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 ‘슬램 덩크’는 완결된 지 오래된 작품이지만 아직도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스토리와 박진감 넘치는 농구 경기의 표현 때문에 저도 한 때 농구에 빠져 밤 늦게까지 공을 던졌습니다만(실력은 만화처럼 늘지 않더군요), 스토리나 그림체보다 저를 고양시켰던 부분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였습니다.
‘리바운드를 제압하는 자가 시합을 제압한다.’ 로 시작된 작가의 기본기 사랑은 주인공 강백호가 농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술들을 하나 둘씩 익혀가면서 진정한 농구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만화적이면서도 또한 사실적으로 보여주었지요.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기본이라는 걸 말이죠. 하지만 자꾸 잊게 됩니다.
저는 자칭 호러와 범죄 소설 매니아입니다. 나름 많은 범죄 소설을 읽어 봤다고 자평합니다(…)
최근에 읽는 소설들마다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하는 매너리즘에 빠지려는 순간! 저는 ‘나쁜피’를 읽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더군요. 범죄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사이비 종교단체와 그 단체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이야말로 ‘왼손은 거들 뿐’을 제대로 실천하고 리바운드를 완벽하는 제압하는 그런 작품입니다. 이야기에 충실하고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는 소설의 기본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70화는 적은 분량이 아닌데도 거의 하루 만에 독파했습니다. 요즘은 재미있는 작품이라 해도 하루에 30화 이상 읽기가 힘들었는데 이 작품은 어느새 연재 분이 끝나있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이 이야기는 한 여인이 살해되고 그녀와 내연관계에 있던 무명작가가 누명을 쓰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숨진 여인이 ‘신세계’라는 종교단체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무명 작가의 매니져 역할을 하던 출판사 관계자와 그로 인해 사건에 개입하게 된 사회부 기자가 사건에 뛰어들게 됩니다. 종교 단체의 이면에는 100세가 넘었음에도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교단을 이끄는 ‘장 양일’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장 양일의 행적을 쫓아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한국의 법정으로, 다시 교단으로 무대를 옮겨가며 숨 쉴 틈 없이 전개됩니다.
이 작품의 최대 포인트라면 역시 기본입니다. 전체적으로 글 읽기가 너무 편하더군요. 오탈자 교정에도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고, 무대가 점차 확대되는 과정에서 억지스러운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의 진행과 구성의 단단함에 신경을 쓰다 보면 이야기가 늘어지거나 지루해진다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건 아마도 작가님이 작품 구상 시점부터 스토리를 치밀하게 구성해 놓으셨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실제로 글을 읽다 보면 조금 느슨해질 법한 시점에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며 이야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몰아갑니다.
정확하게 필요한 때에 필요한 반전과 재미 요소를 탁탁 넣어주시는 작가님의 기술에 놀랄 수 밖에 없었네요.
후반부로 갈 수록 이야기는 독자들이 생각하는 정형화된 진행을 크게 벗어나진 않습니다. 그런데도 신선함을 놓치지 않는 건 작가님이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가지면서 다듬는 과정을 거치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피드백의 과정이 많으면 많을 수록 글은 부드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 매끈한 작품을 내셨다는 건, 아주 많은 다듬질의 시간을 가지셨다는 뜻이겠죠.
또 하나의 장점은 친절함입니다. 지루한 설명이 아닌 이야기의 진행에 대한 설명은 특히 범죄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독자는 이미 범인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사건의 진행을 따라가는 재미로 글을 읽게 되니까요.
쓸데 없는 잔가지는 다 쳐내면서도 중요한 뼈대는 하나도 빼 놓지 않는 작가님의 친절함 덕분에 저처럼 급히 읽는 독자들도 이야기의 작은 흐름까지 놓지 않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여러 인물들의 관계, 갈등 요소가 중요한 장편 소설에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반부에 스토리에 한 번 큰 회오리가 몰아치게 되는데, 보통 이런 반전을 급히 넣다 보면 ‘형이 왜 거기서 나와?’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응, 다 미리 생각해 둔 거야.’라고 하듯 초반부의 작은 단서들부터 찬찬히 되짚어줍니다. 그리고 ‘아, 그럴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 때 동시에 작품의 탄탄한 스토리 라인에 무릎을 한 번 탁 치게 되지요. 지금까지 읽으면서 부자연스러운 인물 설정, 억지스러운 진행, 이해가 안 되는 인물의 행동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경험은 훌륭한 작가분들이 많은 브릿G라 해도 참 쉽지 않은 경험입니다.
보통 완결이 되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는 추천을 하기가 조심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나쁜피’라는 작품은 그냥 지금까지 공개된 분량까지만 읽으셔도 범죄 소설과 미스테리를 좋아하는 독자분들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명작이라고 생각되서 자신있게 (!) 권해드립니다. 현재 70화 연재중이신데 적어도 100화까지는 쭈욱 달리셨으면 하는 바램 가져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