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스포일러 합니다! 작품을 먼저 읽고 오시길 추천드려요.
한소은 작가의 단편「은수」가 장편화되어 『토마토 정원』이라는 새로운 소설이 되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편의 글을 함께 읽으며 두드러지는 몇 가지 차이를 중심으로 내용을 살펴보자.
— 시간: 현재와 미래
「은수」가 우리가 사는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토마토 정원』은 약간 먼 미래를 그리고 있다. 30대의 플로리스트였던 은수는 후자에서 40대 중반의 관리소장으로 등장한다. 물론 둘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단순히 서로의 과거나 미래가 아니다. 그러나 은수의 과거는, 미래의 모습은 분명 이랬을 것 같다는 기묘한 동질감을 준다. 단편 속 은수는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다소 서툴고 투박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접근한다. 장편 속 은수는 이미 ‘가족’을 손에 넣었다. 세 동으로 이루어진 주택,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내는 입주자들, 그 안에서 은수는 공동체 전체를 통제하는 치밀하고 강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장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며 가능해진 요소들이 여럿 있다. 무엇보다도 주거 정책의 변화를 주목할 수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가속되며 서울 외곽의 주택, 빌라들이 다수 방치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에 치안 및 주거 문제 해소하고자 국가 차원에서 빈집을 매입해 공동체 주택으로 리모델링하게 된 것이다. 이주노동자나 한부모 가정, 노인을 대상으로 주택을 임대하기도 하고, 아예 노인들을 돌보기 위한 요양 시설로 개조된 곳이 적지 않다. 작중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실버홈’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요양 시설이 증가함에 따라 기술 발전 역시 실버홈 운영에 적용되었다. 자동화 설비가 도입되면서 다수의 노인 입소자들을 극소수의 보호사들이 담당하게 되고, 이는 작품 후반부에서 문제점으로 부각된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입소자들에게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보호사들에게도 열악한 환경인 것이다. 노인들은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과로에 시달리는 직원들은 일을 미루거나 동료 직원을 괴롭히고, 비틀린 인정 욕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과는 별개로 개선되지 않은 노동 환경이 작품 내에선 범죄에 취약한 조건으로 이어졌다.
작품 내부의 정합성을 위한 설정이겠지만, 단편에서 장편으로 개작되며 근미래로 배경이 달라질 때 시간의 흐름은 추가적인 의미를 가진다. 단편에서 지수가 경험해야 했던 한부모 가정의 어려움은 장편에서도 유지된다. 여기에 더해 장편에서는 다양한 사회 문제가 복합적으로 다루어진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이미 발견되고 있으나,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할 경우 해결은 커녕 더욱 취약한 문제로 불거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마주하고 돌보지 않은 채 강박적으로 밀어내는 행동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벌레 한 마리 용납할 수 없고 잡초 한 포기 자라지 못하게 감시한 결과가 어떻게 돌아왔던가. 눈에 보이지 않게 침대 아래 밀어넣은 것, 빈집의 마당에 묻었던 것, 마음 한구석에 감추었던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만다. 들여다보기를 피하고 지금 파묻어 놓은 것은 미래의 어느 날 터져나올지 모른다. 「은수」의 징조는 시간이 흐르며 무르익어『토마토 정원』에서 터져나온다.
— 공간: 지수의 집과 안음주택
이야기가 확장되며 또 하나 큰 변화를 보인 지점은 공간적 배경이다. 지수의 집을 중심으로 흘러갔던 「은수」와 달리 『토마토 정원』은 안음주택이라는 공동 주택을 배경으로 한다. 나이도 성격도 다양한 인물들이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혈연 관계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는 공간이다. 두 공간은 개인의 생활 공간과 공동체의 공유 공간을 각각 보여주기도 한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지수는 안음주택에서 새로운 기반을 다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깔끔한 공간, 서로 도우며 생활하는 입주자들이 있다면 아이를 돌보는 부담을 아주 조금은 덜 수 있겠다는 기대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입주 전에는 미처 알 수 없었다. 여기서 살아가려면, 은수가 정한 규칙을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는 것을.
