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와 B의 결별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이나경, 17년 5월, 조회 160

이 글을 먼저 읽고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 본편을 읽으시면 웬 뚱딴지냐고 생각하시겠지만, 본편을 먼저 읽고 오시면 그나마 아주 뚱딴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니 아직 본편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가급적….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 글부터 읽겠다는 분들은 어쩔 수 없네요. 손님 결정에 맡겨야지요. 이 글을 읽는 데 별도의 비용 청구는 없습니다. 다만 팁은 꼭 (눌러)주셔야 해요.

*

결혼 2년차인 2013년 8월 18일 일요일에 아내와 저는 서울 근교의 펜션으로 1박짜리 피서를 다녀왔습니다. ‘에일-르’라고 하는 펜션이었는데(아님), 복층 건물이 통째로 우리 차지였습니다. 오후에는 개울가를 산책하다가 해가 저문 뒤에는 옥상에서 온갖 것들을 구워 먹고 내려와 TV를 보았지요. 평소 일과와 별반 다를 것도 없지만 온종일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다는 점만으로도 꽤 괜찮은 하루를 보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아이가 생겼습니다.

곧바로 그 사실을 안 건 아닙니다. 그건 불가능하지요. 계절 끝자락에 임신 사실을 알고 뒤늦게 계산해보니 에일-르(아님) 펜션에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정확히는 19일 오전이었어요. …이렇게까지 솔직할 필요는 없는데, 민망함을 자초하는군요.

지금이야 담담히 말하지만 당시의 놀람 지수는 ‘!!!!!!!!!!!!!!!!!!’ 정도였습니다. 참고로 자전거가 코앞에서 급정거할 때의 지수가 ‘!’입니다. 바퀴벌레의 사체 일부를 된장국에서 발견하는 상상은 ‘!!’이고요. 실제로 발견하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꽤 높겠지요.

우리 부부는 다른 건 몰라도 가족계획만큼은 대단히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멤버를 들이는 일을 오랫동안 주저해 왔습니다. 이 부분은 정부를 탓해도 좋겠군요. 그런데 우리의 불만사항이 아직 아무 것도 개선되지 않은 시점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기뻐하기 이전에 겁부터 먹었어요.

엄마 아빠가 겁을 먹거나 말거나 뱃속의 아이는 안전한 곳에서 존재를 과시했습니다. 겨울까지 아내는 입덧으로 고생했지요. 딱히 뭘 먹고 싶다고 한 적은 없고 먹는 족족 게워내기만 했는데도 몸은 착실히 불어나더군요. 그렇게 아내의 볼록한 배가 불룩해지나 싶더니 이내 터질 듯이 빵빵해졌습니다. 발로 찬다며 아내가 배를 보여줄 때마다 저는 이게 금방이라도 피시식 꺼지려나 팡 터지려나 하고 불안에 시달렸어요. 이것도 풍선공포증의 한 종류일까요?

하지만 그 다음 공포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남편 입장에서는 아이가 생겼다는 실감이 당장 나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새 생명이라는 것들은 으레 아내의 뱃속에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그 반대의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말인즉 아이와 아내가 작당하여 시침 뚝 떼고 있으면 남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아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에야 비로소 임신의 소름 끼치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이상해.”

“뭐가?”

아내가 배를 톡톡 두드렸습니다.

“나는 O형인데 얘는 B형이잖아.”

“…!!!!”

과연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O형의 피가 흐르는 혈관 안쪽 깊은 곳에서 다른 유형의 피가 흐르는 게요. 엄마와 더불어 살고 엄마로부터 꼬박꼬박 양분을 받아먹으면서도 아이는 결국 엄마와는 별개의 개체인 것입니다.

어쩌면 뱃속의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바깥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할 껍데기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요컨대 아이는 스마트한 계란껍데기에 둘러싸여 때를 기다리는 것이죠. 그렇다면 임신부에게 태아는 어떤 존재인가요? 그건 그냥 기생충이 아닌가요!

물론 아닙니다. 진정들 하세요.
(하지만 정말로 아닐까요? …정말로?)

