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오늘만 세 번째 리뷰다. 숨도 안 쉬고 쓰는 것 같긴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숨도 안 쉬고 읽었으니 리뷰를 쓰는 게 맞는 것이라 생각해 리뷰 창을 연다. 어쩐지 오늘 읽은 세 작품 모두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한, 안타까운 글인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아홉 시의 벨소리, 진혼, 그리고 이 작품, 「그네」까지. 모두 읽고 나면 다른 의미로 먹먹해진다.
공포 스릴러 영화라 홍보한,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23아이덴티티를 보고 난 후의 감상이 떠오른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오랫동안 머물렀던 생각은, ‘이건 스릴러가 아니다.’ 였다. 학대를 받을 때마다 쪼개진 인격, 여린 마음이 견디지 못해 형성한 방어기제,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난 괴물. 샤말란 감독은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단지 꺅꺅거리기만 하는 걸 보고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 「그네」의 사마란 작가-어쩐지 샤말란감독과 어감이 비슷해 흠칫했다-도 같은 생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단골로 등장하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에 대한 공포 대신, 끊임없이 몰리는 상황과, 그 상황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선택지에 대한 공포를 독자의 눈 앞에 들이민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광적인 집착, 그녀에게서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어머니의 발악, 바들바들 떨고만 있는 또 다른 아이. 작가는 작중 인물 모두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요, 민재가 왕딱지를 나한테 주고요. 같이 문구점에 가자고 해서요. 내가 민재한테 딱지 고맙다고 삼천 원짜리 팽이 사주고요. 민재가 팽이놀이 하자고 해서 내가 집에 와서 팽이 가지고 나가보니까 민재가 없었어요.”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외우다시피 한 말이었다.
“니가 같이 있었어야지.”
눈이 뒤집혔다.
민재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민재의 친구, 성욱이를 찾아가 끝까지 꼬치꼬치 캐묻는 민재 어머니, 그 앞에서 외우다시피 당시 상황을 줄줄 풀어내는 아이, 그리고 다시 한 번 성욱을 탓하는 그녀, 이 모든 상황을 보고 눈이 뒤집히는 성욱의 어머니까지. 이 짧은 상황 안에도 작가는 독자를 정신없이 휘몰아간다.
차분, 침착, 안정 따위의 단어와는 거리가 먼 이 작품은 문단 곳곳에, 단어 곳곳에 괴괴한 시선이 녹아있다.
(전략)
삐그더더덕. 적막한 집안에 경첩의 비명이 퍼졌다.
같은 문장이나
온 집안에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어제 버리지 못한 음식물 쓰레기가 비닐봉지의 내장인 양 풀어 헤쳐졌다.
(중략)
말려 놓지 않아 축축한 고무장갑을 끼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닐봉지를 묶어 걸음을 재촉했다.
와 같은 문단들, 그리고
사방은 어두웠고 눈앞에 성욱이의 얼굴이 떠 있었다.
이러한 문장들로 이 글의 분위기는 한층 더 괴이하게 조성된다. 끈적하고 텁텁한 집 안의 공기, 느껴지는 급격한 현기증, 그리고 지옥. 그렇다. 등장인물들은 지옥을 맛보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의 말은 충격적이기 그지없다.
“엄마. 민재 엄마가 다 알았나 봐.”
(중략)
“내가 민재를 죽인 걸 어떻게 아줌마가 알았을까?”
아이는 결백하다는 걸 믿었던 자의 허무함, 밀려드는 공포. 그리고…
“민재가 날 맨날 때렸어. 집에 있는 장난감 달라고 때리고, 심부름 하라고 때리고, 사람들 없는 곳에서 맨날 때렸어. 유치원에서는 잘 안 그러니까 괜찮은데 집에만 오면 괴롭혔어. 저번엔 애들 앞에서 아빠도 없는 애라면서 내 바지 벗기고 놀렸어. 그건 때리는 것보다 더 싫어서, 민재가 죽었으면 했어.”
터져나오는 아이의 고발. 그리고 자백. 결백한줄만 알았던 민재와 성욱은, 둘 다 그러하지 않았다.
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의 말을 못들은 척 억지로 등 떠밀어 보냈던 성욱의 어머니. 가슴이 미어진다던 그녀도 결코 결백한 이는 아니다.
극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죽인 아내, 그리고 어린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민재를 향한 분노를 표출한 아이. 누가 그들이 전적으로 잘못했다며 손가락질할 수 있으랴.
계속해서 극한으로 몰리는 상황들과 충격적인 아이의 말,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대와 괴롭힘에 대한 피해가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일까지 하게 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이 리뷰를 읽고 있는 당신이 만약 작품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지금 바로 이 작품을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장담컨대,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