공간적 배경이 달라지며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공포도 조금 다른 양상을 띤다. 단편에선 등장인물과 배경이 제한적인 탓에 고립적인 성격이 강하다. 장편에서와 달리 가족들과의 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으로 그려지고, 회사에서도 신 차장 등 다른 인물들과의 교류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곤란한 순간에 지수가 도움을 청할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처지이기에 더더욱 은수가 보인 호의에 절박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위해 내어준 틈으로 은수는 은밀하지만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이는 사적인 영역을 침범당했다는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서는 침범으로 끝나지 않고 완전히 대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타인의 침범으로 인해 기존의 관계로부터 단절당하고 완전히 고립될 수 있다는 가정이 공포를 자극하는 것이다. 세나의 죽음 이후로는 집 자체가 텅 비어 버리며 지수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그에 비해 장편에서는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가 등장한다. 아이를 맡기고 개인 작업이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환경이고, 단편과 달리 지수가 프리랜서임에도 훨씬 더 넓어진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안음주택에서 함께 생활하는 길분과 소원 역시 은수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이제 막 입주한 지수에 비하면 훨씬 크게 은수에게 의존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이 보여주는 두려움은 소외와 배제를 향한다. 은수가 없으면, 안음주택을 떠나면 생존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이들의 행동을 통제한다. 은수가 보고 있지 않더라도 그 통제력은 여실히 힘을 발한다.
은수가 퇴거를 무기로 삼아 입주자들을 통제한다는 것은 대사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런 식으로, 우리랑 계속 살 수 있겠어?” (『토마토 정원』, 146쪽)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는 지수에게 은수가 위협하듯 내뱉는 이 문장은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 라는 말을 감추고 있다. 이미 주택을 떠난 대수나 지수에게 돌아올 것을 권하는 것도 그래서다. 은수는 이들이 정말로 나가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매일 식사를 함께 하고 모든 행동을 함께 해야 하며, 심지어는 방문을 잠그지 말 것을 요구하는 안음주택에서 개인의 사적인 공간은 유지되기 어렵다. 실버홈의 요양 보호사 쩌우 즈엉이 “집에서만이라도 그녀는 양진주가 아닌 쩌우 즈엉으로 지내고 싶었다”(250쪽)고 말한 것을 떠올리면, 타인으로부터 분리된 공간이 개개인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와닿는다.
안음주택의 공포는 입주자들이 은수의 눈치를 보며 서로의 입지를 증명하려고 하기에 한층 강화된다. 지수가 처음 들어왔을 때 소원은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을까 지수를 경계한다. 길분은 은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대수를 향해 마음에도 없는 비난을 늘어놓는다. 안음주택은 가족처럼 함께 사는 집을 표방하지만, 구성원들은 마음 편히 쉬거나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맺기 어렵다.
— 주변 인물: 신 차장과 도말희
「은수」에서와 달리 『토마토 정원』에서 지수는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한다. 공동체 주택에서의 삶이 흔들릴 경우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고립될 위험이 높은 조건이었지만, 도말희의 존재가 지수를 지탱한다. 도말희의 가게에서 일하며 알게 된 혁중 역시 마찬가지다.
도말희는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지수는 낙담했다. 나는 결국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건가, 하고. 그러나 똑같은 말을 후반부에서 다시 한 번 떠올릴 때는 이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바뀌는 것도, 바뀌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두 가능성 모두 개인의 선택을 요한다. 지수는 은수의 요구에 맞춰 자신을 바꿀 수 있었으나 끝내 바뀌지 않기를 선택했다. 도말희는 자기 자신이고자 한 선택을, 지수의 삶을 존중한다. 그래서 여전히 변화 가능성을 긍정할 수 있다.
도말희가 있어 지수는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혼란스럽기만 한 이 시절을, 먼 훗날 나는 어떤 질감으로 기억하게 될까.”(291쪽) 이 순간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떻게 기억될까, 괴로운 현재에 매몰되는 대신 미래를 아주 잠깐이라도 상상함으로써 지수는 눈앞의 위기로부터 거리를 두고 생각할 수 있다. 지수가 가정폭력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떠올리면 도말희 같은 어른의 존재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단편에서 지수가 유일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인물은 어땠을까. ‘정’을 믿지 않는 신 차장은 현실적이다. 그의 말에 반박하고픈 마음이 샘솟지만 「은수」의 결말은 어쩔 수 없이 신 차장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함부로 사람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냉정한 현실을 가르쳐주는 것일까. 『토마토 정원』에서 지수를 둘러싼 세계가 확장되며 작가는 더 멀리 바라보고 더 따뜻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 차장의 경고처럼 ‘정’은 위험한 것일 수 있다. 정 때문에 지수는 가족들로부터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했고, 정 때문에 새로운 집을 박차고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동시에 정 때문에 안음주택의 입주자들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관계로 변화했다. 신 차장은 ‘남한테 기대지 않고선 못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정을 주고받는 건 꺼림칙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장담과 달리 남한테 기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누구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단편 「은수」는 강렬하고 섬뜩해서 매력적인 이야기였으나,『토마토 정원』에서는 한발짝 나아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묻는다.
— 돌봄: 아이와 노인
『토마토 정원』으로 이야기가 확장될 때, 돌봄의 문제 또한 범위가 확장된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건 어린 아이만이 아니다.
