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요. 우주의 엔트로피가 시간을 꽉 틀어쥔 채 정해진 흐름을 유지한다면 순간순간 반짝이고 불타오르는 감정들은 그 순간 소실되는, 다시 환원되지 않는 순간의 에너지일 뿐일까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좋은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한동안 아껴두었던 이야기를 하나 풀어보려 찾아왔는데, 도중부터 이전에 보았던 이야기의 변주라는 것을 알고 잔잔한 그리움에 휩싸여서 따뜻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답니다. 화자가 이야기를 건내고 있는 대상에겐 정말로 슬픈 이야기임이 틀림없는데도, 저는 그저 그들의 관계를 보는 관측자여서인지 그 속에서 따스함을 먼저 보게되네요.
시간여행은 언제나 매력적인 소재인 것 같습니다. 과거를 바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후회나 미련을 누구나 가지고 있어서일지도 모르지만, 납작한 종이 속에 기록되어 있는 누군가의 일생이 사실은 내가 하루하루 겪어나가는 수많은 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실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깊게 다가와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고, 그 타인이 직접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역사 속 존재라면 더욱 그렇지요. 기록 속에 남는 것은 언제나 조금씩 부족한 사실이고, 때론 사실조차 아니기도 하니까요. 때문에 결국 우리는 그들의 인생을 읽어 내릴 때에도 사랑보단 흥미를 느끼곤 하지요.
이 이야기의 화자 또한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단순한 궁금증, 가벼운 의문. 하지만 그것으로 시작된 만남은 처음부터 예상을 크게 엇나가 버리죠. 그래서였을까요? 이야기 속에서 화자가 사랑을 건네는 대상은 31살이 된 의사 한 사람이었지만, 사실 이 사랑의 이야기는 그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이어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존재의 모순을 건, 위험천만한 도박이 섞인 시간여행이긴 했지만 사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원래 타인에게 내 존재가, 또는 내게 타인의 존재가 없어질 때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이기도 하죠. 죽음이 아니어도 우리는 수많은 이별을 하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시간여행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시간은 타인의 시간과 결코 같지 않고, 타인에겐 언제나 내가 모르는 시간들이 존재합니다. 드문드문 찾아가 쑥쑥 커버린 아이를 보게 된 화자처럼, 우리도 돌연 익숙하다 여겼던 타인의 달라진 면모를 마주하게 되지요. 결국 우리가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건 눈을 마주하는 그 순간의 찰나뿐이라는 슬픈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역시 우리는 서로에게 영원을 줄 수는 없는 걸까요?
하지만 작가님의 이야기 속에서 저는 다시금 답을 봅니다. 화자는 사랑하는 아이에게 이별과 함께 미래를 선물로 주었으니까요. 1년 남짓한 시간, 모든 것이 같았음에도 아이는 죽지 않았고 31살의 생일을 맞았으니까요. (저만의 망상이지만 사랑하고 축하한다는 그 말 한마디로 평생을 살아갈 아이의 모습 또한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언제나 작가님의 이야기를 보며 떠올리는 생각을 다시금 합니다. 역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그 순간의 찰나라는 것을요. 어떠한 찰나는 시간의 한계를 넘어 우리에게 영원히 남기도 한다는 것을요.
저도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건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것이고, 환원되지 않는 에너지가 늘어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것이 어떤 에너지는 더 이상 무언가를 변화시키지 않고 남게 된다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분히 인간의 관점이고, 사실 관측 가능한 자연계에서 주로 소실되는 열에너지는 그만큼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키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 무언가로 남게 된다는 것은 어딘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으니까요.
주인공은 시간여행을 통한 과거수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이야기했지만, 만일 과거를 수정하는 것이 정말로 불가능에 가깝고 우주가 정말로 엔트로피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가고 있더라도 화자가 아이에게 건넨 사랑은 그 순간순간 흘렀던 변치 않는 에너지들이 아닐까요. 변치 않는 것처럼 보여서 아무런 힘도 없는 것 같았지만 그것들이 쌓이고 모여서 결국엔 다시 아이의 우주를 흘러가게 만들어준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 흐르기 시작한 우주는 또다시 다른 우주와 맞닿으며 사랑을 주고 받게 되지 않을까요.
중얼중얼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니 생각보다 너무 길어진 느낌도 드네요. 만화로 먼저 보면서 어렴풋하게 느꼈던 감상을 이번에 소설로 다시 보게 되면서 낱말로 풀어적다보니 이런저런 생각도 덧붙고 중언부언한 이야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정말 좋았다는 말씀 다시금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도 저번 윌라의 이야기처럼 이 모든 것이 사실은 그저 홀로 남게 될 아이를 걱정한 화자의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지만 어느 쪽이든 결국 사랑이고, 결과는 같을 테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크네요.
그럼 다시 한번 좋은 이야기 감사드리며, 건강하게 건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