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 타인의 가장 소중한 것을 걸고 하는 게임이다. 시한부가 마지막으로 계획할 수 있는 가장 스릴 있는 게임. 평생 쥐어보지도 못할 만큼의 돈을 줄 테니 아끼는 것을 내놓아라, 라는 주문을 듣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게임에 대한 소문이 퍼지지 않은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신체 일부가 훼손되거나 장애를 입은 사람들이 고급 주상복합에 이사 오기 시작한다. “왼쪽이 이상해”. 왼쪽 몸이 전부 인공 구조물이라는 여자가 새로 들어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리고 오늘, 당신에게 날아온 하나의 초대장, 그것이 가리키는 주소는 수상한 펜트하우스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hoice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과정에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종종 선택과 책임 사이를 조율하는 것이 우리 삶의 유일한 과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오래 고민해본 문제는 어떤 것이었을까. 가장 어려웠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hoice라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선택의 결과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서 있다. 아무도 삶의 방향을 정해줄 수 없다. 오직 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걸어가야만 한다. 이런 사람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아는 노인들이 만들어낸 게임이 펜트하우스에서 벌어진다.
KARA 작가의 단편 〈게임〉에는 게임 참여를 권유받는 주인공 ‘재규’, 그의 여자친구 ‘성미’, 게임을 진행하는 ‘노인들’, 재규와 노인들을 연결하는 ‘KIM’이 등장한다. 다소 간단하게 그려지는 인물 관계는 명확하게 작품 속 세계를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며 상호 간의 물물교환을 요청한다. 중재자 KIM을 사이에 두고 양측은 교환할 무언가를 고른다. 노인들은 돈을 주고 재규는 돈과 교환할 것을 선택해야 하는 과정이 작품의 초반 내용이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고 자의로 이루어지는 이 쌍방의 거래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돈과 바꾸어도 될 정도의 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이다.
이 작품이 밀실 게임의 형식을 좀 더 확실히 가져온다면 좋을 것 같다. 밀실 게임의 스릴은 ‘도망갈 수 없음’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퇴로를 막음으로써 조성되는 공포감은 생각보다 깊다. 사실 이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게임은 ‘밀실 트릭’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을 준밀실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까) 인물은 게임을 제안받지만, 거절할 수 있다. 여기에서 소설의 배경 설정이 끝난다면 독자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사람은 강제하지 않는 상태에서 얼마나 귀한 것을 내놓을 수 있을까.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돈과 선뜻, 내 몸의 반쪽을 거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게임’이라는 이름을 제목에 붙인 이상 참가 과정에서 약간의 강제성이 있다면 더욱 잔인한 방법으로 놀이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작가가 단편 안에서 공포를 보여주기로 한 이상, 최대한의 트릭과 기교를 활용할 때 독자는 만족한다. 이야기를 무조건 잔인하게 몰고가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때로는 자극적인 소재로만 드러낼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 이 작품 안에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견고한 ‘펜트하우스’ 내부의 공간성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재가 된다.
펜트하우스에 들어오기 전, 단 한 번의 경고를 준 다음에는 그 세계에서 나갈 수 없다거나, VR처럼 가상의 공간에 아예 방문자를 끌어들이는 것도 좋다. 인물을 보다면 ‘병원장’이라는 위치의 노인이 작중에서 독특하게 보였다. 이처럼 게임을 주최하는 일곱 명의 노인에게 어떤 ‘능력’을 부여하는 것도 작품의 환상성을 부각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기술자였던 노인을 등장시켜 여러 트릭이나 미션을 만들 수도 있다. (언뜻 연작으로 세계관을 넓혀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짧은 소설에서는 자칫하면 인물 개인의 등장이 단편적이고 평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인과와 흐름을 잘 설정했기에 이 소설에서는 그런 면이 단점으로서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몇몇 인물이 더욱 매력적으로 쓰일 수 있는 지점이 보인다. 인물의 쓰임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품의 분량을 어느 정도 늘이더라도 개인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KIM이 재규에게 돈과 바꿀 것으로 아이큐를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큐는 신체의 절반보다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이큐’를 거래 대상으로 삼는 이유가 소설 안에서 잘 설명된다면 앞뒤 내용이 잘 연결됨과 동시에 큰 시너지를 줄 수 있다.
