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역사 속 별같이 빛나는 영웅사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문무(文武) (작가: 슬아희, 작품정보)
리뷰어: Lightcomes, 21년 2월, 조회 111

학창 시절 수학여행지였던 경주에서 누구나 한 번은 수중 문무왕릉을 멀리서 보았을 것이다. 깊은 푸른빛 바닷속에 잠든 고대 국가의 왕은 우리에게 비교적 낯선 이름으로 다가오며, 오히려 문무왕의 부모 문희와 춘추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문무왕은 신라인 아버지 무열왕과 가야계 어머니 문명왕후 사이에서 탄생해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한 국왕으로, 무열왕은 최초로 왕이 된 성골이 아닌 진골 왕족이었으며 문무왕은 신라가 병합한 가야 왕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혼혈인이었다. 6세기 한반도에 존재했던 모든 고대 국가가 문무왕에 이르러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아희 작가는 이토록 매력적인 인물 문무왕을 주인공으로, 지난 수 년 동안 역사 장르에서 유행한 국왕vs관로 구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선으로 7세기 신라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매 화마다 관련 사료를 직접 인용하는 작가의 성실함은 그러한 노력을 보여준다.

또 <문무>의 서사 구조는 전형적인 영웅담 형태이다. 주인공 법민(문무왕)과 그의 아버지 춘추(무열왕)는 연개소문과 비담 등 국내 외 정적(고난과 시련)들을 딛고 일어서 나당연합(조력자)을 성사시키며 역사의 격랑에 희생당한 가족 고타소의 복수라는 개인적 목표와 삼국 통일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모두 성취하며 영광을 누린다.

춘추의 딸로 법민의 형제인 고타소가 죽음을 맞이한 원인은 7세기 격화된 삼국 사이 전쟁이었다. 법민은 형제의 죽음을 개인의 슬픔으로 애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조적 원인을 직시하며, 나아가 같은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난세 종식이라는 실질적 해결을 이룩한다.

그렇기에 <문무>는 대야성 함락과 고타소의 죽음으로 서막을 열게 되며 고타소는 시대의 무력한 희생양이 아닌 항복보다 죽음을 선택한 또 다른 영웅이었고, 그의 죽음이 춘추와 법민을 영웅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므로 <문무>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 시대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 <문무>에는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한 고타소 외에도 여러 인상 깊은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덕만에 이어 국왕이 된 승만 공주는 오랫동안 사회적 여성성으로 규정되었던 얌전한 성품과 뛰어난 자수 솜씨를 가진 인물로, 지략이나 카리스마가 특출한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뛰어난 여성만이 남성 못지 않게 한 인간으로 몫을 다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여성적이라고 규정한 것들이 남성성 못지 않은 힘을 발휘한다고 대답한 자희(자의왕후)는 주인공 법민과 결혼하게 된다. 자의왕후 캐릭터 역시 당대의 진골 귀족 여성으로서 적절한 신분 의식을 가졌으면서도, 폐쇄적 여성관을 가진 남성 김흠돌의 집착적 애정을 거절할 줄 아는 주체적 인간상이다.

장르 특성상 남성 인물 비중이 압도적이며 언제나 여성 인물 활용에 무성의하다는 의심을 샀던 대하 정통 역사 장르에 이처럼 입체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이 등장하여 독자로서 대단히 기쁘다. 슬아희 작가의 성실한 연재와 꾸준한 노력에 경의를 보내며 <문무>와 함께 7세기 신라의 투쟁과 영광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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