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세상 캐릭터쇼 관람 후기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저승 이주 프로젝트 (작가: 오메르타, 작품정보)
리뷰어: DALI, 21년 5월, 조회 150

지구 멸망까지 앞으로 1년, 이승에서의 모든 생존 계획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지고 이제 인류에게 남은 선택지는 저승으로의 이주뿐입니다. ‘저승으로의 이주’라니, 그냥 다 같이 죽자는 말이 무색해서 실속도 없이 갖다 붙인 정치적 수사쯤으로 느껴지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야기는 처음부터 굉장히 역동적이고 위트로 가득합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인물들의 의지와 생명력이 흘러넘쳐요. 바꿔 말하면 이 이야기가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쇼를 선보이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 리뷰를 작성하는 시점에 저는 ’28 – 세인의 활약’까지 보았는데 ―등장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파악이 어려운 몇몇 인물은 논외로 하고― 모두 자기 색깔이 선명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오랜만이네요.

 

‘저승 이주 프로젝트’는 남은 1년 동안 인류가 사활을 걸어야 할 마지막 플랜인 셈인데, 그런 거대 프로젝트의 중심에 대한민국 문화재청의 신입 공무원 ‘윤기린’이 있습니다. 전 인류의 운명이 한국의 어느 새내기 공무원에게 달린 거예요. 정작 그 공무원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고요. 개인적으로, 작품 속 세계관이 말이 안 되려면 이렇게 아예 안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계관이 생소하다고 해서 이야기의 매력이나 개연성까지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요. (사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죠. 장르물에서 새로 구축된 세계의 룰에 따라 일어나는 사건들이 인과적으로 더 단단한 개연성을 갖추게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르겠네요. 자신이 만든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창조주의 완벽주의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윤기린의 임무는 저승 답사입니다. 저승이 인류가 산 채로 이주하여 살아갈 만한 곳인지 미리 알아보러 간 거예요. 지구 탈출이라는 거대 프로젝트의 핵심 주체로 한국과 한국인, 대전, 문화재청, 공무원, 신입,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설정은 약간 이색적으로 보이는데, 전 이 작품 도입부의 핵심이 바로 그 이색적인 포지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빌드업 단계에서부터 기존의 상식이나 익숙한 기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펼쳐갈 거라는 기대를 품게 하죠.

 

(오해 없으시길. ‘대한민국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한국인 여성 신규 발령자는 중요한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그동안 흔히 봐왔던 도식에서 약간 벗어난 포지션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택한 것으로 느껴진다는 말이지요. 물론 최근에 발표된 인상적인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분석도 점점 힘을 잃어가는 듯 보이기는 합니다.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현상이에요. 예를 들어 배명훈의 『빙글빙글 우주군』(2020)에서는 한국군 중사가 전 인류를 구하는 작전에 거의 단독으로 투입되는데, 이를 두고 터무니없다며 코웃음 치는 독자라면 최근의 흐름에 무지하거나, 본인의 뒤처진 감각을 개선할 의지가 없거나 둘 중 하나겠죠. 마찬가지로 한국인 여성 캐릭터의 약진도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다만 아직은 충분하다고 할 만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시도가 더욱 중요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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