재규는 사실 학력과 지능에 굉장한 관심이 있거나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형제나 지인 중 그의 심리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재규가 ‘대리운전’을 한다는 직업의 특징 역시 잘 활용한다면 좋다. 재규가 자신도 모르게 ‘펜트하우스’의 게임에 사람들을 데려다주는 역할을 했다면, 그리고 그들의 변화된 모습을 우연히 목격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운전’을 대신해주는 인물은 밀실 안의 게임에서 또 다른 중개자로 기능할 수 있다.
성미의 캐릭터에서 더 부각할 수 있는 건 없을까. 성미가 재규를 통해 오히려 부를 탐내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재규를 기계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거나 권태기를 혼자 경험하고 있었다면 그녀가 재규를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성미와 재규 사이의 관계에 문제는 없었을까. 성미의 탐욕은 어느 정도였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디테일한 답을 정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은 훨씬 풍성해질 수 있다. 성미는 자신이 그 게임에 참여할 수도 있다. 또는 기지를 발휘해 돈과 별것 아닌 것을 교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작품의 진행은 다른 국면을 맞을 것이다.
‘게임’의 룰을 마지막에 공개하면 어떨까. KIM이라는 인물을 좀 더 미스터리하게 끌고 간 다음 ‘돈과 당신의 무엇을 바꿔야 끝나는’ 게임이라는 것을 마지막에 공개한다면, “인간은 결국 게임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문장이 작품의 결말에 위치한다면 작중 메시지를 잘 요약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을 펜트하우스에 초대한 후에 각자의 소중한 것을 걸고 경매나 토너먼트 형식의 경쟁을 붙여볼 수도 있다. (맨몸으로 들어가 일정 상금을 따내기 위해 신체 일부를 걸어야만 하는 경매가 떠오른다. 물건을 따기 위해 돈을 거는 게 경매라면 돈과 상품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비틀어냄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까. 이를 소설 안에 잘 녹여낸다면 좋을 것 같다.)
다행히 재규는 회사에 붙어 게임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면제권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참가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게임’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색을 잘 활용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분량을 늘렸을 때 오는 장점과 이점이 많고 소설 안에 숨어 있는 매력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말을 얹어 보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이니만큼 작가에게는 독자보다 더 나은 개선점이 보일 것이라 믿는다. 돈 많은 노인들이 만든 잔인하고 기괴한 게임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이 인물과 사건, 배경의 면에서 모두 더 나은 상상력의 조합으로 독자들에게 뒷골을 때리는 충격을 주는 작품이 되기를 기대한다.
작가 스스로 작품의 목적을 정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에 스스럼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 KARA 작가가 쓴 다양한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다. 이 소설에서만 보았을 때 작가는 분명 공포소설을 쓰는 데에 강점이 있다. 〈게임〉을 쓴 사람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질 정도로 좋은 출발점에 선 소설이었다. 공포소설 안에서 밀실은 과거에 자주 다뤄지던 주제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개성을 찾기 위해서는 작품을 많이 찾아 읽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밀실 범죄나 게임,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찾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돌파할 수 있는 일종의 무기로서 배경을 창작한다면 독자로서도 대단한 소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스터리 소설의 서문을 읽은 기분을 안고, 작품의 끝에서 본 무한한 가능성의 곁가지가 작가에게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리뷰의 끝을 맺는다. 주상복합과 펜트하우스를 본다면 아마 이 소설이 한동안 떠오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난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알았을 때 나오는 웃음이다. 밀실에 갇혀 아직 나오지 못한 가상의 수많은 사람이 작가와 독자의 마음에서 문을 두드리기를 바란다. 문득, 가장 스릴 넘치는 공간과 시간과 배경이 작가님의 머리에 찾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