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는 사람들에게 비평

대상작품: 별나방 (작가: 바질, 작품정보)
리뷰어: 냉동쌀, 21년 6월, 조회 19

어릴 때,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극소수죠. 어릴 적 간직했던 꿈을 그대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노력과 행운, 그리고 여러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이 그것들을 전부 누리는 것은 아니죠.

게다가 꿈을 좇는 길은 외롭고 지치는 길입니다. 같은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경쟁자가 될 수도 있고 길을 이탈하는 포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꿈을 추구하는 길은 홀로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대개, 그 꿈이 허황된 것일수록 그것을 좇는 여정은 빈곤합니다. 가난한 소설가, 가난한 예술가 등은 그런 현실을 담아낸 유구하고도 전형적인 클리셰입니다.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서면 우리는 쉼없이 굴러가는 사회에 발 맞추어 걷기를 강요받기까지 합니다. 돈을 벌고, 자리를 잡아서, 짝을 찾아 결혼을 하도록 요구받습니다. 꿈을 좇는 추구자가 그 요구에 맞추어 사회의 틀 속으로 들어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겠죠. 물론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면 꿈을 이뤄내는 동시에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런 경우는 극소수 희귀 사례입니다.

그렇게 당도한 꿈이 결국 허상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무가치한 꿈을 꾸고 있던 것일 수도, 잠시 길을 잃어 잘못된 목적지에 도착하고 그것을 꿈이라고 착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꿈을 좇는 추구자로서는 끔찍한 허망함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마라톤에서 가장 힘든 것은 멈추었다가 다시 달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힘들면 천천히 뛸지언정 결코 멈추지는 말라고들 합니다. 꿈을 추구하는 마라톤에서 한 번 멈춰선 사람이 다시 달리기 시작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꿈이 허상이었다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팔자 좋은 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그 꿈 자체가 추구자의 삶을 갉아먹는 해악으로 밝혀질 수도 있으니까요. 자신이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분명 고고한 목적을 위해 좇아왔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오히려 자신과 주변인을 해치는 결과물을 가져온다면? 슬프게도 이 또한 아주 흔치 않은 일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분명히 찾을 수 있는 사례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꿈 같은 건 꾸지 않는 편이 좋은 것일까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하루하루 꼬박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까요? 물론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특별히 더 어리석다거나,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할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삶의 한 방식에 불과하니까요. 꿈을 꾸길 포기한 사람의 삶도 꿈을 좇는 사람의 삶과 완전히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꿈을 꾸지 않는 것이 꿈을 좇는 것 만큼이나 어렵기도 합니다. 꿈은 삶을 이끌어갈 원동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 또한 꿈을 좇아 살아가다 벽에 막힌 이들을 그리고 있지만, 꿈을 포기하라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대신,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고 이야기할 뿐입니다.

오직 자신의 꿈만을 좇다가 결국 고꾸라지게 되면, 마침내 꿈을 이룬다고 해도 그 도착지에 오직 자신만이 있을 뿐이라면? 꿈을 이루었다는 결과가 무엇이 중요할까요? 축하해줄 사람도, 위로해줄 사람도 없는데.

이 소설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꿈을 계속해서 좇든, 중간에 포기하고 현실에 맞추어 살아가든,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하지만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쓸쓸한 듯하지만 종국에는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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