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을 해보신 분이라면 한 번쯤 그런 고민도 해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내 짝인가? 나는 이 사람의 짝인가? 이 사람은 내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나는 이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런 고민은 자칫, 이 사람은 내 겉모습만 보고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위험한 생각으로도 흐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이 있든 없든, 사람은 누구나 그런 두려움을 품습니다. 왜냐하면 나조차, 이 사람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연계된 사항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모든 감각 중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생물이고, 그러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도 없으니까요.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의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콤프라치코스라는 극악한 범죄집단에 의해 얼굴이 추악하게 변해버린 웃는 남자, 그윈플레인과 운명에 의해 눈밭에 버려져 시각을 잃어버린 데아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윈플레인의 외모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지만, 데아는 그의 외모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그에 여의치 않고 그를 사랑합니다. 보는 것의 한계를 벗어나 그윈플레인의 영혼을 사랑한다는 서술을 통해, 그들의 진실한 사랑을 독자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 흑해에서도 주인공 나르바는 진실한 사랑을 합니다. 그 대상은 뱀파이어 체르입니다. 서로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관계지만, 그럼에도 둘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못합니다. 이들의 사랑은 로맨틱하고, 아름다우며, 신비롭습니다. 그러나 곧 비극이 그들을 덮치게 되고, 체르는 나르바를 영생하는 존재로 만들어주고 사망합니다. 환생을 통해 500년 후 재회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렇게 500년 뒤, 나르바는 백연이라는 이름으로 일제 강점기 조선에 정착합니다. 여기까지가 연극으로 따지면 1막에 해당하는 내용이며, 작품 설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전개입니다.
나르바는 어떻게 체르의 환생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여기서 그녀는 ‘시각’에 의존해야 합니다. 체르의 표식을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르바의 한계입니다. 나르바는 500년 동안 무수한 죽음을 지켜봐왔고, 무수한 이들에게서 표식을 찾아내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로지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부터 체르를 찾으려고 한 이상, 그녀는 결국 환생한 체르를 만나지 못하고 포기해야 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지쳐버린 끝에, 그리고 가슴 속 정열을 이기지 못한 끝내, 나르바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나타나지 않는 표식을 500년이나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체르를 대신할, 채훈과 함께 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다른 여성을 사랑하고 있었고, 나르바는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외모를 변화시킵니다. 채훈이 사랑하던 여성을 죽이고, 그 여성의 외모를 가지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채훈은, 오로지 외모만이 똑같고 내면은 그대로인 나르바에게 위화감을 느낍니다. 그는 본질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채훈은 결코 나르바를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나르바는 오직 표면에만 집착하고 있었기에, 그와의 사랑을 위해서 내린 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건 스스로밖에 없다.
결국 본질을 사랑하지 못한 나르바의 대사입니다. 그런 나르바는 두 번째 비극을 맞게 되고, 채훈은 사망하고 맙니다. 두 번째 사랑을 잃고 나서야 만난 것은 체르의 환생이었습니다. 나르바는 이번에는 본질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을까요?
모든 껍데기를 버리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나르바의 시신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기억을 되찾은 체르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나르바를 환생시키기로 합니다. 500년 뒤에 재회하기로 약속하고서.
이 이야기는 중세와 일제 강점기를 넘나들며 두 남자에 대한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나 어느 시간대이든, 어느 연인이든, 주제는 일관되게 한 가지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본질에 대한 사랑입니다.
나르바는 서툰 연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사랑에 빠지고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점점 바람직한 연애를 할 수 있게 된다고들 말합니다. 나르바는 그 대척점에 있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했기에 서툴렀고, 본질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5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되지만, 이미 늦었죠.
그러나 체르는, 환생한 체르는 언제나 나르바의 본질만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둘은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마침내 재회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500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이전보다는 더 나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본질을 사랑하는 법을 알아서, 헤어진다 해도 여전히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정통 로맨스 소설답다고 해야 할까, 매우 서정적이고 한 문장 한 문장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작품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500년 전의 이야기와 500년 후의 이야기가 거울처럼 반복되는 서사도 흥미롭고, 일제 강점기에 들어 조선인의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도 한국인이라면 가슴이 떨릴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강렬하게 전달되는 나르바의 감정을 타고 흔들리다 보면, 격정적인 감정의 바다 한가운데에 뗏목을 타고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나르바의 심정과 정확히 같았겠죠. 그만큼 감정전달 면에 있어 훌륭했습니다. 다만, 각 부의 후반부에서 스토리 전개가 아주 조금은 다급하게 느껴졌다는 것이 약간의 흠이라면 흠일까요? 작가 분께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집필하셨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연인의 죽음을 접하는 그 상황 자체에 집중을 하면 독자의 호흡을 보다 오랫동안 잡을 수 있으니까요.
사랑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