둘의 어색하고 더부룩한 동거는 꼭 아홉 달 만인 2014년 5월 19일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아이는 저를 닮아 꽤나 느긋한 성격으로, 출산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더 버티다가 오후 1시 18분에 마지못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짝짝짝, 딸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내는 배설 행위에 비유하며 그 순간을 대수롭지 않게 회상했지만-사소한 일로도 지지 않으려는 저 역시 탯줄 자르는 것을 곱창 자르는 일로 비유하며 응수했지만-저는 결코 아내의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 현장에는 저도 있었으며 저는 그때 아내가 어땠는지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이지요.

출산 직후 아내는 얼굴의 실핏줄이 일시에 터져서 무수히 많은 가늘고 붉은 벌레들이 피부 안쪽에 둥둥 떠있는 모양새였어요. 의사 선생님 말로는 힘을 잘못 주어 그렇게 됐다는데,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단 얘기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망상일 뿐이고 실제로 위험한 순간은 없었습니다. 부디 이 글을 읽고 출산을 포기하지는 말아주세요.

아무튼 저는 그 얼굴 앞에서 몰래 맹세했습니다. 우리 집에 더 이상의 멤버 영입은 없다고요. 정작 아내는 제 속도 모르고 아들도 키워보고 싶네 어쩌네 하지만….

*

한편 저는 예전에 아주 오만한 발상을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 우주가 생성된 이래 여차저차 하다보니 제가 태어난 게 아니라, 반대로 제가 태어나기 위해서 역순으로 필수요소들을 구성하다보니 우주가 생성되기에 이르렀다고요. 즉 엄마와 아빠가 만난 것도 저 때문이고 그러려면 양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나야 할 것이고 또 그러려면… 그렇게 끝장을 보고야 마는 가히 자아도취적인 프로세스였습니다.

사실 이 이론은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이런 식의 우주가 있고 따라서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급 겸손해지는 반전이 백미랍니다.

이것은 제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직결되는, 말하자면 개똥철학이었습니다. 오만과 겸양의 당위를 두루 갖춘 채 내키는 대로 살 수 있게 된 거예요.

아이가 태어나고도 이 생각은 유효하여 저는 여전히 제 인생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만의 우주를 팽창시키고 채우고 가꾸기 바라면서요. 즉 기본적으로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는 인식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지요.

그런데 요즘 들어 제 우주에 이 아이가 없다면 얼마나 허전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고 야외활동에 나서고 동화를 읽고 동요를 부르고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히고 머리를 묶어주고 낯선 이에게 먼저 인사하고 율동을 따라하고 성대모사를 시도하는 것들이 어느새 제 생활을 차지해버린 탓만은 아닐 거예요.

이런 것들이 생활을 차지하게 된 건 별 문제가 아닙니다만 이런 것들이 저를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은 문제일 것입니다. 제 인생에서 아이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니까요. 그러니까, 아내의 몸이 점점 불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 말로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여러분도 아시겠죠.) 하나였던 삶이 결국 둘로 나뉘는 것이에요. 더욱이 사실은 처음부터 둘이었으며 하나였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것도 그럭저럭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아이의 우주에서 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기 때문에 저도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실정이지만 차츰 아이는 우주를 넓혀갈 테고 제 입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며 급기여 아이는 제 곁을 떠나겠지요. 그러니까, 아내 얼굴의 실핏줄이 모두 터졌던 그날처럼요.

하지만 대체 그게 언제쯤일까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새삼 이것이 어떤 글의 리뷰임을 상기한 탓에, 17년쯤 뒤일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때 아이는 처음으로 떠날 준비를 할 거예요. 실제로는 시기상조이고 떠날지 말지는 본인의 의사에 달렸지만 저는 대충 그 즈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할 겁니다. 학교를 마쳤으니 훌쩍 떠나 혼자 살겠다고 선언할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런 뒤에 다시 17년이 흐르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확실히 떠나버릴 겁니다.

그렇게 저(와 아내)의 우주는 텅 빌 것이고 우리는 껍데기만 남아 풀썩 주저앉겠지요.

벌써부터 저는 그날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까지 하니 퍽 묘한 기분인 것입니다.

*

…라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은. 휴- 정말 끔찍하고도 황홀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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