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굉장히 단순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선입견의 소유자이며 매우 고지식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만, 글을 읽을 때만큼은 첫 문장을 읽을 때의 기분을 여지없이 박살내주는 부대찌개맛 환타같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 작품이 딱 그런 작품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미스터 독고지존’은 굳이 최근 유행 장르를 갖다 붙이자면 퓨전 판타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름 그대로 무림의 독고지존인 곽룡은 고독한 최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무료함에 지쳤는지, 결국 이세계에까지 발을 들이는 안 해도 될 호기심을 부리게 됩니다. 덕분에 무공도 강력한 신체도 큰 의미가 없는 그야말로 신세계의 뉴비가 되었습니다.
자신보다 먼저 이세계에 발을 들인 사매와 자신보다 수십 배는 강한 꼬마와 함께 신세계의 민폐 히어로가 된 그는 무림에서 해 왔던 것처럼 묵묵히 하지만 날카롭게 새로운 세상의 규칙을 파악하고 연구합니다. 그리고 모두의 힘을 합쳐 세상의 진짜 악당을 멋지게 해치우고 사제간의 우애도 회복합니다. 히어로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 건 당연한 덤이겠지요.
퓨전이라 함은 여러가지 맛을 한번에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지만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잡탕으로 끝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입니다. 이 작품도 어찌 보면 그런 위기가 있을 뻔 했는데, 그런 위기 따위는 작가님이 멋지게 해결하셨습니다.
바로 재미라는 단순한 답으로 말이죠. 장편과 단편을 구분짓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편의 판타지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개미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서 마라톤 대회라도 벌이는 듯한 글자의 향연들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갖기는 정말로 쉽지 않겠죠. 이마콘 작가님이 그 중 한 분이다! 라고 제가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이겠지만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이 작품은 재미있는 데다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까지 담고 있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의 아주 어려운 일을 해내신 것이죠. 재미만으로도 인정받기 힘든 웹소설, 그 중에서도 눈에 들기 힘든 퓨전 장르에서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전하려 하시다니… 더군다나 제가 보기엔 둘 다 어느 정도 해내신 것으로 보입니다.
무협 소설의 배경이 되는 무림에서 독고지존이 될 수 있는 건 한 명입니다. 주로 ‘남자’죠. 아직까지 여자가 지존의 자리에 서 있거나 서게 되는 작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협이 존재하던 그 시대의 상황을 무시하긴 힘들겠죠. (주 소비자층에 대한 배려도 있었을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주인공 곽룡의 사매는 단단한 유리 천장을 깨는 대신 다른 세상의 협객이 되는 걸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나 부조리는 존재하는 법, 새로운 세상 플레토니아에서의 힘은 노력으로 얻어내는 것보다 주어지는 걸 받는 게 쉬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빌런 또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들인 노력의 결과로 힘을 얻었던 곽룡은 그 시간과 경험으로 이세계의 강자를 쓰러뜨립니다. 물론 사매와의 신뢰도 회복하고 동료까지 지켜낸 해피해피 엔딩입니다만, 저는 결말까지 가는 과정의 산뜻함과 그 과정속에 메시지를 담아내는 산뜻함이 너무 좋았습니다.
강자를 찾아 이세계로 까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무림에서 겨우 습득한 무공이 별 쓸모가 없는 상황이 되는 건 주인공이 바라던 상황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곽룡은 수치상의 강함은 잃었을 지 몰라도 고된 수련과 수많은 전투로 인해 단련된 경험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고리타분하다 할 정도로 들어도 그 때마다 가슴 벅찬 단어, 바로 믿음이 있었죠.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법을 아무리 만들고 돈을 들여 캠페인을 해도 오히려 계층 간, 성별 간, 민족 간 혐오는 커져만 갑니다. 혐오가 생기는 원천엔 자신에 대한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공격받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상대가 방심하는 틈을 노려 먼저 물어뜯지요.
곽룡의 사매인 월영도 차별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과거와 갑자기 얻은 힘을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곽룡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전 월영과 슈퍼 보이가 자신들의 내면에 있던 두려움을 스스로 이겨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곽룡과 진정한 동료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명검으로 자르듯 간결하게 달려나가는 이 퓨전 무협 판타지는 단편인 게 아쉬울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족하지 않은 장르 소설의 재미 속에 되새겨봄직한 메시지가 들어있다면 더 좋겠죠.
제 짧은 식견으로 보기에 이 작품에서 작가님은 사람들이 갈등을 해소하고 혐오를 멈추는 데는 행동이 필수적이고, 그 행동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동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워낙 짧은 독해력이라 아니라면 작가님께 송구스런 마음 금할 길이 없을 테니 그냥 평소 하던대로 강력한 추천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단편으로 매력을 드러내기 힘든 퓨전 무협 판타지 장르에서 보기 드문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독자님들께 권해드리고 싶고 앞으로 이런 작품이 더 많이 나와서 여러 장르에서 단편 소설이 사랑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