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나오는 비극적 에피소드를 실록 형식으로 다룬 역사물 시리즈의 첫 편입니다. 비극의 배경과 비극이 발생하기까지의 과정이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날 밤, 완성에서’라는 제목은 이야기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극적으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배경이 되는 197년의 완성은 ‘조조’가 ‘장수’를 전투 없이 항복시켰던 곳이거든요. 하지만 얼마 뒤 야간 기습으로 조조에게 첫 패배의 쓰라린 기억을 안겨준 곳이기도 하죠.
이야기는 조조의 아들이자 훗날 위나라의 개국 황제로 즉위하게 되는 조비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합니다. 도입부에 조조의 두 아들, ‘조앙’과 ‘조비’는 완성에서 한가롭게 탄기놀이(알까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조앙은 아버지를 따라 전장을 누비는 장수고, 조비는 아직 10살 어린아이입니다. 둘의 탄기놀이는 무혈입성에서 오는 여유를 반영하듯 평온하지만, 분위기는 곧 반전됩니다. 사흘 뒤 적군이 감행한 야간 기습에서 어린 조비를 탈출시킨 조앙은, 조조가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전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알려진 대로 조앙은 이 전투에서 아버지를 구해내고 전사하죠.
완성 전투는 일반적으로 삼국지에서 비극으로 소비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택한 구도, 즉 어린 조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사건의 비극성은 극적으로 증가하죠. 이건 비단 완성 전투뿐만 아니라 모든 전쟁 서사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일 겁니다. 전쟁이란 게 기본적으로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풍경이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이 ‘삼국지의 비극’이라는 기획은 그야말로 마르지 않는 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이 시리즈물은 삼국지연의에 대한 최소한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온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건의 비극성과 속도감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잘 알려진 일화들이 부분적으로 압축·생략되어 있어서 주변적인 맥락이 자연히 축소됩니다. 축소된 맥락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기 위한 시도도 딱히 없어 보이고요. 당연하고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지연의에 이미 상세히 묘사된 설명들을 표현 방식만 바꾸어서 쓰는 건 별 의미가 없을뿐더러 자칫 지루해질 위험이 크죠. 그러니까 이 작품이 타겟으로 설정한 독자는 이미 삼국지의 서사에 많이 익숙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는 거고요.
이 작품의 두드러지는 장점은 아마도 현장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건조한 실록처럼 보이다가도 한 편을 다 읽고 나면 비극이 일어났던 그 시간 그 공간에 실제로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도 들거든요. 삼국지연의가 긴 역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느낌이라면, 이 작품은 초점화된 인물의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을 직접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1편에서는 조앙의 죽음을 경험한 조비의 어린 시절과 그로부터 9년의 세월이 흐른 뒤의 일화를 차례로 보여주면서 당시의 현장감을 개연성 있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 이야기에서 동경하던 형님을 잃고 깊은 슬픔과 분노에 빠진 조비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시 보게 됩니다. 서사의 큰 흐름 위주로 삼국지를 읽었던 기억과는 사뭇 다른 경험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