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나름 고민한 건데 쓰고 보니 만두 광고같네요.
탁문배 작가님의 ‘매미’는 북조선에 위치한 한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시간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북한에는 미군의 정밀 폭격을 대신 맞아주기 위한 미끼 건물이 존재한다는 설정으로(물론 진짜 존재할 수도 있겠지요)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연구소에서 사람이 있고 정말 연구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두 사람의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추리 소설과는 달리 스릴러는 초반에 이야기의 중요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진행되다 이런 반전이 있겠지’하고 내용을 지레짐작하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생깁니다.
‘어떻게’에 중점을 두는 장르다 보니 이 어떻게를 그럴 듯하게 그려내는 이야기의 힘, 글의 힘이 중요한데, 이 작품은 아마 결말을 다 알고 읽었어도 재미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이 탁월합니다.
주인공은 어쩌다보니 이 가짜 연구소에 배치되었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생각만 가득한데, 과묵한 원칙주의자인 소장은 자신의 묘자리를 이미 봐 둔 사람처럼 초연한 태도를 보입니다.
언제 스텔스 폭격기가 날아와 자신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할 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 속에 주인공은 소장의 눈을 피해 탈출의 방도를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작품답게, 매 시간 매 분 매 초를 쪼개 쓰는 것 같은 작가님의 필력이 상당해서 왠지 작가님이 계획해 놓은 대로 시간이 흐르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 많지 않은 에피소드 속에서 특유의 긴장감을 멋지게 만들어 내셨는데, 첫 째로 개방되어 있으나 사실은 철저히 고립된 연구소라는 독특한 설정, 그리고 서로를 감시해야 하는 두 등장인물의 독특한 관계가 이야기에 힘을 불어 넣습니다. 마무리는 서서히 긴장감을 높여가다 펑 하고 터뜨리는 작가님의 뛰어난 스토리 텔링이 되겠습니다.
반전이 있지만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혹은 누가 범인이냐 식의 단순한 결말도 아닙니다.
그런 점이 이 작품을 더욱 고급스러워 보이게 합니다. 작가님 정도의 필력이라면 초기 설정만 가지고도 꽤나 멋진 작품을 만드셨을 것 같지만, 결말까지 한 치의 어설픈 구석이 없이 후련한 느낌을 주는 이런 작품은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스릴러 장르의 글은 접근하긴 쉽지만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드는 건 쉽지 않더군요.
탁문배 작가님의 ‘매미’는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만족하며 읽을 수 있는 웰 메이드 스릴러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는 게 행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행운을 누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