단편과 장편 모두에서 은수는 타인의 취약함을 이용한다.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지수는 아이를 돌봐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세나에게는 은수의 보살핌이 필요했기 때문에 의문이 들어도, 불안이 자라도 질문을 꾹 삼켜야 했다. 은수는 그대로 떠나도 아무 문제 없겠지만 지수는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상황이 된다고, 적어도 지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장편의 은수 역시 누구보다도 아이를 아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필요하다면 아이의 안전을 빌미로 주변인들을 위협한다. 세나가 자신의 손이 닿는 곳에 있는 한 지수가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길분을 대신해 모든 일상적인 일들을 대신하는 것도, 소원의 인간관계에 끝없는 걱정을 늘어놓는 것도 취약함을 이용한 결과다. 표면상 이들을 돌보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다. 은수는 돌봄이라는 행위를 타인을 옭아매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토마토 정원』에는 노인과 노견들이 자주 등장한다. 당장 가까운 실버홈에서 많은 노인들이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고, 대수가 자주 찾는 복지관에서도 지수는 여러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도처에 요양 시설이 널린 것과 별개로, 개개인이 느끼는 불편함은 쉽게 외면당한다. 노인들만이 아니라 지수와 같은 한부모 가정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도와주면 그저 고마운 거지 따질 게 뭐 있어요. 안 그래요?” (25쪽) 도움을 받는 입장에 불평을 늘어놓으면 안 된다고 다그치기라도 하듯, 문제 제기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자주 찾아오기 어려운 가족들을 계속 기다리거나,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아 타인의 도움 없이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더더욱 치명적인 상황으로 작용한다. “은행 자동이체부터 인터넷 쇼핑까지 하나하나 은수라는 다리를 거쳐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녀에게는 대수와 같은 장벽을 세운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지도 몰랐다.”(70쪽)
펫시터로 등장하는 재원이 노견 보호소를 운영하겠다 마음먹은 데에도 요양 시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시간과 돈이라는 장벽에 부딪히게 되고, 체계적인 관리 제도와 수단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재원 개인의 의지는 너무나 쉽게 꺾여나갔다.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일을 떠넘긴 선배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개인의 선의와 노력에만 의존해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이 은수의 안음주택과 재원의 사업을 통해 드러난다.
비슷한 맥락에서 쩌우 즈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겠다. 처음 도래동을 찾을 때 지수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공동주택이 있다는 사실에 불안해한다. “역 주변에 외국인 노동자 전용 임대주택과 다문화 거리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갑자기 늘어난 외국인들을 보며 심란해지는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다.” (16쪽) 뚜렷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느껴지는 표현이다. 요양 시설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인구 감소로 인한 도시 축소를 고려하면 2032년의 서울에는 적지 않은 수의 외국인 노동자가 거주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센터 직원의 반응(“이 동네가 외노자들이 많아서 솔직히 애 키우기엔 좀 그렇잖아요? 그냥 여기로 하세요.” (19쪽))도 그렇고, 지수의 반응을 보면 이들에 대한 대우가 현재에 비해 크게 나아졌으리라 보기는 어렵다. 안음주택을 벗어나 지역 공동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립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선,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터다.
『토마토 정원』후반부에 쩌우 즈엉의 행동과 심리가 묘사되는 장면들이 있다.
“지수의 시선이 신경 쓰였던지 그녀는 결국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곤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숨어 버렸다. 실버홈의 불은 꺼져 있었고, 담뱃불을 끄고도 그녀는 한동안 들어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지수는 왜인지 모르게 쩌우의 어두운 귀퉁이를 막 목격한 기분이었다.” (190-191쪽)
이 대목은 지수가 은수의 비밀을 의식하며 혁중과 통화한 직후에 이어진다. 문장 그대로 읽는다면 불안에 휘둘리는 지수가 자신과 타인에게서, 그리고 동네 곳곳에서 ‘어두운 귀퉁이’를 발견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지수가 알지 못할 뿐, 집이 아닌 바깥에는 불안과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는 것만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쩌우 즈엉 역시 지수처럼 일상을 견디며 자기만의 ‘어두운 귀퉁이’를 감당하고 있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낯설게 느껴지는 이주노동자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 사람이란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토마토 정원』은 다양한 인물과 공간, 사건을 통해 돌봄과 공동체의 연결 지점을 탐색한다. 일차적인 돌봄 관계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더라도, 공동체를 포함한 고려 없이는 변질되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여러 조건을 통해 제시한 것이다. 결말에서 안음주택은 입주자들이 안심하고 일상을 꾸려나갈 공간으로 변모했다. 안음주택을 벗어나 도래동, 나아가 서울과 한국이 다른 이들에게도 안전한 공간으로 변하기를 기대하게 되는 결말이다.
