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비 사태가 거의 잠잠해지는 대한민국에서 사랑하는 영이가 좀비가 되었다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영이를 돌보는 일 때문에 하루하루 지쳐가고 예민해지던 나는 대학 동기였던 준수가 찾아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가 폭발해 그를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고 만다.
준수는 대학 때부터 영이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던 남자로, 나의 연적이었다. 내가 영이와 사귀게 된 후에도 그는 집요하게 영이에게 집착한다. 그와 영이가 동아리방에서 단둘이 있었던 날, 나는 영이에게 달려갔지만, 영이는 몰랐다는 말 한 마디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 말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지만 캐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두려웠는지도 몰랐다. 영이가 몰랐다는 것의 정체가. 영이는 어쩌면 준수에게 흔들렸던 자신의 속마음을 모르고 있었다가 깨달은 것인지도 몰랐다.
대학 시절 동아리실의 젖은 소주병과 나와 영이의 집 장식장 안의 젖은 꽃병은 준수와 영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영이를 가졌다고 믿었던 후에도 영이의 마음 어딘가에는 준수가 있었다. 나의 관점으로 보면 준수가 천하의 몹쓸 놈이지만, 준수나 영이에게는 어땠을까. 과연 영이도 내가 그녀를 사랑한 만큼 사랑했을까.
준수는 내가 주지 않은 꽃을 영이에게 줄 줄 아는 놈이었다. 반면 나는 무심했던 놈이다. 꽃은 시든다고 말하기나 했다. 금세 시들 거라 믿었던 꽃이 이런 식으로 나를 물 먹이게 될 줄, 그 당시의 나는 몰랐던 게 틀림없었다.
나의 불안은 근거 없는 확신이 되어 나타난다. 작품 속에서는 잊을만 하면 나의 독백을 보여준다. 나는 영이를 사랑하고 영이 또한 그렇다. 준수는 제 아내를 버린 비겁자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영이를 사랑하니까 끝까지 지켜낼 것이다.
이미 좀비가 된 영이에게 내가 이토록 집착하는 데는 한 가지 이유만이 있는 건 아니다. 물론 나는 영이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나를 참아주었던 영이, 헌신적인 영이를 사랑했다. 그녀가 다시 돌아와 주기를 원했다. 내게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낯선 그녀가 아니라. 내가 준수보다 더 영이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얻어야만 했다.
그러나 준수가 찾아와 진실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좀비가 된 영이의 모습과 겹쳐져 불안이 고조에 달하게 한다. 꽃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는 영이의 말에 숨은 진실과 영이가 손을 베며 스미어 나온 붉은 핏방울에서 느껴지던 어떤 징조, 먼지 쌓인 장식장에 어울리지 않는 젖은 꽃병과 풀 향기, 모든 퍼즐 조각이 맞아 들어가며 나는 절망하게 된다. 나만이 영이를 사랑했던 게 아니었다. 준수도 그녀를 사랑했다. 제일 절망적인 건 영이가 나만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진실이 무엇인지 영이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영이는 좀비가 되었으니까.
사실 영이가 나만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고 깨달은 순간, 이미 영이는 나에게 좀비와 같은 괴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작품 속에서 세 인물의 사랑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모두가 엇나간 사랑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방향이 제각각이었기에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사실 이 작품에서 좀비는 매우 부차적이다. 내가 영이의 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 수단에 불과하다. 준수가 찾아오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 애초에 이야기의 주 흐름은 로맨스라 봐도 무방하다. 좀비라는 소재 없이 아예 영이가 죽어버렸어도 이야기의 방향은 원래 작품의 맥과 비슷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르겠다. 이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나의 불안한 심리가 점차적으로 고조되는 장면 하나하나는 무척 훌륭하게 느껴졌다. 나도 그에게 이입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나의 확신에 찬 독백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임과 동시에 독자에게 하는 말과 같았다. 그 확신이 무너지기 시작하며 느끼는 절망은 힘에 버거울 만큼 무거운 것이었다. 근거 없는 확신이란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내 눈을 진실로부터 가리고, 그런 주제에 틀림없이 찾아올 절망에 대한 예방책은 제시하지 못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