을 줘야 한다는 설정은 다소 황당하지만, 남자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책들이 완전히 젖을 때까지 물을 주고, 가끔 방문하는 이상한 손님들을 맞이하며, 이상한 여자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준다. 가게 안에 있는 책들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러다 모두 바닥나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녀는 매번 이야기가 형편없다고 대꾸하기 일쑤다.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드처럼,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면 죽을 목숨인 남자와 그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세상을 죽게 할 여자의 대화들은 꽤나 흥미롭다.

 
재미없어. 지루해. 끔찍해.

 
남자의 이야기가 지루한 이유는 그의 삶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남자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창조해내야 하는 세상의 모든 작가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이야기는 과연 재미있는가? 당신의 삶을 진솔하게 담고 있거나, 상징적으로 은유하고 있는가? 당신은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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