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자는 되지 말자, <할로윈 마녀 아비게일>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할로윈 마녀 아비게일 (작가: 이렛달, 작품정보)
리뷰어: 그림니르, 21년 3월, 조회 61

브릿G에서 리뷰단 활동을 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읽은 뒤에 기분이 즐겁게 밝아지는 작품은 오늘 처음으로 리뷰하는 듯 싶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을 쓴 이렛달 작가는 동화 작가의 재능이 있다. 단편 동화인 이 작품의 형식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을 뿐 아니라, ‘이기주의자가 되지 말자’는 작품 주제도 아이들이 꼭 배워야 할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아이들은 자라나는 과정에서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일등의 자리는 한 개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입신양명()이란 승리를 얻으려면 누구와도 손잡으면 안 되는 길을 가야 한다. 승자의 자리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이 둘 이상이면, 누가(정말 누가?) 보기에 아무래도 멋이 안 사는가 보다.

 

 

<할로윈 마녀 아비게일> 속 마녀들의 세상도 우리 사회와 별다를 게 없다. 매년 할로윈마다 마녀들은 하나뿐인 ‘할로윈 마녀’ 자리에 오르기 위해, 누가누가 더 인간을 깜짝 놀래키는지 경쟁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경쟁에서 그러하듯이, 마녀들의 경쟁에서도 협력이 설 자리는 없다. 마녀 세상에서는 그저 ‘샤를로테’처럼 혼자서 뛰어난 마법을 부리거나, 아니면 다른 마녀를 자신의 계획에 반강제로 협조시키는(사실상 이용하는) 길만이 ‘할로윈 마녀’란 승리를 얻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현실의 우리 세상에서든, 작품 속 마녀들의 세상에서든, 이기주의자가 얻어낸 승리는 결국 파괴로 끝난다.

 

 

작품 속에서, 지난해에 할로윈 마녀로 뽑혔던 ‘샤를로테’는 올해에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기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샤를로테는 주인공 ‘아비게일’이 자신과 같은 계획을 세웠단 걸 알자마자, 그의 마법 실력이 자신보다 떨어지는 걸 빌미삼아 그를 일방적으로 자신의 계획에 협조시킨다. 그는 아비게일이 자신의 계획에 동의하는지 마는지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협조를 강요받는 아비게일의 기분이 비참하든 말든 샤를로테는 상관없어 한다. 오히려 아비게일이 자기 계획에 협조하길 거부하자 샤를로테는 잃은 것 하나 없다는 듯이 그를 조롱하고 떠나 버린다.

 

 

샤를로테는 심지어 아비게일의 계획을 다른 마녀들에게 일러바쳐 그가 할로윈 마녀로 뽑히지 못하게까지 한다. 그는 참으로 ‘내가 못 먹을 감이라면 떨어져나 버려라’ 하는 심보를 가진 철저한 이기주의자라 할 수 있겠다.

 

 

우리 역사에도 샤를로테 같은 이기주의자 예식진(禰寔進, 615~672)이 있다. 예식진은 성왕 대(6세기 초중반)의 인물로 추정되는 증조할아비 예복() 때부터 백제 조정을 섬긴 귀족 가문 출신으로,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했을 당시엔 웅진방령(오늘날의 충남 공주시를 중심으로 백제의 북쪽 지방을 관할하던 장관)이었다.

 

 

의자왕은 예씨 가문의 경력과 예식진의 지위를 믿고 사비성 가까이 온 나당연합군을 피해 시간을 끌어보려 웅진성으로 갔다. 그러자 예식진은 옳다구나 하고 의자왕을 생포해서 소정방과 김유신 앞에 갖다 바쳤다. 예식진은 이렇게 백제의 관뚜껑을 덮어 주곤 당나라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가족들과 함께 당나라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 이렇듯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인 샤를로테와 예식진 두 사람은 각각 작품과 삶의 결말에 이르러 본인이 승리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헌데 과연 객관적인 관점에서 봐도 두 사람의 인생이 승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예식진의 인생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예식진 본인과 가족들이 누렸던 영화는 시간이 흐르며 사라져 버렸고, 예씨들의 후손을 자처하는 사람도 없어졌으며, 심지어 그 무덤마저 사라져 버렸다. 현대에 이르러 예식진의 묘지석이 발굴되어 매물로 나왔단 사실을 고려하면, 그의 무덤은 우연히 심본(?) 도굴꾼에 의해 싹 털린 게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 안에 있었을 수많은 사치품들은 모두 암시장으로 팔려나갔을 터이며, 예식진의 유골 또한 도굴꾼의 발에 짓밟혀 알이 좀 굵은 먼지 정도로 전락해 버렸을 것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나라 구글에 예식진의 이름을 검색하면 “매국노” “역적” 단어가 첫 페이지부터 나온다. 그의 죄는 이미 김영관 등 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문으로 박제되었으며, 일반인들에게 그가 먹는 욕은 차마 다 세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백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유교의 관점으로 보면 예식진보다 더 패배한 인생을 찾기도 힘들다. 유교에서 개인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불행으로 여기는 세 가지는, 첫째로 후손이 끊어지는 것이며, 둘째로 그 죄가 역사에 남아 사후에도 두고두고 욕을 먹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시신이 훼손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식진은 이 모든 불행을 다 겪은 3관왕이지만 나는 왠지 풍악을 울리고 싶다.

 

 

이 작품의 결말 이후 샤를로테가 겪을 인생도 승리와 거리가 멀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샤를로테는 일단 아비게일에게 신뢰를 잃었다. 앞으로는, 설령 다른 마녀들이 모두 샤를로테 편을 든다 해도, 아비게일만큼은 절대 샤를로테와 상종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이용하고 버릴 수 있다는 걸 친히 보여준 상대와 함께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가 보기엔 앞으로 다른 마녀들조차 샤를로테의 편에 설 것 같지 않다. 자기가 부도덕한 계획을 세우고 남을 억지로 거기 동참시켜 놓았으면서, 뒤에선 호박씨를 까며 모든 죄를 그에게 덮어씌우는 사람을 누가 믿겠는가? 그런 사람과 같이 일하면 결국 일하면서 생긴 잘못이란 잘못은 모두 뒤집어쓰고 비참한 신세가 될 뿐이다. 만약 이 작품의 마녀들이 제정신이라면, 차라리 아비게일처럼 인간들과 어울리고 말지 샤를로테하곤 곧죽어도 한 배를 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 역사에 예식진 같은 이기주의자가 다시 나오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우리나라 아이들이 이 작품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작품 속 샤를로테의 모습은 그들에게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샤를로테처럼, 예식진처럼, 이번 삶을 살아간다고 인생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아이들이 꼭 알길 바란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는 아이들에게 이기심으로 영혼을 꽉꽉 채우는 게 살아남는 길이며, 이타심은 바보나 갖는 마음이라고 가르치는 중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자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도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어른인 내가 오늘 솔선수범하기로 했다. 비문()이 많은 것이 이 작품의 유일한 흠이기 때문에, 작가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품에 나온 비문들 중 몇 가지를 골라서 교정해 보았다. 같은 작가로서, 이렛달 작가가 날로 달로 더 나은 작품을 쓰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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