— 상징: 하이페리쿰과 스펑나무, 열매와 뿌리
두 작품 모두 식물의 이미지를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은수와 처음 만날 무렵 「은수」에서는 하이페리쿰의 붉은 열매가, 『토마토 정원』에서는 스펑나무의 뿌리가 선명하게 제시된다. 지수의 머릿속을 스쳐간 이 이미지들은, 뒤늦게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왜였을까, 여행 프로그램에서 봤던 캄보디아 한 사원의 기괴한 풍경이 난데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지붕에서 싹을 틔운 스펑나무의 뿌리가 수 세기 동안 석조 건물의 갈라진 틈새와 벽을 파고들어 이제는 베어 낼 수도, 떼어낼 수도 없이 사원 전체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사원은 나무뿌리로 인해 파괴되었지만, 또한 나무를 베어 내는 즉시 무너질 것이라 했다.” (44쪽)
은수가 하이페리쿰 열매를 온전한 형태 그대로 보존하고 싶어했다면, 스펑나무의 뿌리로는 사람들을 옭아매고 싶어했다. 누구도 떠나지 못하도록,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묶어두려는 것이다. 이때 뿌리를 내리는 것은 오직 은수 뿐이다. 은수는 보호와 돌봄을 가장해 입주자들의 뿌리를 잘라낸다.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안온주택에서 쫓겨나면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도록. 안음주택에서 쫓겨난 직후 대수가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다. “염려? 사지 멀쩡한 사람 병신 만드는 게, 그게 염려하는 거야?” (205쪽)
은수는 보호와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매사 대신 결정해주는 사람이 되려 한다. 그러나 지수에게 필요한 건 중요한 일을 대신 선택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내 선택을 지지해주는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다.
은수는 자신과 입주자들이 가족이라고 강조하지만, 그들이 감히 은수에게 질문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 사이의 위계는 분명하다. 은수는 이들을 동등한 주체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가족상을 완성할 부품으로 여길 따름이다.
초반에 제시된 식물의 이미지는 작품 전반에 걸쳐 특유의 분위기를 강화한다. 드라이플라워 또는 조화로 만들어진 식물에는 생명력이 부재한다. 여기에 가족사진이라는 눈에 보이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은수의 행동이 더해지며 원하는 형태로 보존하려는 시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때 지수나 세나의 감정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은수의 행위는 마치 박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펑나무의 뿌리 역시 올가미처럼 지수를 옭아매는 이미지로 반복해 떠오르면서 심리적 압박감을 더한다.
은수가 사라진 이후, 인물들이 스스로 뿌리내리기 시작하자 안음주택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모한다. 길분은 직접 텃밭을 가꾸거나 복지센터의 도움을 받아 병원 예약을 하고, 안음주택을 떠나 멀리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소원은 애견 미용을 배워 일을 시작했고, 주택관리사 자격을 취득해 은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뿌리를 뽑아내면 무너질 것처럼 보였던 공동체는 입주민들이 저마다 뿌리를 내리고 자립하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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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정원』에는 동일한 표현의 의미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장면이 거듭 등장한다. 처음에는 은수와 함께 영화를 볼 때였고, 두 번째로는 도말희와 옛날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지수는 자조적으로 반응하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은수와 도말희가 각자 마음에 둔 대답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홀랜드 오퍼스>를 보며 “실패한 내 생업에 대한 위로 같은 건가”(64쪽) 생각했으나, 정작 은수는 “교사로서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만족하며”(63쪽) 살아가는 주인공에 이입해 눈물을 보였다. 사람 잘 안 바뀐다는 도말희의 말을 듣고는 “찌그러진 궤도를 우리는 결국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고”(155쪽) 생각하며 불안해 했지만, 안음주택을 나온 뒤 도말희는 덧붙인다. “나답게 살아가는 것도 용기야.”(290쪽) 라고. 같은 표현이지만 명백히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며 지수와 독자가 파악한 정보가 늘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표현법은 인물과 공간의 변화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호의를 가장한 통제를 보여줄 때, 은수라는 인물을 드러낼 때에도 효과적으로 적용된다.
단편 속 은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눈치 빠르게 지수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는 사람, 구태여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잘 맞춰주는 사람. 딱 그 정도로 머무르며 천천히 지수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처음엔 행운으로 여기던 지수가 끝내 불안을 품게 될 만큼 은수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았다.
완벽한 가족을 만들고 싶은 은수의 욕망은 『토마토 정원』에서 낱낱이 드러난다. 곁에 있는 사람이 불안해질 만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던 「은수」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토마토 정원』에서는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느 게 더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단편은 단편에서만 가능한 날카로운 공포를 담았고, 장편은 보다 정교해진 사건 구성을 통해 돌봄의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했다. 두 작품 모두 스릴과 긴장감을 전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결말을 제시하고 있어, 따로 읽을 때와 함께 읽을 때 매번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