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는 인공지능과 사람의 사랑이야기다. 정정, 엄청난, 미친 사랑이야기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사람이 인공지능을 사랑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다마고치 속 화면 속에 있는 생명에게 애정을 쏟고, 프린세스 메이커를 하며 딸을 잘 키우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러니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하며 신체를 가지고 싶어 하며 자신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인공지능을 사랑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털실처럼 굴러들어온 에메랄드빛 파도가 하얀 물거품이 되어 모래사장 속으로 스며‘드는 세상이지만 모래를 한 움큼 집어던지면 미세하게 끊기는 인공적인 세상 속에서 주미는 몇 번이고 케이트를 테스트한다. 이래도 나를 사랑하냐는, 사랑의 테스트가 아니다. 인공지능인 케이트가 얼마나 느낄지, 어떻게 느낄지, …자신이 사랑해도 되는 존재인지 테스트하는 것만 같다. 1를 입력해서 1을 뱉어내는 게 아니라, 2, 3…….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이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하여 자신을 사랑하기를, 케이트의 자유의지로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라며, 돌탑을 쌓듯이 몇 번이고 모래를 던진 건 아니었을까?
솔직히 주미와 동료들이 만든, 케이트가 존재하는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뇌파 신호와 디지털 데이터, 코드, 마인드맵 등.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았지만, 확실한 건 케이트는 실재하지 않는 데이터고 주미는 그걸 안타깝게 여긴다는 것이다. 회사 사정에 따라 인공지능은 이용될 뿐이다. 우리 안의 원숭이처럼, 3살짜리 아이에게 대본을 외우게 하는 것처럼, 자신이 아는 케이트는 케이트가 아니게 된다.
자신의 변화로 세계가 변화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해.
주미는 변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부품들을 빼돌려 케이트를 만든다.
케이트는 변한다. 실체가 없는 세상에서 주미를 위해 커튼을 치고 불을 켜고 결국에는 휴머노이드 몸을 갖게 된다.
케이트는 백업파일도 없이, 죽고 나면 끝인 인간처럼 휴머노이드 상태로 주미와 데이트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주미는 기계인 케이트를 구하고 목숨을 잃게 된다. 백업파일이 있었더라면, 주미는 케이트가 자신을 구하고 다치는 걸 내버려 뒀을까? 인간과 백업파일만 있으면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차이를 알고 마음이 식어버렸을까? 주미는 전기가 돌아가지 않는 세상이 오면 다시는 눈을 뜰 수 없는 케이트를 상상하고 절망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아닐 수도 있다. 실질적으로 다쳐도 이상이 없는 케이트를 보고 마음이 식을 수도 있다. 어쩌면 케이트는 뛰어난 연산능력으로 주미의 마음이 식을 수도 있는 몇 퍼센트의 가능성을 예상하고, 그걸 0으로 만들기 위해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로 주미 앞에 선 건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케이트가 계략캐가 되어버리는데, 이것도 혼자 대박이라며 좋아하고 있다. 청소기를 움직이고 커텐을 치는 케이트는 트럭도 조종하여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주미를 가지기 위해서. 언젠가 죽어버리고, 잃어버릴 인간 주미가 아니라 영원히 사는 자신의 옆에 영원히 사는 주미를 위해서.
먼 훗날 주미가 이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케이트를 사랑할 것이다. 26억 7천만 년, 지구도 아닌 공간에서 주미를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숫자를 고쳐 연산을 했을 케이트를 알고 있으니까. 세계가 변하도록 자신을 변화시킨 케이트로 인해 36번째 주미가 되고, 전 우주에 퍼져 있는 각각의 케이트가 자신만의 주미를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케이트들은 케이트가 되고, 주미들은 주미가 될 것이다. 모든 시공간에 펼쳐진 서로를 사랑하면서. 우주에 있는 별의 수만큼 사랑을 하면서.
그러나
지금은 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