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스타트업 내부의 기류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필요한 설명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자연스럽게 이해를 도운 점이 좋았습니다. 설명이 구구절절하지 않고 과하게 눈에 띄지도 않아서 가독성이 높았어요.
주인공은 두 달 전 푸드테크 스타트업에 합류한 경력직 신입입니다. 이야기는 이 회사에서 벌어지는 약간 황당한 일들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관점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게 묘하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화자인 주인공의 독백은 소설 속 사건들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과 얼추 포개어집니다. 회사 서버에 대고 고사를 지내는 동료들을 속으로 냉소하며 슬쩍 빠지는 주인공의 태도는, 이 작품의 외부에서 스토리의 전개를 중립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는 독자의 포지션이기도 한 겁니다. 이야기의 도입부만 해도 주인공은 이 세계관에 온전히 속해있지 않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우스꽝스럽던 고사의 효험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회사가 잘 나가기 시작한 거예요. 주인공은 혼란스러워지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아니, 어쩌면 유지는 할 수 있어도 굳이 그래야 하나 싶어 지는 거죠.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까요.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주인공은 은밀히 서버실에 들어가 서버신께 혼잣말로 기도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주인공은 소설 속 낭만주의 세계관으로 가파르게 빨려 들어가죠. 물론 독자도 이 지점부터 주인공에게 설득되어 소설에 깊숙이 이입하게 돼요. 한 번 따라가보고 싶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회사가 잘 나갔던 건 동료들이 그만큼 힘들게 노력한 덕분이었어요. 당연하고 합리적인 결론이죠. 우리의 주인공이 꿈처럼 빨려 들어간 세계에서 돌아올 때가 된 겁니다. 부풀어 올랐던 마음도 그만 붙들어 매고 이제 다시 지상의 일에 충실해야겠죠. 이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상승과 하강의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풍의 여행에서 돌아왔다고 봐도 되겠고요. 그건 그리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독자들이 주인공의 감정에 충분히 이입되었다는 사실이겠죠. 놀라운 건 이만큼 설득되는 과정에 강요나 욕심, 중언부언의 흔적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는 겁니다.
이제 작가가 화자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듯합니다. 철저히 외부적 시선으로 무장했던 주인공이 이상한 세계에 발을 담갔다가 곧 돌아 나오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그 말에 기꺼이 설득당하기로 했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고, 불안한 마음을 벗 삼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일입니다. 때로는 꿈처럼 화려한 시나리오를 혼자 상상하다 허탈한 미소를 지어보기도 하고, 노골적인 독설에 깊이 상처 받기도 하죠. 하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작은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는 그 감각’을 부여잡고 다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있을 작가에게, 저는 앞으로도 좋은 작품 잘 부탁드린다는 말로 답하고 싶습니다. 정말이지 덕분에 즐거웠어요.